러 대선 사흘 앞두고 나발니 측근 '망치 피습'…푸틴 '30년 집권' 길 닦을 듯

선거일 '무더기 투표' 항의 운동 조직…푸틴 지지율 86%는 경제 순항도 한몫 한 듯

지난달 수감 중 돌연사한 러시아 야권 정치인 알렉세이 나발니의 측근이 러시아 대통령 선거를 사흘 앞두고 피습당했다. 15~17일(이하 현지시간) 치러지는 러시아 대선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압승이 예상되는 가운데 나발니 조직 등 야권 운동가들은 선거 당일 무더기로 투표장에 나타나는 방식의 항의 운동을 준비 중이었다.

나발니의 대변인 키라 야르미쉬는 12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나발니의 최측근이자 러시아 고위 관료 부패를 조사하기 위해 나발니가 2011년 설립한 반부패 재단 의장을 맡았던 레오니드 볼코프가 자택 인근에서 공격 당했다고 밝혔다. 야르미쉬는 누군가 차 유리창을 깨고 볼코프의 눈에 최루가스를 뿌린 뒤 그를 망치로 가격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반부패 재단은 소셜미디어에 볼코프가 들것에 누워 구급차에 실리는 사진을 공개하며 그가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전했다.

러시아 독립언론 <메두자>는 이후 볼코프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병원 치료를 받고 돌아왔다며, 공격으로 한 쪽 팔이 부러졌고 망치로 15차례 가격 당했음에도 다리는 부러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공격 배후가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매체는 볼코프가 이번 공격이 "명백하고 전형적인 깡패 방식의 푸틴 대통령 특유의 인사법"이라고 주장했다고 덧붙였다.

나발니의 오랜 최고 정치 고문이었던 볼코프는 2021년 러시아에서 나발니 정치 조직이 "극단주의"로 분류된 뒤 리투아니아에서 거주해 왔다. <뉴욕타임스>(NYT)는 현지 매체 <델피>를 인용해 리투아니아 경찰이 수도 빌뉴스에서 이날 밤 10시께 한 러시아 시민이 집 밖에서 폭행 당했음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가브리엘리우스 란츠베르기스 리투아니아 외교장관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볼코프 공격 소식은 "충격적"이라며 "관계 당국이 조사 중이며 가해자들은 그들의 범죄에 답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16일 나발니 돌연사 뒤 러 야권 운동가들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볼코프는 습격 당하기 몇 시간 전 나발니 조직이 직면한 주요 위험을 묻는 <메두자>의 질문에 "가장 주요한 위험은 우리 모두 살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볼코프 피습은 러시아 대선을 사흘 앞두고 벌어졌다. 볼코프를 포함한 나발니 조직과 러 야권 활동가들은 17일 정오 무더기로 투표하는 방식의 "푸틴에 반대하는 정오"로 명명한 항의 운동을 준비 중이었다. 러시아 정부가 집회 등 정권 반대 목소리를 철저히 차단하고 있지만 투표장에 투표 목적으로 나타나는 시민을 잡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에 착안한 운동으로 특정 후보 지지를 호소하기보다 정권 반대자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자 하는 취지다.

12일 <메두자> 기사에서 볼코프는 이러한 저항 운동의 목적은 참여자들이 "스스로가 다수임을 깨닫는 것"이라고 짚었다. 배우자 나발니 사망 뒤 저항 운동의 새로운 구심점으로 떠오른 율리아 나발나야도 지난주 이 운동이 "매우 간단하고 안전한 행동"이라며 투표 용지에 "나발니" 이름을 적을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번 러시아 대선에서 푸틴 대통령 이외의 인물이 당선될 것이라는 기대는 하기 힘들다. 야권, 반정부 운동, 반대 언론 등을 틀어 막고 국영 언론 위주로 정권의 주장이 전달되는 가운데, 러시아 독립 여론조사기관 레바다 센터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푸틴 대통령 지지율은 86%에 달했다. 세 명의 다른 후보가 출마하지만 단일 후보 방지를 위한 구색 맞추기라는 평가다.

반대 목소리를 냈던 후보들은 출마를 거부 당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한 보리스 나데즈딘은 지난달 대선 후보 자격을 갖추기 위해 지원서와 함께 제출한 추천인 서명 중 일부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해 후보 등록이 거부됐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료와 정치범 석방을 주장한 전직 언론인 예카테리나 둔초바의 출마도 서류 미비를 이유로 지난해 12월 선관위에 의해 거부됐다.

푸틴 대통령의 인기 바탕엔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서방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경제를 큰 무리 없이 이끌어 온 점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 1월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러시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1.1%에서 2.6%로 끌어 올렸는데, 이는 유럽의 예상 성장률인 0.9%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서방 제재에도 인도, 중국 등이 원유를 수입하며 꾸준한 수입을 안겨주는 데다 우크라이나 전쟁 뒤 생산이 늘어난 방위 산업이 주요 성장 동력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평가다.

<AP> 통신은 독일국제안보문제연구소의 러시아 경제 전문가 야니스 클루게가 "경제는 푸틴의 모든 선거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전쟁을 무시하기로 한 많은 러시아인들에게 경제는 가장 큰 문제"라며 정권이 바뀔 가능성이 없더라도 "진정한 지지의 존재는 여전히 중요하다"고 짚었다고 전했다.

2000년, 2004년, 2012년, 2018년 대선에서 승리해 이미 4번째 임기를 수행 중인 푸틴 대통령은 2020년 이전 임기를 무효화하는 헌법 개정으로 앞으로 두 번 더, 2036년까지 집권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2036년까지 집권할 경우 30년 가량 집권한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기록을 넘어서게 된다.

▲지난달 수감 중 사망한 러시아 야권 정치인 알렉세이 나발니의 측근 레오니드 볼코프가 12일(현지시간)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 자택 인근에서 망치로 공격 당한 뒤 구급차에 실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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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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