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까

[시민건강논평] 언제 어디서나 공백없는 필수의료 보장을 위하여

국정감사 기간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의대 정원이 얼마나 늘어날지 예측과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정부는 지난 10월 19일 필수의료혁신 전략(이하 전략)을 발표했다. 의대 정원 증원의 정확한 규모는 밝히지 않은 채, 필수의료 전달체계 정상화, 충분한 의료인력 확보, 추진 기반 강화를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얼핏 보면, 국립대 병원의 역량을 강화하고, 의대 정원도 확대하는 등 어쨌든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혹은 지금까지 정부 대책에서 빠지지 않고 나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무슨 무슨 네트워크, 협력을 한다며 또 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된 정부의 전략은 그 이상으로 우려되는 지점들이 있다.

전략에서는 특히 권역 책임의료기관으로서의 국립대병원의 위상과 역할을 강조하며 권한을 주고 지원도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그 밖에 지방의료원 등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지원이나 설립은 언급하지 않는다. '넥스트 팬데믹 대응체계 확립'을 내걸면서도, 코로나19 대응에서 커다란 역할을 했던 공공병원에 대한 지원이 빠진 것은 무슨 의미일까. 코로나19 대응에 헌신한 공공병원의 병상이용률은 지금까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한 채 임금 체불을 걱정하고 있다.(☞ 관련 기사 : <경향신문> 10월 10일 자 '코로나 영웅? 지금은 '임금체불' 위기…35개 지방의료원 올해 총 2940억 적자 발생 예상') 거기다 내년도 예산에는 지방의료원 손실회복 지원이 반영돼 있지 않고, 지역거점병원 공공성 강화 사업 예산은 올해에 비해 95억원 가량 감소했다(관련기사 : ☞ <시사인> 9월 12일 자 '[단독]코로나 때는 ‘덕분에’라더니...공공병원 예산 95억 줄었다') 지금 마주하고 있는 팬데믹 문제도 외면하면서 다음 팬데믹 대응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정부는 지방의료원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 대신 권역 책임의료기관과의 다양한 협력을 활성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그 다양한 협력모델 중 하나로 위탁·운영을 끼워 넣었는데, 그간 지방의료원 위탁을 시도하려는 지자체의 움직임을 중앙에서 공식화한 것이다. 위탁을 통해서 지역 주민들이 양질의 의료서비스에 좀 더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비수도권 지역의 국립대병원도 인력 확보에 부침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비수도권 지역주민의 의료이용과 관련된 책임을 국립대병원에 떠넘겨, 상황은 개선되지 않는데도 정부가 무엇인가를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권한 이양을 가장한 또 하나의 국가 책무성 지우기가 될까 걱정이다.

이번 전략에서 국립대병원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하니 상황이 좋아지지 않겠냐고? 그것도 걱정이다. 국립대병원의 역량 강화를 위한 재정 투자 계획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립대병원처럼 운영할 수 있게 규제 완화를 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영리를 추구한다는 면에서 민간병원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국립대병원인데, 그 차이가 더 줄어들게 생겼다. 결과적으로 영리화된 국립대병원이 공공의료기관을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괜한 걱정이 아니다. 당장 전략의 비전만 봐도 “언제 어디서나 공백없는 필수의료 보장”으로 '누구'의 필수의료를 보장하겠다는 것인지 보이지 않는다. 중앙에서 보기 좋은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고, 기관들의 대략적 분포를 신경 쓰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국립대병원이 거점병원으로서 역량이 강화된다 해도 의료급여 환자, 의료기관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차가 없고 거동이 불편한 환자는 어찌할 것인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당연한데, 비전만 가지고 꼬투리 잡는다고 하지 마라.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붕괴로 가장 먼저, 심각하게 피해를 보는 것도 비수도권 비도시 지역 주민과 사회경제적 약자들이다. 이들에 대한 고려가 반영되는 것이 마땅하지만, 전략 어디를 봐도 드러나지 않는다. 지역·필수의료 '투자' 내용으로 필수의료 디지털 전환은 있지만, 소외된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예산 계획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민간의료기관과 가장 큰 차이점으로 인식되는 공공의료기관의 특성은 수익성이 떨어지더라도 필요한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공공의료를 논하는 전략에서 소외된 계층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영리화된 국립대병원에 지방의료원 위탁, '누구'의 필수의료인지 밝히지 않는 비전에 대해 괜한 걱정을 하는 것이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국가의 책무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공의료라는 표현을 자제하고 필수의료를 고집하는 정부의 방향성이 너무 일관된 모습을 보인다.

지난 26일에는 보건복지부가 추가로 지역 및 필수의료 혁신 이행을 위한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일주일 전에 나온 전략과 굳이 따로 발표된 이유를 찾기 힘들 정도로 특별한 내용이 없다. 의대 정원 확대를 위해 현장 수요조사를 하겠다는 것과 지역과 필수의료 분야로 의사인력이 유입되도록 의료사고 부담완화, 보상강화, 근무여건 개선 하겠다는 것(정책패키지)이 전부다. 실손보험으로 비급여 시장이 팽창하고 중증·필수의료 기피가 고착화 되었다고 전략에서도 지적하였으니 실손보험 규제를 위한 계획이나, 전 정부에서 제시된 대책 등 여러 방안을 고려해 볼 만한데, 여러 방면으로 고민한 정책패키지라 하기에 턱없이 빈약하다.

국립대병원의 영리화를 부추기고, 시장 중심의 의료 생산 체계에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인지, 애초에 뭔가 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시간을 벌고 관리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국가가 좀 더 높은 책무성을 발휘하는 쪽으로 기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고통을 줄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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