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동성애 금지 이어 성소수자 운동도 금지 "극단주의"

대법원, 법무부가 제기한 소송 2주만에 결정…피고도, 근거도 없어 '졸속' 비난

러시아 대법원이 성소수자(LGBTQ+)의 인권 운동에 '극단주의'적인 성격이 있다며, 자국 내 활동을 금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11월 30일(이하 현지시각) 러시아 매체 <타스통신>은 "대법원이 성소수자 운동을 극단주의로 인정하고 자국 내 활동을 금지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지난 17일 법무부가 'LGBT 국제 대중 운동'의 러시아 내 활동을 금지하기 위한 행정소송을 제기한 이후 2주만에 나왔다.

통신은 대법원 판사가 "성소수자 운동을 극단주의로 인정해 달라는 법무부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같은 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며 "법원의 결정은 즉시 효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전했다.

통신은 "공판은 사건의 기밀자료가 있어 비공개로 진행됐고 피고측 대리인은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며 "법원은 약 4시간 동안 법무부가 제시한 증거들을 연구했고, 그 후에 판결문 본문이 발표됐다"고 보도했다.

이어 통신은 "소송 과정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러시아 연방 영토에서 일어난 이 운동의 활동에는 사회적, 종교적 불화 선동을 비롯한 다양한 극단주의 관련 징후가 확인되고 있다"며 법무부와 대법원의 판결이 정당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보도에서 나왔듯 법무부의 소송 제기 이후 2주만에 판결이 이뤄졌다는 점이 실질적‧절차적으로 합법적이고 합당한 과정이었는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또 <AP> 통신은 "이날 소송에는 법무부 대표 외에 누구도 들어갈 수 없었고 피고인도 없었"으며 "법무부는 이 운동이 극단주의적 징후를 확인했다고 말하면서 어떠한 증거도 공개하지 않았다"고 밝혀 재판 자체가 졸속으로 진행됐다고 지적했다.

통신은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기 전에 러시아의 유력 인권단체들이 이 소송이 "반법률적이고 차별적이며 헌법과 러시아가 체결한 국제인권조약을 위반한 것"이라는 내용의 문서를 법원에 제출했다고 전했다. 여기에 일부 성소수자 활동가들은 소송의 당사자가 되려고 했으나 법원으로부터 거부당했다고 밝혔다.

러시아에서 성소수자들을 위해 활동하는 막스 올리니체프 인권변호사는 통신에 "이번 소송은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하며,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조직적인 활동을 사실상 금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번 판결에 대해 "부끄럽고 황당하다"며 대법원의 이 결정이 성소수자 단체 및 조직에 대한 전면 금지로 이어져 결사와 표현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 자유를 침해하는 것과 함께 차별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지난 2014년 5월 1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노동절 집회에서 마스크를 쓴 한 운동가가 '사랑은 전쟁보다 강하다'라고 쓰인 배너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는 2013년 성소수자 권리를 제한하는 첫 번째 법안을 채택해 미성년자들 간 "전통적이지 않은 성관계"에 대한 공개적인 지지를 금지한 바 있다. 이후 2020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그의 통치를 연장하기 위해 추진한 헌법 개헌에 동성 결혼을 금지하는 조항도 포함됐다.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러시아의 이같은 동성애 금지는 더 강화됐다. 러시아가 성소수자 권리 운동을 서방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인식하면서 전통적인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또 올해는 "사람의 성별을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의료 개입"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또 성 전환을 결혼을 무효화하는 사유로 상정하고 성전환자를 양부모가 될 수 없는 요건을 가진 사람으로 명시하는 등의 가족법을 개정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정말 러시아에 '엄마'와 '아빠' 대신 '부모 1번, 2번, 3번'을 갖기를 원하나?"라며 성소수자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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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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