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상원 의회까지 찾아간 젤렌스키, 추가 지원 끌어내지 못해

미국-멕시코 국경 정책 놓고 민주당·공화당 대립 속 우크라이나 예산안 올해 내 통과 불투명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 상원 의원들과 개별적인 만남을 가졌지만 추가적인 지원을 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 군의 손실을 언급하며 우크라이나 지원의 필요성을 주장했지만 의원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12일(현지시각) <AP> 통신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날 미국 상원에 방문해 "거의 2년 동안 우리는 자유를 위해 싸우며 전면전을 벌여 왔다"며 "푸틴이 무엇을 시도하든 그는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우크라이나의 성공 덕분에 다른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침략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와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를 따로 만나 우크라이나군이 미국과 다른 서방 동맹국들의 도움을 받아 러시아 침공을 격퇴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으며, 지금은 우크라이나가 물러설 때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가 하고 있는 싸움은 자유를 위한 싸움"이라면서 상원의원들에게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30~40대 남성을 징집하겠다는 뜻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젤렌스키 대통령의 태도에 대해 매코널 원내대표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영감을 줬고 단호했다"며 긍정적 평가를 내렸지만, 현실적으로 크리스마스인 25일 이전까지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통과시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앞서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10월 한화 약 80조 원에 해당하는 614억 달러 규모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을 포함한 안보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한 바 있다. 여기에는 한화 약 18조 원에 해당하는 143억 달러 규모의 이스라엘 지원, 대만을 비롯한 인도·태평양 지원, 국경관리 강화 등의 예산이 포함됐는데, 전체 예산은 한화 약 137조 원에 해당하는 1050억 달러에 달한다.

통신은 "공화당 상원의원의 입장은 흔들리지 않는 것 같다"며 "마크웨인 멀린(오클라호마) 상원의원은 '진정있고 의미 있는 국경 개혁'이 포함되지 않는 한 긴급 자금 지원은 공화당의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이어 "민주당의 척 슈머 원내대표와 공화당의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가 나란히 있는 자리에서 공개적으로는 (양측은) 우크라이나에 대해 초당적인 지지를 표했고 젤렌스키는 박수를 받기도 했다"면서도 "젤렌스키의 연설 이후 상원의원들과 개별적인 만남에 들어갔는데, 한 시간 이상이 지나도 상원의원들의 마음은 변한 것 같지 않았다"고 전했다.

통신은 "바이든 대통령은 '역사는 자유의 대의에 등을 돌린 사람들을 혹독하게 심판할 것'이라고 말하며 뒤로 물러났다"고 전해, 예산안 통과를 둘러싸고 공화당의 반발이 강경했음을 시사했다.

▲ 12일(현지시각) 미국을 방문 중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함께 기자회견을 가졌다. ⓒAP=연합뉴스

공화당은 줄곧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보다는 멕시코와 국경에서의 안보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임 대통령이 장벽을 세우기도 했을 정도로 이민자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인데, 공화당의 일부 의원들 역시 이 부분에서 민주당의 변화가 없다면 예산안 통과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수 차례 밝혔다.

통신은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따라 이민자의 횡단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정부는 공화당과 연대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지만, 민주당은 트럼프 시대 이민자에 대한 적대감을 되돌리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민자에 대한) 신속한 추방과 엄격한 망명 기준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있다"며 양측이 협상 진전을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통신은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 국토안보부 장관은 의사당에서 거의 두 시간 동안 (상원의원들과) 만났다"며 "상원의 주요 협상 대표인 공화당의 제임스 랭크포드(오클라호마) 상원의원과 무소속 키르스텐 시네마(애리조나) 상원의원은 모두 진전이 있었다며 자리를 떠났다"고 밝혀 합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전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의 군사 활동이 러시아에 상당한 타격을 주고 있다며 지원의 정당성을 호소하기도 했다. 미국 방송 CNN은 미 정보기관 소식통을 인용, 의회에 제출된 기밀 해제 보고서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하기 전에 보유하고 있던 현역 지상군 병력의 87%와 탱크의 3분의 2를 잃었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었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는 계약 군인과 징집병을 포함하여 우크라이나에 진입한 36만 명의 병력 중 전장에서 31만 5000명을 잃었다. 3500대의 탱크 중 2200대가 손실을 입었고 1만 3600대의 보병전투차와 장갑차 중 4400대가 파괴되어 32%가 없어졌다"고 전했다.

방송은 "11일 국회에 보내진 이 평가는 일부 공화당 의원들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자금 지원을 주저하고 있는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의회를 통해 추가 자금 지원을 받기 위해 전면적인 압박에 나선 가운데 나온 것"이라고 보도했다.

다만 방송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 관리들이 우크라이나가 여전히 매우 취약하다고 경고함에 따라 (전쟁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며 "기대를 모았던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은 가을 내내 정체됐고, 미국 관리들은 우크라이나가 앞으로 몇 달 동안 큰 이득을 얻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방송은 "미국 정보 당국은 러시아가 큰 손실을 입었고 훈련된 인력과 군수품, 장비가 지속적으로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겨울 내내 군사적 교착상태를 이룰 수 있다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지원이 고갈되고 궁극적으로 러시아에 유리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방송은 "아마도 우크라이나에 가장 큰 위험을 초래하고 있는 것은 워싱턴의 정치적 환경"이라며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립 속에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안이 올해 내로 통과되지 못하는 것이 우크라이나에게 가장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은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지 않은 2억 달러(한화 약 2600억 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을 실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에 바이든 정부가 밝힌 지원 계획에 포함돼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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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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