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관여 의혹 외교부 장관 후보자 "국익 위한 것이 왜 범죄되나"

"다른 문제는 몰라도 강제징용 판결 관련 사법농단으로 정의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어"

조태열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양승태 대법원장의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중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판결과 관련해 청와대와 대법원, 외교부 사이에 재판 거래 의혹이 있었다는 데 대해 동의할 수 없다면서 국익을 위한 것이 왜 범죄가 되냐고 따져 물었다.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열린 외교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조태열 후보자는 사법농단 사건이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재판에 개입하고 삼권분립 원칙에 반해 행정부와 거래했던 범죄행위 아니냐는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의 지적에 "다른 문제는 몰라도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된 문제를 사법농단으로 정의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조 후보자는 2015년 임종원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을 만나고 이후 강제동원 재판과 관련한 외교부의 의견서를 제출한 것에 대해 "법원행정처도 외교부가 하는 고민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당시 법원행정처와 외교부 간 이같은 행동이 부정한 범죄 인식 하에 진행한 것 아니냐는 전 의원의 지적에 조 후보자는 "외교관계를 걱정하는 게 어떻게 범죄 인식인가? 한일 관계에 미칠 파장을 염하는 게 어떻게 범죄 의식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 8일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열린 외교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조태열 후보자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 후보자의 사법농단 개입 의혹에 대해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된 시민단체들은 그가 강제동원 재판과 연계된 사법농단 사건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이라며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연이어 발표했다.

5일 민족문제연구소는 성명에서 "박근혜 청와대와 양승태 사법부, 피고 대리인 김앤장까지 가담한 사법 농단 카르텔은 '국익'이라는 미명 아래에 피해자들이 평생 싸워 얻어낸 역사적인 대법원의 승소 판결을 뒤집기 위해 추악한 재판거래를 실행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외교부가 2012년 5월 24일 강제동원 피해자들인 원고의 승소 취지로 파기 환송된 대법원 판결과 관련, 이를 막아달라는 일본 정부의 요구를 법원행정처에 '고충'으로 전달해 재판 개입을 시도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대법원은 2015년 1월 28일 민사소송규칙까지 개정하여 외교부가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었다"며 "2015년 6월 22일 당시 조태열 외교부 2차관은 임종원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을 만나 의견서 제출에 대해 논의했으며, 그 이후에도 2015년과 2016년에 걸쳐 두 차례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이어 "2016년 10월 6일 김앤장은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을 대법원에 촉구했고, 11월 29일 외교부는 대법원에 강제동원 소송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했다"며 "외교부 의견서는 조태열 당시 외교부 2차관의 손을 거쳐 제출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조태열 후보자는 부인하고 있지만, 2015년 차관 재직 당시 김앤장 고문으로 일하던 유명환 전 외교부장관과 만나 강제동원 재판에 대해 논의했다고 알려졌다"며 "유명환 전 장관이 대법원과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지 물었고, 조태열 차관이 '문제없다'라고 답했다는 김앤장 한상호 변호사의 메모가 사법 농단 재판 과정에서 공개되었다"고 말했다.

유명환 전 장관이 당시 로펌 김앤장에서 강제동원 사건 대응팀에 있었던 것은 알고 있었냐는 전 의원의 질문에 조 후보자는 "알고 있다"고 답했다.

전 의원이 그렇다면 아무리 전직 장관이라도 만나지 말았어야 했던 것 아니냐는 질문에 조 후보자는 "그런 목적으로 만난 것이 아닌데, 수십 년을 알고 지낸 가까운 선배를 어떻게 그런 것 때문에 안 만날 수 있겠냐"고 답해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전 의원이 김앤장 변호사가 작성한 메모에 조 후보자와 유명환 전 장관 간 면담했던 이야기들이 기록돼 있다며, 공직자가 이러한 만남을 가지면 안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자 조 후보자는 "의도적으로 이 문제(강제동원)를 대화에서 피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검증할 수 없는 답을 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김경협 의원은 "사법농단 사건의 공소장에 후보자와 법원행정처장이 공모했다고 적혀있고 이 수사 책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었다"며 "검찰이 조작한 것이냐"라고 따졌고 이에 조 후보자는 "재판부가 판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정부는 2012년 대법원 판결이 한일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하고 재판에 개입하려는 시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2015년 1월 민사소송규칙을 변경해 행정부가 민사소송에서 의견을 표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이후 외교부가 여기에 의견서를 개진했기 때문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외교부 의견서에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의 한국 내 재산을 압류할 경우 양국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 "법리적으로 한국이 이기기 어려운 사안", "한국은 국제법을 준수하지 않는 나라로 인식돼 도덕적 우월성까지 잃게 될 것" 등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대법원의 판결에 문제가 있는 내용만 있었다고 소개했다.

대법원은 이러한 외교부의 의견서를 받고 2012년 대법원 판결 이후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재상고심 사건 판단을 미뤘다. 이 시간동안 소송을 제기한 고령의 피해자들이 사망하기도 했다.

당시 사법농단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대법원이 외교부의 의견서를 받고 재판을 미루면서 법관의 재외공관 파견 신설을 얻어냈다고 판단했다. 실제 2017년 6월 주제네바 대표부에 법관이 파견되기도 했다. 대법원은 비엔나를 요구했고 외교부는 제네바 파견을 실행했다

다만 임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이에 대해 원래 요구한 파견지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였고, 여기에 국제상거래를 다루는 유엔 국제상거래위원회가 있어 상사법 전문가를 파견할 이유가 있었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한편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추진위원으로 활동한 조 후보자는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의 질문에 대해 "이승만 대통령은 과보다 공이 많다고 본다. 그래서 이승만 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에도 활동했던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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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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