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왕비 "하마스 규탄한 서방, 이스라엘 공습엔 침묵…명백한 이중 잣대"

"하마스 공격으로 분쟁 시작?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75년 동안 전쟁 겪었다"

이스라엘 이웃국가인 요르단의 왕비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충돌 과정에서 서방 지도자들이 "이중 잣대"를 보이고 있다면서, 조속한 휴전과 '두 국가 정책'만이 갈등을 완화할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24일(현지시각) 미국 방송 CNN에 출연해 크리스틴 아만푸어와 인터뷰를 가진 라니아 알 압둘라 왕비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에 의해 민간인들이 사망한 데 대해 서방 지도자들이 어떠한 비난도 하지 않고 있다면서 "명백한 이중 잣대"라고 비판했다.

그는 "요르단을 포함해 중동에 살고 있는 사람들 모두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대재앙에 대한 세계의 반응에 실망했고 큰 충격을 받았다"며 "지난 몇 주 동안 우리는 세계의 이중 잣대를 명백히 보게 됐다"고 말했다.

라니아 왕비는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세계는 즉각적으로 명백하게 이스라엘과 그들의 방어권을 지지했고 (하마스의) 공격을 비난했다"며 "그러나 우리는 지난 몇 주 동안 세계가 침묵하는 것을 보고 있다"고 말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에 대해서는 서방에서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 가족, 한 가족을 총으로 쏴 죽이는 것은 잘못이지만, 포탄을 발사해 몰살하는 것은 괜찮다는 말을 우리가 듣고 있는 것일까?"라며 "제 말은 여기에는 엄청난 이중 잣대가 있다는 것이고 이것이 아랍에는 큰 충격"이라고 밝혔다.

방송은 최근 하마스가 통치하고 있는 가자지구 보건부가 이스라엘의 폭격에 의해 사망한 사람이 5000명이 넘었고 이 중 2000명 이상은 어린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또 충돌이 벌어진 이후 지금까지 최소 35명의 유엔 직원들이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방송은 UN과 긴급구호단체들이 즉각적인 휴전 및 인도적 지원을 위한 긴급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가자지구에서 일하는 의사들이 전력 부족을 호소하면서, 이스라엘의 봉쇄가 환자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는 우려를 전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라니아 왕비는 "어머니로서, 팔레스타인 어머니들이 아이들의 손에 이름을 쓰는 것을 봤다. 아이들이 혹시라도 죽게 되면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나는 세계가 다른 나라의 어머니들처럼 팔레스타인의 어머니들도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상기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 라니아 알 압둘라 요르단 왕비가 24일(현지시각) 미국 방송 <CNN>의 아만푸어와 인터뷰를 가졌다. ⓒCNN 방송 갈무리

방송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공격한 이후 이 지역에 거주하는 약 200만 명의 팔레스타인 거주민 중 상당수가 요르단이나 이집트로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면서,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가 이를 결코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라니아 왕비는 가자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두 개의 선택"에 직면하고 있다면서 "어떤 사람에게도 추방이냐 말살이냐, 인종청소냐 대량학살이냐 중 하나의 선택권이 주어져서는 안된다. 가자지구 사람들을 다시 강제로 이주시켜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충돌이 지난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했을 때 시작된 것이 아니라면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주해 온 역사적 과정을 언급했다.

라니아 왕비는 "대부분의 (언론) 매체가 '전쟁 중인 이스라엘'이라는 제목으로 이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며 "그러나 분리 벽의 반대편, 철조망 반대편에 있는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전쟁은 결코 그들의 곁을 떠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건 75년동안 있던 이야기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죽음과 추방, 아파르트헤이트(인종 격리 정책) 체제 하에서 토지가 몰수되고 집이 철거되고 군사적 침략과 야간 습격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라니아 왕비는 "자유롭고 주권적이며 독립적인 팔레스타인을 만들기 위한 두 국가의 해결책이 이 지역의 평화를 위한 유일한 길"이라며 "협상 테이블 없이 결코 해결책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해 조속한 휴전 및 협상을 촉구했다.

하지만 미국은 휴전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방송은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이 "지금 휴전을 말할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은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며 "하마스의 리더십이 종료되면 그들(이스라엘)은 해야 할 일이 많다. 우리는 그들을 계속 지지할 것이고 더 많은 안보 보장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역시 24일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가자지구의 인도적 상황과 관련, "휴전"이 아닌 "인도적 멈춤"을 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쿠웨이트 출생으로 팔레스타인 혈통 아랍계인 라니아 왕비는 1993년 당시 왕세자였던 압둘라 2세와 결혼했다. 또 요르단 내에는 팔레스타인계 주민이 다수 거주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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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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