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재집권하면 주한미군 철수하고 분담금 대폭 인상한다?

[정욱식 칼럼] 평화의 재발명(8) : 지혜로운 '트럼프 리스크' 대처법은?

'트럼프 리스크'가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에서도 최악의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1월 미국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한국이 감당하기 힘든 리스크가 몰아칠 수 있다는 것이다.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그가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또다시 정상회담에 나서 비핵화는 사실상 포기하고 북한의 핵무장을 묵인하면서 군비통제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편으로는 북한이 "불가역적인 핵보유국"을 법제화하면서 '비핵화의 종말'을 선언한 상황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내에서 군비통제론이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시나리오가 가시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또 하나는 트럼프가 한미연합훈련 및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중단, 심지어 주한미군 철수를 위협하면서 한국을 상대로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인상을 요구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1기 트럼프 행정부가 보여준 모습이나 최근 트럼프 및 그의 과거 참모들의 발언을 종합해볼 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이다.

이 두 가지 시나리오에 윤석열 정부가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가도 매우 중요하다. 일단 윤 정부는 한미관계와 국내 정치 지형 사이에서 심각한 딜레마에 처할 것이다.

국내에선 북핵 군비통제 모델이 북한의 핵무장을 인정하는 꼴이라며 강력히 반발할 것이다. 특히 윤 정부의 지지기반인 보수 진영에서 이러한 주장이 맹위를 떨칠 것이다.

또 보수 진영에선 방위비 분담금을 인상해서라도 주한미군 철수를 막고 한미동맹을 굳건히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나올 텐데, 이에 대해 전체 여론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미지수이다. 이미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인상해준 상황이고 불용액도 상당한 수준이기에 그러하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시나리오가 고도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김정은과 트럼프의 만남이 성사된다면, 아마도 북핵·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동결과 한미(일)연합훈련 및 미국 전략자산 전개 중단, 그리고 대북 제재 일부 완화가 논의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러한 거래가 북한의 ICBM 고도화를 저지해 미국을 안전하게 만들고 세계 3차 대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한반도 전쟁을 예방하며 북미관계 개선을 통해 중국 및 러시아와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하는 것이라고 자랑할 것이다. 김정은 입장에서도 북한이 거론해온 미국의 적대시 정책 일부를 해결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고려할 법한 내용이다.

트럼프가 북한의 제한적인 핵보유 묵인과 확장억제를 포함한 한미연합방위체계의 약화 쪽으로 움직이고 김정은도 이에 호응한다면, 국내에선 '최악의 시나리오가 다가오고 있다'며 독자적인 핵무장론이 강하게 부상할 것이다.

특히 핵비확산체제에도 도통 무관심하고 '당신의 안보는 스스로 책임져라'는 인식도 강한 트럼프의 귀환을 핵무장 추진의 기회로 인식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전화위복(轉禍爲福)형 핵무장론'이 맹위를 떨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가 따져봐야 할 사안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주한미군 철수론이 트럼프의 진심이든,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을 압박하기 위한 지렛대이든, 주한미군 철수가 가시화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1기 트럼프 행정부 때처럼 미국 의회가 국방수권법을 통해 주한미군의 철수는 물론이고 감축도 불허하는 조항을 초당적으로 넣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에 미국 의회가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 탈퇴하려고 할 경우 상원의 3분의 2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법을 제정한 것에서도 이러한 기류를 읽을 수 있다.

또 독자적인 핵무장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점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은 7일 KBS에서 방송된 신년대담에서 "핵 개발 역량은 우리나라 과학기술에 비춰 볼 때 마음만 먹으면 시일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핵무장이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 발언이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기도 하다. 고농축 우라늄 방식이든, 플루토늄 방식이든 수년은 족히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시간적인 불일치'를 잉태한다. 즉 한국이 2기 트럼프 행정부의 묵인 하에 핵 개발에 착수하더라도 그 다음 미국 행정부가 생각을 달리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뜻이다.

이는 '트럼프 리스크'에 대비하는 지혜가 차분함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한미군이 철수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손쉽게 핵무장을 할 수 있다는 자만심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군비통제 모델이 과연 최악의 시나리오인가에 대해서도 차분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반도의 현실에서 최선의 시나리오는 평화체제와 비핵화, 그리고 남북관계 회복·발전과 북미·북일관계 정상화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나리오는 상당 기간 불가능해졌다. 반면 최악의 시나리오는 전쟁이다. 가능성은 낮지만 그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한반도의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차악과 차선도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독자적인 핵무장 추진이 차악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군비통제 모델이 차선책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 이유의 일단은 국내 일부의 자가당착에서 찾을 수 있다. 혹자들은 북한의 ICBM 보유가 유사시 미국의 개입을 억제해 북한의 한반도 공산화 통일을 도모할 수 있는 '게임 체인저'라고 부른다. 동시에 군비통제나 핵군축 협상은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는 것이어서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말한다.

하지만 ICBM을 비롯한 북핵 고도화 동결이나 일부 감축은 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개입을 저지하려는 북한의 대미 억제력의 약화나 제거와 같은 말이다. 이는 북핵 제한의 상응조치로 대규모 한미연합훈련 및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를 중단해 확장억제의 '가시성'은 줄어들 수 있지만 '안정성'은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군비통제 모델의 상대적인 장점은 여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쌍중단'의 제도화는 한반도 위기가 '뉴노멀'이 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또 북핵이 많은 것보단 적은 것이 그나마 낫다.

무엇보다도 군비통제는 군사력 균형을 가급적 낮은 상태에서 유지하면서 인간의 오판과 오인, 기계의 오작동으로 인한 우발적 충돌과 확전을 막자는 취지를 담고 있어 한반도 전쟁위기 예방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군비통제 모델이 트럼프의 턱없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를 막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식이라는 점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기실 군비통제 모델은 트럼프의 귀환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가 공론화하고 추구해야 할 대안이다. 독자적 핵무장론은 단순명쾌해 보일 수 있지만, 껍질을 벗겨보면 매우 복잡하고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위적인 조치가 아니라 자해적인 조치가 될 공산이 크다. 반면 군비통제론은 복잡하고 불만족스러울 수 있지만, 실현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높고 현재와 예견되는 미래보다 더 나은 상태를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품고 있다.

▲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월 16일(현지시각) 미국 뉴햄프셔주에서 지지자들을 상대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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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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