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독자노선', 그 불안한 징후들

[이관후 칼럼] 이준석과 한국 포퓰리즘의 미래

눈물의 기자회견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눈물의 기자회견을 했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대한 대통령실과 당 지도부의 책임을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기자회견의 내용은 그동안 당내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던 것에서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과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눈물을 보인 장면은 다른 정치인들의 기자회견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었다.

통상 당내 비주류가 대통령과 지도부에 대해 강한 비판을 할 때는 격앙된 표정과 목소리로 당사자의 결의를 보여주는 것이 보통이다. 본인에 대해 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고, 탈당까지 염두에 두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준석은 질의응답 과정에서도 시종일관 담담한 목소리로 일관했다. 대통령을 비판할 때는 붉게 물든 눈으로 울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필자는 기차역 대합실에서 기자회견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다.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오히려 영상 효과가 극대화되었기 때문이다. 자막으로 채 상병과 서이초 사건이 언급되는 순간에 이준석 전 대표의 감정이 격화되는 것을 반복적으로 볼 수 있었다.

언론들도 내용에 대해 언급하기보다 '눈물의 기자회견'이라는 점을 부각했다. 한때 국민의힘 대표로 한국 보수를 견인할 것 같았던 청년 정치인이, 하루아침에 비주류로 전락해 대통령실과 지도부의 미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처지가 가련해 보였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16일 국회에서 현안 관련 기자회견 중 해병대 채모 상병, 서이초 사건 등을 이야기 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셀러브리티 포퓰리즘'

민주화 이후 이준석 같은 정치인은 없었다. 이준석은 최근 한 세대 동안 정치권에 등장했던 정치 신인 중에서 10년 이내의 짧은 시간 안에 정부여당의 당 대표까지 역임한 30대 정치인이다. 그가 이러한 빠른 성장을 보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한국 정치와 여건이 변했기 때문이고, 그중에서도 언론환경의 변화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언론학자 이준형은 박사학위 논문에서 한국 정치의 미디어 환경에 대한 변화와 거기서 나타난 현상을 '셀러브리티 포퓰리즘'이라고 명명했다. 이준형은 2000년대 이후 한국 정치에서 새롭게 등장한 미디어가 진영정치의 구심점으로 작동했으며, 이 과정에서 언론 환경의 기술적 변화와 함께 '나꼼수' 등 새로운 매체 등장을 '미디어 포퓰리즘'이 본격화 된 계기라고 본다. 그리고 이렇게 진영화 된 미디어 포퓰리즘이 문재인, 이준석, 윤석열 같은 '셀러브리티'화 된 정치적 기표와 그를 지지하는 팬덤 세력을 만들어 내면서 '셀러브리티 포퓰리즘'이 탄생했다고 분석했다.

언어학자 조국현은 이준석 대표의 선출 과정 57일 간의 담화를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에서 조국현은 이준석이 '이준석은 젊고, 국민의 힘에 세대교체가 필요하며, 이준석은 당대표로서 충분한 자질을 갖고 있다'라는 세 가지 담론을 적절히 제시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공정과 정치의 세대교체라는 깃발을 들고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는 청년 보수'라는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냈다고 평가했다.

이준석에 대한 이런 분석에서 확인되는 것은, 한국 정치에서 나타나는 포퓰리즘이 가진 보편적 성격이다. 정치학자 김만권은 이준석 정치가 "소수의 엘리트와 우리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제3의 외집단을 설정하고, 소수 엘리트들이 자국 내 다수의 '우리 평범한 사람들' 대신 이들 제3의 집단에 더 많이 관심을 쏟는다"고 주장하는 전형적인 우파 포퓰리즘이라고 말한다. 외집단이 '평범한 우리'보다 더 많은 권리를 누리는 것이 부당하다는 여론을 조장하여 지지자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이를 조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준석은 여기에 가장 잘 들어맞는 정치인이다.

포퓰리즘이란 겉으로는 민주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난 병리적 현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인민주권에 기반한 현대 민주주의에 본질적으로 내재된 대중동원 양식의 하나이며, 기득권 엘리트와 맞서 싸우는 헤게모니 투쟁에서 대중동원을 지속할 수 있는 지도자가 활용할 수 있는 정치적 기제다.

이준석의 포퓰리즘은 이런 면에서 대단히 전형적이다. 그는 대표제 민주주의에서 기존의 정당이 국민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고 기득권으로 인식될 때, 그것을 세대의 문제, 대표 집단의 문제로 규정했다. 그리고 정치의 미디어화와 정치인의 셀러브리티화라는 정치적 환경변화를 잘 이용하여 혐오와 배제를 극단화했고, 이를 통해 정치적 이득을 취하는 반민주적·반정치적 기획을 통해 성공했다.

그리고 이 헤게모니 투쟁 과정에서 자신의 지지층을 새로운 정치집단으로 결속하려는 시도도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이 새로운 헤게모니 집단은 과연 누구이며, 어떤 이유로 이준석이라는 정치적 대표를 통해서 급속하게 결집되었을까? 사회학자 김정희원은 20대와 30대가 불평등의 시대에 각자도생의 세계를 살아왔기 때문에 다른 세대에 비해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을 더 많이 느끼는 '배제된 자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2030세대 모두가 이준석의 지지자는 아니다. 그렇다면 2030 중에서도 어떤 배제된 사람들이 이준석을 지지하는가?

'2030 반권위 포퓰리즘 그룹'

지난해 8월 민주당 대선평가위원회가 발간한 '새로고침위원회보고서'에 따르면, 이준석 지지자들의 핵심 지지층은 전체 6개 유권자 집단 중에서 '반권위 포퓰리즘 그룹'과 겹쳐 보인다.

이들은 34개로 유형화된 질문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1순위로 원했으며, 다음 순위로는 현금성 복지인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핵무장 등에 공감하면서도, 격차 해소와 검찰개혁을 지지했고 복지 강화도 원했다. 주택 구매를 지원하기보다는 월세를 지원해주기를 원했다. 반면 소수자와 난민에 대해 배타적이며, 기존 권력(정치/시장)이나 국가 시스템을 모두 강하게 불신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그룹 내의 성별과 연령대 구성 비율이다. 이 그룹은 남성 20대와 30대 그룹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을 보여주고 있고, 보수 성향의 남성 40대와 여성 20대 일부를 제외하면, 다른 성·연령대에서는 거의 관찰되지 않는다. 이런 분포는 다른 5개 그룹과 뚜렷이 구분된다.

이 집단은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가? 정치적으로 중도·무당층이며, 20~40대 남성과 불안정노동자가 다수를 차지한다. 저소득층 비율이 높고 월세 등 주거 조건도 열악하다. 또한 다른 그룹에 비해 제조업 비율이 높은 부산·울산·경남 지역에 상대적으로 많이 분포한다. 이런 특성으로 보면 '이대남' 주류는 통상적인 선입견과 달리 엘리트 여성들과 경쟁하는 수도권 대학 출신의 상층 남성이 아니라, 상당수의 지방 거주 저소득 불안정 청년노동자가 결합되어 있는 형태다.

이런 보고서의 내용에 근거해 가장 가까운 준거 집단을 가상적으로 재구성해보면, 마산 출신 용접공 출신의 청년 작가인 천현우가 자전적 소설인 <쇳밥일지>에서 묘사한 부·울·경 제조업 지역의 20대 남성 노동자와 유사성이 가장 높아 보인다. 이들은 다른 그룹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우한 저소득층 가정에서 자라서 실업계 고등학교, 기술전문대학 등을 거쳐 저소득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이다. 다수가 저임금과 산재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열악한 노동환경에 일하고 있다.

이들의 사회적 경험과 정보 유입 경로는 노동자 선배와 또래 집단에 국한되어 있으며,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이해할 만큼 충분한 정보를 얻거나 신뢰할만한 전통적 언론 매체를 갖고 있지 않다. 이들은 국가나 사회로부터의 정책적 수혜에서 소외되어 있으며, 작업복을 입고 지방의 산업단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언론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즉, 이들은 존재하지만 현시되거나 인식되지 못한다.

이 청년들은 그러한 현실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으며, 이것이 자신들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는 '제3의 외집단' 때문이라고 여긴다. 대표적인 제3의 외집단의 '젊은 여성'이다. 이 청년 남성들은 다른 어떤 정책, 심지어 자신들에게 필요한 현금성 복지와 소득보전, 주거 지원보다도 더 강하게 여성가족부의 폐지를 원하게 된다.

이준석은 이 외집단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방식으로 자기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 있다. 이준석은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유사한 세계관을 가진 유일한 '정치적 대표'인 것이다. 그래서 이 집단의 형성은 이준석이라는 셀러브리티 포퓰리스트 정치인을 빼고 설명하기 어렵다.

지난해 조사로 밝혀진 이 그룹의 특성을 정치인 이준석이 그 이전부터 파악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또 이준석 현상이 나타나기 전에 이 그룹이 형성되어 있었는지도 확실치 않다. 다만 지난 20대 대선에서는 이 그룹의 독자적 투표 성향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보고서의 분석, 그리고 이들의 투표율이 상대적으로 낮고 정치적 성향에서 중도·무당층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집단이 이준석이라는 정치인을 매개로 성장·결집했을 가능성을 유추할 수 있다.

'이준석 정치'는 계속된다

이준석은 '한국사회에서 구조적인 여성 차별이 없다'는 식의 자극적이고 배제적인 국민 나누기를 통해 '수도권 엘리트 여성'이라는 외집단에 대비된 집단, 곧 국가와 사회로부터 소외된 남성 청년들을 결집시켰다.

남성 청년을 중심으로 한 이 이준석 지지그룹은 전체 유권자의 10%나 된다. 주요 선거에서 얼마든지 정치적 캐스팅 보트를 쥘 수 있는 규모다. 지역구에서 양당의 표차가 많이 나지 않는 수도권에서는 당락을 결정지을 수 있다. 현재의 선거제도에서 양대 정당이 위성정당을 내지 않는다면, 독자 창당으로 비례대표 의석을 상당히 기대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준석 전 대표는 지난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보이면서도 독자 노선을 계속 가겠다고 말한 것이다.

이러한 지지 집단이 있는 한, 당장은 비주류라고 하더라도 이준석 정치는 계속될 것이다. 지금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미움을 받고 있지만, 이것도 나중에는 훌륭한 정치적 자산이 될지 모른다. 그는 여전히 보수에서 차세대 대권 주자로 손꼽힌다. 문제는 그가 지금까지의 포퓰리즘적 정치를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 하는 데 있다.

그는 여성이라는 외집단 형성을 통해 지지 그룹을 강화했다. 이 배제적 구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를 원하는 장애인 단체도 기꺼이 활용했다. 그렇다면 다른 사회적 약자, 성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난민 등 다른 외집단도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지지 집단의 성향도 비슷하다. 한국의 보수 정당에서 내부를 향한 청년 정치인의 합리적 비판이 한편으로 반갑기도 하지만, 그 미래가 가져올 정치의 변화가 불안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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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후

16대, 17대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하고, 영국 런던대학교(UCL)에서 '정치적 대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와 경남연구원에서 일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정책보좌관, 국무총리 메시지비서관을 지냈다. 정치의 이론과 현실에 모두 관심이 있다.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프레시안>을 비롯해 <경향신문>, <한겨레>, <피렌체의 식탁>에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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