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 이스라엘에 동조하는 '가해자' 독일, '피해자' 한국은?

[인권학의 프런티어] 제노사이드 '가해자' 독일의 위선과 '피해자' 한국의 이중성

인권에 대한 물음이 쏟아지는 나날이다. 인권보장을 외치는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가 커져가는 사이, 한편에선 그 목소리의 정당성을 두고 격론이 펼쳐진다. 갖은 물음에 답하기 위해 <프레시안>과 한국인권학회가 만났다. 인권은 사회적 화두인 동시에 연구와 학문의 대상이다. 학계가 쌓아온 '인권학' 연구를 사회적 화두로 다시 던진다. 평화-인권-환경 연구자인 황준서 박사가 글을 쓴다. 편집자

2024년 1월 동안 국제사법재판소가 있는 네덜란드 헤이그 평화광장 앞에서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집회와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집회가 번갈아가면서 열렸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폭격 및 민간인 학살을 국제법상 금지행위인 '제노사이드(이른바 집단학살)'로 규정하고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2024년 1월 26일, 국제사법재판소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폭력이 제노사이드에 해당할 '여지(plausible)'를 인정하며, 즉각적인 제노사이드 방지조치를 권고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 국가들, 특히 독일은 "제노사이드가 아니라 자기방어"라고 주장하는 이스라엘의 편을 견고하게 유지하고 있다.

필자는 평화광장에 서서 '제노사이드 가해자'로서 오랜 역사를 가진 독일이 당당하게 이스라엘의 편에 서는 모습을 지켜보며, 서구의 위선에 대해 개탄하는 동시에 한국의 목소리는 어디에 있는지 묻고자 한다.

1904년 1월 12일의 독일

아프리카 대륙 남서쪽 '독일령 남서아프리카(Deutsch-Südwestafrika, 현재 나미비아)'를 점령하고 있던 독일 제국주의자들은 헤레로족과 나마족이 이끄는 무장저항에 직면했다. 그 지역 토착민들이었던 헤레로족들과 나마족은 독일인들에게 토지를 수탈당하고, 노예와 소작농 신세로 전락하였다.

독일인들은 식민지배에 반발하는 주민들을 상대로 고문과 성폭행을 저질렀다. 독일인들은 토착민들을 인간이 아니라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였고, 달리 저항의 방법이 남아있지 않았던 토착민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무력을 동원하여 자신들도 인격을 가진 존재임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무장봉기를 일으킨 토착민들은 독일군 100여 명을 살해하고, 독일인들의 정착촌을 파괴하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여성, 아동,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해치지는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은 총을 앞세운 독일인들을 이길 수 없었다. 100여 명의 독일인 사망 소식에 분노한 독일 정부는 1만4000명에 달하는 독일군을 동원하여 '진압'에 나섰는데, 당시 독일군 사령관은 "무장반란을 일으킨 자들은 더 이상 독일 제국의 신민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며 인종학살의 의지를 불태웠다.

학살은 1907년까지 계속되었고, 무력저항을 주도한 헤레로족은 약 80%, 이에 동참했던 나마족은 절반 이상이 몰살당했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빈곤과 질병, 비인간적 대우에 시달리며 불행한 삶을 살아야만 했다.

1904~1907년 사이 벌어진 '헤레로·나마족 대학살 사건'(Völkermord an den Herero und Nama)은 20세기 최초의 제노사이드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독일은 물론 이른바 글로벌 북반부(Global North)에서 이 사건은 마치 일어난 적이 없었던 것처럼 공적 기억 속에서 지워져 있다.

헤레로족·나마족 후손들과 인권단체들은 독일 기업에게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 독일 정부에게 대학살의 책임을 묻는 소송 등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독일 정부는 집권당의 정치 성향을 막론하고 대학살 사건 생존자 후손들의 사죄와 배상 요구를 끊임없이 무시해왔다. 본인들 스스로 2021년에 나미비아 정부와 협상 끝에 1904년~1907년 대학살 사건을 제노사이드로 인정하는 성명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 알-샤프 공동묘지가 이스라엘군의 불도저에 의해 파헤쳐져 묘석들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월 11일 (현지시간) 촬영. 2024.01.30. ⓒ(가자시티 AFP=연합뉴스)

최초의 그리고 최대의 제노사이드 학살자 독일

2021년 5월 28일 독일 정부는 "역사적 책임과 도덕적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나미비아와 피해자 후손들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하면서 나미비아와 피해자 후손들을 위한 11억 유로 상당 개발프로그램을 "지원"을 약속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성명은 1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서야 독일 정부가 공식적으로 나미비아에서 일어났던 대학살을 제노사이드로 인정했다는 의의가 있다. 다만 그게 전부이다. 독일 정부는 (A4 2장도 안 되는 분량의 짧은 성명서를 통한) 공식 사죄와 개발 지원금을 급부로 학살 피해자 후손들이 과거사에 대한 법적 배상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나미비아 정부와 합의를 반대급부로 얻었다. 독일-나미비아판 한일청구권협정 사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독일은 20세기 최초의 제노사이드를 기억 속에서 지우려 애를 쓰고 있다.

한편 나미비아 대학살을 자행했던 독일은 1940년대에 이르러 나치 정권의 주도 아래 유대인, 동성애자, 로마인(Rome), 소련인, 양심수 등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면서 근대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를 초래한 집단학살을 저질렀다. 우리는 이 사건을 홀로코스트(Holocaust)로 기억하고, 이 사건을 계기로 1948년 12월 9일 국제연합(UN)은 제노사이드금지협약(the Genocide Convention)을 제정하였다. 제노사이드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이 인간에게 저질러서는 안 되는 행위가 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독일은 홀로코스트 사죄와 책임자 처벌, 유대인 생존자 배상을 노력해왔다. 1970년에 독일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총리는 폴란드를 찾아 바르샤바 게토 봉기 희생자 위령탑에 무릎을 꿇었다. 독일 정부는 지금까지도 전범 처벌을 피해 도주한 나치 인사들을 추적하여 법정에 세우고 있다. 그리고 학살 재발 방지를 위한 교육과 유대인 혐오 표현을 규제하고 있다.

2024년 1월 12일의 독일

2023년 10월 7일 무장투쟁을 통한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주장하는 무장정파 하마스(HAMAS)가 유대인 정착촌 주민들을 납치하고, 고문과 성폭력, 살해를 저지른 데에 대하여 이스라엘 정부는 (온갖 국제법을 위반하면서 팔레스타인을 식민지배 해온 자신들의 과오는 직시하지 않고) 각종 대량살상무기와 중화기를 동원하여 대응하고 있다.

심지어 "하마스 섬멸"을 목적으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위협하기도 했다. 현재 이스라엘의 폭격이 계속되고 있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는 지금까지 2만4000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으며, 그 중 70%는 여성과 아이들이라고 한다.

이스라엘은 피난길을 가로막고, 계획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 총알과 폭탄을 퍼붓고 있다. 이스라엘 군의 저격으로 사망한 사람들 중에는 PRESS 조끼를 입는 기자들도 80명이 넘는다. '하마스가 숨어있을 가능성'을 이유로 부상자들과 노약자들이 모여 있는 병원에 집중적으로 폭격이 이뤄지고 있다. 가자 지구에 있는 모든 대학과 교육시설이 파괴되었으며,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는 이제 가자지구를 이스라엘 영토로 아예 편입시킬 의지를 당당하게 피력하고 있다.

이는 마치 20세기 독일이 집단학살을 저지르던 모습과 너무나 닮았다. 제노사이드 개념을 처음 고안한 라파엘 렘킨(Raphael Lemkin)을 따르는 '렘킨 연구소(Lemkin Institute for Genocide Prevention)'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에 대해 제노사이드 범죄로 조사를 해야 한다고 촉구하였다.

이스라엘이 무차별적인 살의를 불태우는 동안 서구 국가들은 방관했다. (다만 독일은 이스라엘의 "자기방어권" 행사를 지지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수호자를 자처해온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서구 정치인들은 국제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면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 문제를 외면했다. 반면 서구 열강과 이스라엘이 지지한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에 의해 고통받았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이스라엘을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에 제노사이드금지협약을 위반을 이유로 제소했다.

제노사이드에 일가견이 있는 독일은 이스라엘은 제노사이드를 저지르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 재판은 무슬림 테러리스트들을 옹호하는 "반유대주의적" 행위라고 남아공을 훈계한다. 독일이 그렇게 이스라엘을 지키고자 한다면,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안은 독일을 둘로 나누어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슬람 테러'로부터 안전하게 정착시켜주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독일의 착각(또는 소망)과 달리 이 재판은 단순히 '홀로코스트 희생자' 이스라엘 대 '친-이슬람' 남아공만의 소송이 아니다.

이 소송은 이스라엘의 뒤에 숨어 자신들의 제노사이드 과거사를 감추고자 하는 서구 국가들과 남아공과 함께 지구상 모든 곳에서도 제노사이드를 막으려는 나라들의 대결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독일이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이스라엘을 변론하겠다고 발표한 2024년 1월 12일, 나미비아 정부는 즉각적으로 독일 정부를 반박하며 진실을 똑바로 볼 것을 촉구했다.

▲ 지난 1월 24일(현지시각) 가자지구의 칸유니스에서 폭발이 일어나 연기가 올라오고 있다. ⓒAFP=연합뉴스

정의를 향한 투쟁 앞에 '식민지의 아픔' 간직한 한국은 어디에?

현재 글로벌 북반구에서 남아공의 입장에 동조하여 이스라엘 제소에 찬성한 나라는 벨기에와 아일랜드밖에 없다. 다만 아일랜드 정부는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 혐의를 주장하기 보다는, 법의 판결을 받아보자는 중립적인 입장에 가깝다. 한국 정부는 지금 어느 편에 서있는가? 이 재판은 그저 다른 대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불과한가? 오히려 이스라엘에 더 많은 무기를 수출할 기회로 보이는가?

지금 한국 정부의 모습은 마치 가자 지구에 폭격이 시작되면 망원경을 들고 몰려가서 구경하는 이스라엘 정착촌 사람들의 모습과 같다. 우리나라는 독일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책임 있는' 사죄를 상징하는 이 장면을 두고 과거사를 부정하는 일본 정부를 비판해왔다.

독일은 무책임한 자세로 일관하는 일본에 비해 우리에게 과거사 청산과 화해의 귀감이 되어 왔다. 하지만 식민지라는 위치성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국은 제국의 위치에서 과거사에 대한 독일의 위선과 무책임한 자세도 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학살을 변호하느라 애쓰는 독일을 비롯한 서구 국가들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2024년 1월 26일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은 국제인권법 역사에서 큰 함의를 갖는다. 무엇보다 이스라엘 정부가 제노사이드협약을 위반했을 가능성에 대해 경고하였으며, 특히 이스라엘이 추천한 판사조차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이 직면한 인도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이스라엘 정부의 즉각적인 조치를 권고하였다.

만약 이 소송에서 이스라엘이 모든 제노사이드 혐의를 벗고, 사실상 승소하였다면 제노사이드의 기준을 다시 써야했을 것이며, 국제법은 폐허 앞에서 한없이 무력한 모습을 보여주며 정당성이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패소는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도 이스라엘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온 서구의 패배를 상징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서구 국가들은 제노사이드 혐의를 벗지 못한 이스라엘이 제기한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에 하마스 조직원이 연루되어 있다는 주장에 동조하여 UNRWA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며 도덕적 자멸을 부추기고 있다.

심지어 사태를 관망하던 일본도 인도적 지원 중단에 동참했다. 헤이그 평화광장에서 비를 맞으며, 독일 거리를 걸으며 이스라엘 국기를 볼 때 필자는 소망했다. 식민지의 아픔을 기억하는 한국이 이스라엘 제소에 동참하기를. 그러나 한국은 침묵했다.

이제라도 한국이 책임 있는 자세로, 독일 같은 위선자들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이스라엘에 대한 한국산 무기 수출 중단과 UNRWA에 대한 인도적 지원 증액은 다른 길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연합한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이 1월 19일 오후 대전 서구 방위사업청 앞에서 한국 정부의 이스라엘 무기 수출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집회 이후 이스라엘 무기 수출 중단을 촉구하는 1만여명의 서명을 방위사업청에 전달했다. ⓒ연합뉴스

※<소개논문> 최웅식. 2022. “나미비아와의 협상 타결에 대한 마스 독일 외무장관의 2021. 5. 28. 성명”. 『인권연구』 5(1): 249–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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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서

퀸즈벨파스트대학교(Queen's University Belfast)에서 북아일랜드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한 삼중 전환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고, 2022년에 졸업하였다. 생태정의, 환경범죄, 지속가능한 평화, 탈인간중심적 인권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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