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정일 유산 지우려는 정은…새 남북관계 성공할 수 있을까

헌법에 영토 조항 개설,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 철거 등 적대적 남북관계 새판짜기

남한을 '대한민국'이라 부르며 적대국가로 규정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그동안 남북관계의 유산과 역사를 없애겠다고 밝혔다. 할아버지인 김일성 전 주석과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업적까지 지우겠다는 김 위원장의 발표가 실제 실행 가능할지 주목된다.

16일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15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시정연설을 가졌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30일 제8기 9차 전원회의 마지막날 "북남 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며 남북관계를 규정했는데, 이번 시정연설에는 이에 따른 구체적 실행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우선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이미 나는 지난번 전원회의에서 대한민국 헌법이라는데 '대한민국의 영토는 조선반도(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버젓이 명기되여있는 사실에 대하여 상기시켰다"며 북한 헌법에도 이러한 조항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현재 우리나라 헌법에는 상기내용들을 반영한 조항이 없는데 우리 공화국이 대한민국은 화해와 통일의 상대이며 동족이라는 현실모순적인 기성개념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철저한 타국으로,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규제한 이상 독립적인 사회주의국가로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주권 행사 영역을 합법적으로 정확히 규정짓기 위한 법률적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 평정, 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반영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헌법에 있는 '북반부',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이라는 표현들이 이제는 삭제되여야 한다고 본다"며 그간 남북관계를 상징하는 주요 언어도 제거할 뜻을 밝히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인민들의 정치사상생활과 정신문화생활령역에서 '삼천리금수강산', '8천만 겨레'와 같이 북과 남을 동족으로 오도하는 잔재적인 낱말들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과 대한민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으로, 불변의 주적으로 확고히 간주하도록 교육교양사업을 강화한다는 것을 해당 조문에 명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날 연설에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대 때 만들어졌던 남북통일 원칙을 상징하는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의 철거를 예고하기도 했다.

그는 "수도 평양의 남쪽관문에 꼴불견으로 서있는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을 철거해버리는 등 이여의 대책들도 실행함으로써 우리 공화국의 민족력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자체를 완전히 제거해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은 1972년 발표된 7.4 남북공동성명에서 자주·평화·민족대단결로 대표되는 '조국통일3대원칙' 및 1980년 10월 당 제6차 대회에서 나온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1993년 4월 7일 최고인민회의 제9기 5차 전원회의에서 공개된 '조국통일을 위한 민족대단결 10대 강령' 등에서 나온 통일 관련 합의와 주장을 '3대 헌장'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 기념탑이었다.

김 위원장은 "헌법개정과 함께 '동족, 동질관계로서의 북남조선', '우리 민족끼리', '평화통일' 등의 상징으로 비쳐질 수 있는 과거시대의 잔여물들을 처리해버리기 위한 실무적 대책들을 적시적으로 따라세워야 한다"며 철거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또 "북남교류협력의 상징으로 존재하던 경의선의 우리 측 구간을 회복 불가한 수준으로 물리적으로 완전히 끊어 놓는 것을 비롯하여 접경지역의 모든 북남련계 조건들을 철저히 분리시키기 위한 단계별 조치들을 엄격히 실시하여야 하겠다"고 밝혀 남북 간 연결을 위한 물리적 통로도 차단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다만 김 위원장은 "나는 이러한 문제들을 반영하여 공화국 헌법이 개정되여야 하며 다음번 최고인민회의에서 심의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혀 당장 헌법 개정 조치를 취하지는 않을 것임을 밝혔다.

▲ 16일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5일 시정연설을 가졌다고 보도했다. ⓒ로동신문=뉴스1

한편 김 위원장은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이 발생했을 때 철저하게 대비하겠지만, 먼저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 위원장은 "우리가 키우는 최강의 절대적 힘은 그 무슨 일방적인 '무력통일'을 위한 선제공격수단이 아니라 철저히 우리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꼭 키워야만 하는 자위권에 속하는 정당방위력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언한다"고 말했다.

그는 "명백히 하건대 우리는 적들이 건드리지 않는 이상 결코 일방적으로 전쟁을 결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이것을 그 무슨 우리의 나약성으로 오판하면 절대로 안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위원장은 "대한민국이라는 최대의 적국이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에 병존하고 있는 특수한 환경과 미국놈들의 주도하에 군사적 긴장격화로 지역정세의 불안정성이 증대되는 현실을 랭철하게 고찰해보면 물리적 충돌에 의한 확전으로 전쟁이 발발할 위험은 현저히 높아지고 위험단계에 이르렀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그는 "우리는 전쟁을 바라지 않지만 결코 피할 생각 또한 없다. 전쟁이라는 선택을 할 그 어떤 이유도 없으며 따라서 일방적으로 결행할 의도도 없지만, 일단 전쟁이 우리 앞의 현실로 다가온다면 절대로 피하는데 노력하지 않을 것"이라며 "자기의 주권사수와 인민의 안전, 생존권을 수호하여 우리는 철저히 준비된 행동에 완벽하고 신속하게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전쟁은 대한민국이라는 실체를 끔찍하게 괴멸시키고 끝나게 만들 것이고 미국에는 상상해보지 못한 재앙과 패배를 안길 것"이라며 "우리의 군사적 능력은 이미 그러한 준비태세에 있으며 빠른 속도로 갱신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국가의 남쪽국경선이 명백히 그어진 이상 불법무법의 '북방한계선'을 비롯한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이 우리의 영토, 영공, 영해를 0.001mm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도발로 간주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의 남북관계 '지우기'는 관련 기구의 폐쇄로 이어지고 있다. 통신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을 페지함에 대한 결정 발표'에서 최고인민회의가 이같은 결정을 내렸으며 실무적 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전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통일부와 당국 회담을 주로 맡았던 기관이며 민족경제협력국은 주로 남한과 교류 협력을 전담했던 기구다. 금강산 국제 관광국은 현대그룹이 담당했던 금강산 관광사업을 담당했던 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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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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