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민생고·기후위기…암울한 시대 바꾸려면 '이것'이 필요하다

[정욱식 칼럼] 평화의 재발명: 군비통제에서 희망을 찾자(1)

2020년대 들어 전쟁과 군비경쟁이 세계 도처로 확산되고 있다.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는가 하면 끝났다고 여겨진 전쟁이 재발하고, 일단 전쟁과 무력 충돌이 발생하면 휴전과 종전이 과거보다 훨씬 어려워지고 있으며, 휴전과 평화 회복을 위한 유엔 등 국제기구나 주요국들의 역량과 의지도 크게 반감하고 있다. 유엔이 2023년 초에 전쟁의 빈도·수위·기간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치에 달하고 있다고 발표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글로벌 군비경쟁의 양상도 주목할 만하다. 우선 2023년 세계 군사비 총액은 2조 5000억 달러 수준으로 전망되는데, 이는 냉전의 절정기였던 1980년대 중반보다 약 8000억 달러가 증가한 것이다. 또 주요국들의 군비증강 계획과 최근의 전 세계적인 흐름을 종합해볼 때, 2030년 이전에 3조 달러를 돌파할 가능성도 높다.

이는 너나할 것 없이 '힘에 의한 평화'를 주창하고 있는 데에서 나오는 현상이다. 그런데 정작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류는 전쟁의 확산 시대에 처해 있다. 여러 나라들이 자신의 군사력이 역대 최강이라고 자랑하면서도 국가안보는 가장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도 한다. 무분별한 군비증강과 군비경쟁이 안보딜레마를 격화시키고 상호간의 군사적 적대감을 심화시키는 현실을 새삼 보여주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군비증강과 군비경쟁은 막대한 기회비용을 그 대가로 치르고 있다. 과거에는 군사비 증액이 경제성장에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세계적인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군사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부터가 특이한 현상이다. 경기침체와 자원 분배의 왜곡이 만나면 민생고는 그만큼 커진다.

실제로 지구촌 곳곳에선 먹을 것, 입을 것, 살 곳이 부족하고, 아파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며,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도 군사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인간안보와 국가안보의 균형마저 무너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전쟁의 확산과 군비경쟁의 격화로 인류사회가 치르고 있는 가장 큰 기회비용은 기후위기라고 할 수 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은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지구 생명체의 실존적 위협으로 성큼 다가온 상황이다.

그런데 전쟁과 군비경쟁이 기후위기에 기름을 붓고 있다. 이들 군사 활동 자체가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후위기 대처에 필요한 소중한 재원을 전쟁과 군비경쟁으로 탕진하고 국제협력을 뒷전으로 떠밀고 있기 때문이다.

또 기후위기가 국제분쟁의 주요 원인으로 부상해 악순환을 격화시키고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여전히 군사 부문은 기후위기 대처에 거대한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현상은 또 있다. '위기가 곧 기회'라거나 '전화위복'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군비경쟁이 격화되어 전쟁 위기를 비롯한 여러 부작용이 커지면, 자체적인 군비 조절이나 타국과의 군비통제와 군축 협상을 통해 이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과거지사가 되고 말았다. 이미 존재하던 군비통제와 군축 조약은 대부분 종말을 고했고 군비통제와 군축 담론마저 거의 실종 상태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시야를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 더 좁게는 대한민국으로 좁혀 봐도 문제의 심각성은 여실히 드러난다. 오늘날 한국의 경제위기와 민생고는 "한국전쟁 이래 최악의 국난"으로 일컬어졌던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에 버금간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에는 국방비를 줄여 민생을 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었다. 하지만 그때보다 국방비가 5배 가까이 높아진 오늘날에는 이러한 목소리가 5분의 1도 안 된다.

또 한반도는 세계에서 군사 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는 지역 가운데 하나이자 기후위기 취약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한미일이 비핵화를 압박할수록 북한은 핵 고도화로 맞서고 있고 한미일이 북핵 고도화를 이유로 군비증강과 군사적 결속을 강화할수록 북한도 맞대응을 선택하고 있다는 점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현실이다. 군사적 긴장고조·민생고·기후위기 등 '복합위기'의 한복판에 있는 한반도에서 군비통제 논의가 활성화되어야 할 까닭이 아닐 수 없다.

필자가 '군비통제'를 화두로 삼아 '평화의 재발명'을 연재하고자 하는 사유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서 잠깐 군축이 아니라 군비통제를 내세운 이유부터 설명하고자 한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군축이라는 표현에 대한 대중적인 거부감이다.

25년 가까이 평화군축 활동을 해오면서 깨달은 것 가운데 하나는 이러한 거부감이 소통과 토론조차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현실적 정합성이다. 군사비를 조금 줄인다고 해서 군사력이 약해지는 것이 아닌 만큼 군축보다는 군비통제라는 표현이 현실에 부합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가령 60조 원에 달하는 국방비를 50조 원으로 줄이면 계획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현재보다는 더 강한 군사력을 건설할 수 있다.

단언컨대, 군비통제는 암울한 현실과 미래를 바꾸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효율적인 국가안보를 구축하면서 인간안보와의 균형을 이루고 기후위기 대처에도 실효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 초부터 이 화두를 차분하고도 지속적으로 공론화하고자 연말에 머리말을 적어봤다. 연재는 현안과 연계해서 해보려고 한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지난 10월 29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건물 여러 채가 한꺼번에 무너지며 거대한 먼지구름이 일고 있다. 이스라엘 남부 스데로트에서 바라본 가자지구에는 성한 건물이 거의 없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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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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