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선 넘지 말아야 '연합정치' 바늘구멍 열린다

[이관후 칼럼] 비례연합정당, 위성정당인가 선거연합인가?

선거제 선택은 온전히 이재명 대표의 몫

선거가 100일도 남지 않았지만, 어떤 제도로 선거를 치를지 아직 오리무중이다. 거대양당, 특히 민주당 지도부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이야기로 그 부당성을 지적했기 때문에 말을 보태고 싶지 않다. 나중에 돌아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는 사실이 황당할 지경일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으로 만약의 상황에 대해서만 언급하고자 한다. 선거제도가 병립으로 돌아간다면 아마도 잠재적 민주당 지지층의 1/3정도는, 이번 선거는 물론이고 향후 어떤 선거에서도 정치인 이재명을 지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지지할 이유를 찾지 못할 것이다. 정치에는 가치와 명분, 도덕이 아무리 적어도 조금은 포함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가 오로지 공학적 계산으로만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아마도 그것을 정치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민주당의 지지자들이 평등이나 평화, 복지를 선호하는 만큼,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자유시장과 능력주의를 선호한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명분과 민주주의를 좋아하고,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실리와 권력을 좋아한다. 정답은 없다. 여기에는 분명한 호오가 있고, 가치 경쟁이 존재한다. 또 그 경쟁에서 윤리와 도덕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가치다.

그래서 정치에는 넘을 수 있는 선과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 그 기준은 보편적이지 않으며, 여기에 정치인이 감내해야 할 몫, 혹은 권한이 있다. 지금은 이미 그 판단을 내려야 할 시한도 많이 지났다. 정치에서는 어떤 결정도 가능하다. 이제 이재명 대표가 선택을 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면 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8일 국회에서 열린 대한민국 생존을 위한 저출생 종합대책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야권연합정당은 위성정당이라는 주장

이 선택과 관련해서 구체적인 정치적 상황을 놓고 하나의 논쟁이 있다. 용혜인 의원 등이 제기한 야권연합 비례정당이 위성정당이냐 아니냐라는 논란이다.

먼저 국민의힘은 이 제안을 맹비난하고 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당의 공식적 입장이 정해져 있지 않다 보니 민주당 내에서 현 제도를 유지하면서 야권을 아우르는 비례연합정당을 결성하자는 군소야당의 제안에 동조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면서 "우리 당은 병립형 비례대표제의 복원을 주장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어도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을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우리 당은 일관되게 위성정당 자체가 출범할 수 없는 병립형 선거법을 만들자는 것"이라고 답했다.

다른 한편, 일부 진보 진영에서도 이 야권연합정당이 민주당의 위성정당에 불과하다는 비판적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소수정당들이 모여 민주당의 위성정당을 자처하고 나선 모양'이라는 것이다.

국민의힘 주장은 일관성 없는 정치적 공세

우선 국민의힘이라고 늘 틀린 말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기각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만,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대안이 가장 후진적인 제도라는 점은 명백하다. 국민의힘은 '선거제는 국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쉬워야 하고, 민의를 명확하게 반영해야 한다'고 말한다. 누구나 조금만 관심이 있으면 알 수 있듯이,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물론 민의가 반드시 정당을 통해서 반영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후보자가 당선되는 가장 큰 요인이 정당인 나라에서, 정당에 대한 지지가 의석의 배분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연히 민의의 왜곡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총선에서 두 정당이 득표한 비율은 각각 33.8%, 33.4%로 합쳐도 67.2%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두 정당은 실제 의석 배분에서 94.3%라는, 민주화 이후 가장 높은 양당 점유율을 기록했다. 완전 연동형 선거제도라면 300석 중 206석을 차지했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283석을 차지한 것이다.

이 결과에서는 현재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이 억울한 면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억울함은 결과적으로 자신들이 자초한 것이다. 당시 민주당은 지역구에서 163석, 미래통합당은 84석을 얻었다. 자신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지역구 소선거구제가 독이 된 것이다. 자신들이 지금 주장하는 병립형이라면, 비례대표에서 어느 정도 만회를 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구에서 2배 가까운 격차를 줄이기는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연동형 때와 병립형 때 비례대표를 찍는 유권자들의 선택이 다를 것이기 때문에, 흔히 시뮬레이션이라는 말로 억지 적용되는 단순 비교는 의미가 없다고 본다.)

그래서 국민의힘이 '민의를 명확하게 반영해야 한다'는 말은 현실을 교묘하게 호도한 것이다. 지역구가 253석, 비례대표가 47석 뿐인 우리 의석 배분에서, 병립형은 굳이 말하자면 동등한 병립이 아니라 지역구 중심의 선거다. 엄밀한 의미의 '병립'은 아니다. 국민의힘은 비례대표를 아예 없애자는 주장도 한다. 그래서 일관성이 없다. 국민의 다양성을 의회에 어떻게 반영할지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의 주장은 요약하면 '우리는 보수연합을 하기가 어렵고(해도 도움이 안 되고), 그래서 위성정당을 만들어야 하는데, 상대도 위성정당이라고 해야 동등해진다'가 될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민주당이 주도하나? 소수정당과 시민사회가 주도하나?

다음으로 일부 진보 진영에서 비판하는 내용을 살펴보자. 특정 정당이 공개적으로 이런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체적 셈법이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비판은 상당한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연동형 제도가 가진 취지에 비추어 볼 때, 각 정당이 개별적으로 득표 경쟁에 나서면 되지, 민주당이 참여하는 비례연합정당을 만드는 목표가 지나치게 정치공학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 수 있는지, 몇 가지 쟁점을 확인해보자.

먼저 앞으로 만들어지게 될 비례연합정당이 누구의 주도로 만들어지는가는 변수가 될 수 있다. 우선 현재 용혜인 의윈 등이 주장하는 비례연합정당이 민주당이 주도하는 정당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지난 총선에서 양대 정당 주도로 만들어졌던 위성정당과는 만들어지는 과정이 크게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지난 총선에서도 민주당이 아닌 야권의 비례연합신당 시도가 있었다. 그리고 구체적인 논의가 상당부분 진행되었는데, 민주당이 새로이 위성정당을 만들면서 좌절되었다. 지금의 야권 비례연합정당 구성 시도는 당시 시민사회의 시도와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소수정당과 시민사회가 주동이 되어 반보수 연합을 결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이미 보수정당이 위성정당을 만들기로 결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만약 민주당이 나서서 더불어시민당을 만들지만 않았다면 21대 국회는 보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구성되었을 것이다. 민주당은 이미 지역구에서 과반을 넘겼고, 굳이 합당까지 전제한 친민주당계 비례연합정당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것이 민주당의 팬덤화를 약화시키고 지지기반을 넓혀서 정권재창출에도 도움이 되었을 가능성도 높다.

민주당의 참여 여부가 중요한가?

그렇다면 지난 총선에서 소수정당과 시민사회가 추진했던 비례연합정당과 지금의 시도에서 차이점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차이 중 하나는 민주당이 참여하느냐 마느냐일 것이다. 여기서의 변수는 참여 자체가 아니라, 민주당이 어떤 형식으로 언제 참여하느냐다. 또 선거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이냐도 문제가 된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이렇게 크게 3가지가 변수가 있다.

먼저 가장 큰 변수는, 지난 한달 여 동안 민주당 지도부가 '야권비례연합정당의 실체가 없이는 연동형을 선택할 수 없다'고 버틴 것이다. 이로써 야권의 비례연합신당의 모체를 만드는 일은 온전히 소수정당과 시민사회의 몫으로 남겨졌다. 왜냐면 민주당이 이에 개입하는 순간, 위성정당 논란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까지의 진행도 개혁연합과 진보연합이라는 두 블럭을 중심으로 시민사회가 중재를 해가는 모습이다.

민주당의 연동형 지지파 의원들은 곁에서 박수를 칠 수 있을 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아마도 민주당 지도부가 연동형을 결정하는 순간까지, 이런 움직임은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달리 말해, 민주당의 연동형 지지파는 이 실체가 중간에 깨져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 때 지도부는 조용히 병립을 선언할 것이다. 선거제도에 대해 민주당이 하나의 단일한 입장을 가진 주체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현재의 비례연합신당의 주도권은 소수정당과 시민사회에 있을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는 참여의 방식이다. 민주당 내 연동형 지지파가 제시한 방안은, 이미 골간이 만들어진 비례연합정당에 민주당이 후순위로 참여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 '후순위'라는 용어는 참여의 시점과 비례대표 순번을 모두 함축한 의미로 보인다. 민주당의 현실적인 과제는 지역구를 선택할 수 없는 영입인사나 대구경북과 같은 열세지역의 출마예정자를 안배하는 차원에 있다.

문제는 형식이다. 위성정당이냐 아니냐를 가늠할 기준은 공천 과정일 것이다. 즉, 정당 간 지분 협상으로 비례의 숫자와 순번을 정할 것이냐, 아니면 정당들이 추천권만을 갖고 국민배심원제 같은 투명한 공개적 방식으로 이 절차를 진행할 것이냐 하는 부분이다. 만약 이러한 공천과정이 가능하다면, 이 정당은 민주당이 주도하는 위성정당 논란을 벗어나 연동형 선거제도에서 가능한 연합정치의 한 모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선거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마지막 변수는 총선 이후에 이 당이 어떻게 되느냐다. 불가능한 방식은 1가지이고, 가능한 방식은 3가지다. 먼저 불가능한 것은 민주당과의 합당이다. 이것은 위성정당방지법과 관계없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어떻게 만들어진 당이냐와 관계없이 위성정당임을 부정할 수 없도록 만든다.

위성정당이 아니라면 3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모두가 다 흩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이번 총선에서의 비례연합정당이 말 그대로 '선거용 연합'이며, 모든 정당들 간에는 건널 수 없는 가치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방식이다. 가치가 달라도 선거에서 연합할 명분은 충분하다. 선거제도의 개혁성을 지키고, 다당제 연합정치를 구축하며, 윤석열 정부를 심판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정당으로 계속 유지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정당들 간의 가치 지향이 달라서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는 민주당 쪽 비례의원들이 돌아가고, 나머지 정당들이 플랫폼정당의 형식이나 당 내 당 전략을 구사하며 하나의 정당으로 남는 것, 혹은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정도의 느슨한 연대체로 남는 것이다. 한때 고 노회찬 의원은 정동영 의원 등과 연합하여 교섭단체를 구성한 적이 있다. 그런 일이 또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위성정당이란 말 그대로 행성과 같은 중심 정당이 있고, 그 주변을 도는 위성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정당이 있다는 뜻이다. 선거연합이든 가치연합이든 민주당의 일부가 참여하는 것과, 민주당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그것을 무화하는 것은 정치적 수사일 수는 있지만, 실제의 정치는 아니다.

또, 아무리 선거연합이라고 하더라도 권력을 위한 연합이라면 유권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는 기후 위기, 저출산 고령화,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을 막아내고, 정치제도를 추가로 개혁한다는 원칙과 같은 총선 이후 함께 추진할 수 있는 가치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위성정당 논란에서 벗어나 명실상부한 '연합정당'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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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후

16대, 17대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하고, 영국 런던대학교(UCL)에서 '정치적 대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와 경남연구원에서 일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정책보좌관, 국무총리 메시지비서관을 지냈다. 정치의 이론과 현실에 모두 관심이 있다.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프레시안>을 비롯해 <경향신문>, <한겨레>, <피렌체의 식탁>에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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