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자주권 강조하면서도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같이 준비"

"적대시 정책 철회 먼저"…대화 조건 제시한 북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담화를 통해 미국에 대화를 언급하기 전에 적대시 정책부터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미국과 대화에 대해 확실한 조건을 밝혔지만, 군사 정찰 위성 발사 이후 미국의 입장에 유의했다고 언급하면서 이전과 다소 온도차를 보이기도 했다.

30일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김 부부장이 담화를 통해 "나는 유엔헌장의 목적과 원칙이 엄격히 존중되여야 할 유엔안전보장리사회가 미국과 그에 추종하는 일부 세력들에 의해 주권국가들의 자주권이 란폭하게 유린되고 극도의 이중기준이 파렴치하게 적용되며 부정의와 강권이 란무하는 무법천지로 변질되고 있는 데 대하여 개탄하며 이를 단호히 규탄배격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강도적요구에 따라 우리의 정찰위성발사와 관련하여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리사회 공개회의의 전 과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주권적권리들을 거부하는 일부 유엔성원국들의 비합리적인 론거가 얼마나 박약하고 허위적이며 루추한가를 자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부부장은 "유엔주재 미국대표 토마스 그린필드가 론박할 여지가 없는 조선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우주개발권리를 '불법'으로 밀어붙일만한 명분적근거가 부족한데로부터 미국을 마치 현 상황의 '희생자'처럼 묘사하면서 저들의 '의미있는 대화'립장과 '평화적해결' 노력을 구구히 설명한데 대하여 류의하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미국이 평화적 해결을 언급하면서도 한반도에 항공모함을 비롯한 전략자산을 전개하는 데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가장 최근에는 26일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함(CVN-70)이 부산 해군작전사령부에 입항하는 등 지난해부터 미국의 해군 및 공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가 빈번히 이뤄지고 있다.

김 부부장은 "토마스 그린필드는 미국의 무기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겨냥하지 않았다고 장담하기에 앞서 평양으로부터 불과 500~ 600km 떨어진 남조선(남한)의 항구들에 때없이 출몰하고있는 전략적목표들이 어디에서, 왜 온것인가를 명백히 해명해야 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펜타곤(미 국방부) 미국의 '외교적관여' 립장과 '대화재개' 노력이 조선반도(한반도) 지역에 전개된 미 핵 항공모함과 핵잠수함의 도발적인 군사활동과 어떤 조화를 이루고있는지에 대해 유엔주재 자기 대표가 좀더 론리있게 변명할 수 있도록 방조해 주었어야 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부부장은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미국의 량면적립장과 행태야말로 강권과 전황의 극치인 이중기준과 더불어 조선반도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는 악성인자"라며 "앞에서는 대화타령을 늘어놓고 뒤에서는 군사력을 휘두르는 것이 미국이 선호하는 '힘을 통한 평화'라면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같이 준비되여야 하며 특히 대결에 더 철저히 준비되여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일관한 대미 립장"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더러 조미(북미) 대화 재개의 시간과 의제를 정하라고 한 미국에 다시 한 번 명백히 해둔다. 주권국가의 자주권은 그 어떤 경우에도 협상의제로 될 수 없으며 그로 인해 우리가 미국과 마주앉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국제평화와 안전에 대한 주되는 위협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적권리행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를 훼방하고 억압하려는 미국의 강권과 전횡으로부터 초래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부부장은 "우리 국가의 주권적권리에 속하는 모든 것을 키워나가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모든 유엔성원국들이 향유하는 주권적권리들을 앞으로도 계속 당당히 제한없이 행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 부부장이 앞으로도 정찰 위성 발사를 비롯해 군사 행동을 이어갈 것이라는 뜻을 밝혔으나,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의 미국 입장에 유의했고 대결뿐만 아니라 대화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한 점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특히 이 발언이 군사 정찰 위성 발사가 이뤄지고 난 뒤에 나왔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북한은 지난 2017년 11월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인 화성-15형을 시험 발사한 뒤 '핵무력 완성'을 주장한 바 있다. 이후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대화국면으로 전환하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과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물론 당시의 화성 15형과 지금의 군사 정찰 위성이 가지는 맥락과 의미가 같지 않고 북미 정상회담이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북한이 위성 성공으로 얻은 군사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바로 미국과 대화를 시도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다만 김 부부장이 담화에서 자신들의 대화의 조건을 명백하게 밝혔고, 여전히 미국의 메시지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냈다는 점은, 설사 조건부라고 하더라도 대화의 여지는 열어두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한편 이에 대해 이날 기자들과 만난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은 김여정 담화에서 밝힌 대로 대화와 대결 중 무엇이 진정 북한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무엇이 북한 주민의 민생을 위한 것인지 스스로 현명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라며 "이제라도 도발과 위협의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김 부부장의 이번 담화 발표 배경에 대해 "김여정 부부장은 그동안 중요한 사안에서 계속 입장을 내왔다. 오늘도 그러한 일환"이라며 북한이 대화로 나올 가능성에 대해서는 예측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 김여정 당 부부장이 지난해 8월 10일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동신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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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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