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원폭 피해자 "죽기 전에 미국에 원폭 투하 잘못됐다, 미안하다는 말 듣고 싶어"

핵무기금지조약 제2차 당사국 회의 열려…참여연대 "냉전 이후 핵 전쟁 위험성 가장 높아져"

"한국 원폭 피해자들은 미국의 원폭 투하, 일본의 식민 지배, 한국 정부의 무관심과 방치라는 '3중의 피해자'다. 죽기 전 원폭 투하는 잘못되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듣기를 원한다"

11월 27일에서 12월 1일(이하 현지시각) 뉴욕 유엔본부에서 핵무기금지조약 제2차 당사국 회의가 열렸다. 회의 계기 27일에 열린 주제별 토론에 참석한 한국 원폭 피해자 이기열 씨는 핵무기로 인한 더 이상의 피해가 없어야 한다며 이같이 호소했다.

이 씨는 당사국 회의의 주제별 토론 '핵무기의 인도주의적 영향' (Thematic discussion on the humanitarian impact of nuclear weapons) 세션에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한국원폭피해자협회 대표로 참석해 "피폭자로서 전쟁과 핵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후손들에게 선물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한국인 피폭자로서 한국 사람들이 또 다시 핵무기의 희생자가 되는 것만큼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원폭 피해자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피폭 2세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회의에 참석한 참여연대에 따르면 회의에는 한국 원폭 피해자 1세, 2세 5명이 참여하여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알려졌다.

▲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핵무기금지조약 제2차 당사국 회의가 열린 가운데 한국 원폭 피해자 이기열 씨가 11월 27일(현지시각) 주제별 토론에서 발언하고 있다. ⓒ핵무기 폐기 국제 운동

윤석열 정부는 한일 관계 개선을 계기로 원폭 피해자들과 접촉을 이어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한 계기에 원폭 피해 동포들을 만나 "슬픔과 고통을 겪는 그 현장에 고국이 함께 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서 정말 깊은 사과를 드리고, 다시 한 번 여러분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윤 대통령은 이들을 국내에 초청하겠다고 했고 실제 추석 명절 연휴 기간인 지난 9월 29일 재일동포와 국내에 거주하는 원폭 피해자 85명을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해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참여연대는 이번 회의에서 원폭 피해자의 발언 등을 통해 핵 전쟁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무력 충돌 예방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촉구했다. 참여연대는 "냉전 이후 핵 전쟁 위험성이 가장 높아졌다고 평가되고 있으며 핵무기금지조약과 당사국들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라고 진단했다.

참여연대는 29일 당사국 회의 일반 토론(General Exchange of Views) 세션에서 시민사회 발언을 진행하며 "한반도는 지구상에서 핵 전쟁 위험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이고, 동북아시아 대부분의 국가가 아직 핵무기금지조약에 서명하지 않았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한미동맹과 북한이 서로를 향한 '선제 공격' 전략을 공표하고 연습하고 있는 매우 위험한 상황 속에서 우발적인 무력 충돌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남북 군사 합의(9.19 합의)가 사실상 파기된 가운데 오판이나 실수가 충돌을 부르고 핵 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한반도는 전형적인 안보 딜레마에 빠져들었고 '한반도 비핵화'의 전망은 갈수록 희미해지고 핵 위협은 더 커지고 있다"며 "또 다른 재앙을 막기 위해 지금 행동해야 한다. 국제사회는 한국과 미국, 북한이 서로를 향한 군사적 위협을 즉각 중단하고 대화 채널을 복원할 것을 한목소리로 요구해야 한다. 핵무기금지조약의 정신은 아직 조약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들에도 보편화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참여연대는 "2021년 발효된 핵무기금지조약(Treaty on the Prohibition of Nuclear Weapons, TPNW)은 비인도적인 대량살상무기인 핵무기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국제조약"이라며 "당사국이 핵무기나 핵폭발장치를 개발, 실험, 생산, 제조, 획득, 보유, 비축, 이전, 사용 또는 위협하거나 영토에 핵무기나 핵폭발장치의 주둔, 설치 혹은 배치를 허용하는 것, 핵무기 관련 활동에 참여하도록 지원하거나 촉진하거나 유도하는 것을 포괄적으로 금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2022년 제1차 당사국 회의를 열고 조약의 보편화, 핵무기 사용과 실험으로 인한 피해자 지원, 핵 군축 검증 등을 위한 <비엔나 행동계획>을 채택했다"며 "2023년 제2차 당사국 회의에서는 <비엔나 행동계획>의 이행 점검, 조약의 이행과 강화를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11월을 기준으로 전 세계 93개국이 서명하고 이 중 69개국이 비준한 이 조약에는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 핵무기 보유국과 한국, 일본 등은 가입돼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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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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