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와 어렵게 수교해 놓고 북한 이겼다고 자랑한 대통령실

북한과 긴밀한 쿠바 안중에 없는 대통령실…외교부 "북한 문제 예단하기 적절치 않아" 톤 다운

중남미 지역에서 유일하게 수교하지 못한 국가였던 쿠바와 수교를 두고 대통령실은 북한에 타격이 있을 것이라며 북한과 대결에 활용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수교를 이룬 것은 분명한 성과지만, 이러한 해석이 상대국인 쿠바에 부담을 주고 곤란하게 만들어 한-쿠바 관계가 수교 초반부터 껄끄러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5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쿠바가 그간 북한과 '형제국'으로 불린 점을 언급하면서 "이번 수교로 북한으로서는 상당한 정치적·심리적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번 수교는 결국 역사의 흐름 속에서 대세가 어떤 것인지, 또 그 대세가 누구에게 있는지 분명히 보여준 것"이라며 북한을 겨냥한 발언을 이어갔다.

그간 북한과 쿠바가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는데 남한이 결국 쿠바와 수교를 이뤄내면서 북한의 외교적 입지가 더욱 고립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주무부처인 외교부는 쿠바와 북한의 관계에 대한 언급을 최대한 자제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쿠바와 수교가 향후 정부의 대북 외교 정책을 풀어가는 데 어떤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하냐는 질문에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과 관련된 도발이 중단되지 않는 한 우리의 대북 정책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답했다.

북한에 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대통령실의 발표에 대해서도 이날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북한 문제에 대해 예단해서 설명드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며 즉답을 피했다.

북한이 쿠바와 수교 추진을 방해하지는 않았냐는 질문에 이 당국자는 "저희가 언급하기 적절치 않다. 구체적인 사안은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다만 정부는 북한이 최근 해외 공관을 감축하는 등 대외적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이번 수교 국면에서도 일정한 역할을 하기 쉽지 않았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016년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이 쿠바에 방문한 이후 수교까지 8년이 걸렸는데,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 쿠바와 수교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냐는 질문에 이 당국자는 "꼭 그렇지 않다. 우리 미수교국이 중남미에서 쿠바 하나다. 쿠바에는 꾸준히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말했다.

외교부가 쿠바와 수교 사안에서 북한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는 이유는 상대국인 쿠바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쿠바는 같은 사회주의 체제인 북한과 그간 긴밀한 관계를 쌓아왔는데, 그럼에도 한국과 수교를 결정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수교를 마치 북한과 체제 경쟁에서 승리한 징표로 이용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일 경우, 어렵게 수교 결정을 한 쿠바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드는 것일 수 있다. 이렇게 상대방이 곤란한 입장에 처할 경우, 이제 첫 발을 내딛으려는 한-쿠바 관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대통령실은 쿠바와 수교를 북한과 체제 경쟁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지만, 쿠바의 대외관계 및 양국 간 교류를 살펴봤을 때 한국은 북한과 관계와 무관하게 수교를 추진할 자체적 필요성이 있었다.

대통령실이 설명했듯이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이긴 하지만 세계 190여 개 국과 수교를 맺고 있고 100개국이 넘는 국가가 수도인 아바나에 대사관을 운영하고 있다. 쿠바가 수교를 맺지 않은 국가는 이스라엘, 아프가니스탄 정도밖에 없다.

또 양국간 교류 역시 외교부에서 설명한 대로 코로나 이전까지 연간 1만 4000여 명의 한국인이 쿠바에 방문했을 정도로 활발하게 이뤄졌다. 경제교역도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꾸준하게 이뤄져 왔다.

한국이 지금까지 쿠바와 수교를 맺지 못한 이유가 북한보다는 미국과 쿠바 관계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보더라도, 이번 수교를 '북한에 대한 승리' 라는 식으로 포장하는 것은 다소 무리한 해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냉전 시기가 끝나고 사회주의권이 붕괴하면서 미국은 자국의 코앞에 있는 쿠바의 사회주의 정권을 몰아내기 위해 경제 봉쇄 정책을 실시했다. 하지만 쿠바와 관계 개선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고 이에 2015년 7월 1일(현지시각) 양국은 국교 정상화를 선언했으며 다음해인 2016년 3월 20일(현지시각)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는 88년 만에 쿠바에 국빈방문하기도 했다.

2016년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이 쿠바에서 열린 '제7차 카리브국가연합(ACS) 정상회의'에 참석해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교 장관과 양국 최초 공식 외교장관 회담을 가진 것도 미-쿠바 간 관계정상화 및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 방문이 선행됐기 때문에 실행 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 평가다.

윤 장관이 당시 수교를 적극적으로 언급했지만 속도를 내지 못한 배경 또한 미국의 영향이 크다. 2016년 대통령 선거를 통해 미국의 정권이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넘어갔는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쿠바에 대해 금융거래를 제한하고 라울 카스트로 쿠바 공산당 서기장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이 미국의 조치와 무관하게 쿠바와 수교를 추진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편 쿠바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그란마>는 14일(현지시각) 이번 수교에 대해 "쿠바와 대한민국 사이에 외교 영사 관계가 수립됐다"며 "유엔 헌장과 국제법 및 1961년 4월 18일 채택된 외교관계를 위한 비엔나 협약의 정신과 규칙에 합치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이어 "두 나라가 자동차 산업, 에어컨, 냉장고, 고화질 텔레비전 및 휴대폰과 같은 분야에서 경제적, 상업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혀 북한을 비롯한 타국가 및 정치적 부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 14일 외교부는 뉴욕에서 한국과 쿠바가 주 유엔대표부 간 외교 공한 교환을 통해 양국 간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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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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