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위기감이 대한민국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아니, 어쩌면 불안해야 한다고 누군가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구 과잉의 시대에 "아들, 딸 구별 없이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이야기를 지겹도록 들었고, 이제는 "하나는 부족합니다"라는 광고로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니 어쩌면 '아이가 태어나야 한다', '더 태어나면 안 된다'와 같은 결정이 개인의 선택보다는 국가의 입김에 더 많이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닐까. 아무튼 이렇게 인구절벽, 국가적 위기라는 긴장감이 고조되다 보니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 대부분에 저출산은 늘 중요한 의제가 되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다', '아이를 낳지 않는다'라는 현재 상황은 단순히 저출생이냐, 저출산이냐는 용어의 선택 문제를 넘어서 우리 사회가 외면해 온 오래된 차별과 배제의 중첩된 맥락을 하나씩 풀어야 하는 굉장히 복잡한 난제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접근법은 그에 비해 매우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경우가 많아 이제까지 수백조의 예산이 투입되었음에도 OECD 국가 최저 출산율이라는 결과가 도출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외국인가사근로자, 제품이 아니다
"적게 받고 일 잘하는 '동남아 이모' 가능할까요?"
"'필리핀 이모님' 100명 연말에 온다...급여 시세보다 낮게"
"'필리핀 이모님' 100명 서울 온다... 젊은 부모들 '문제는 신뢰'"
2023년 3월 조정훈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이하 '가사근로자법')' 일부개정안 및 시범사업 등과 관련된 기사의 타이틀을 살펴보자. 외국인가사근로자를 일컫는 용어로 특정 국가 명칭에 흔히 '이모님'으로 대표되는 가사근로자의 호칭을 결합한 제목을 사용하거나, 특정 지역 출신의 외국인가사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적게 받고 일 잘하는'과 같이 마치 '질 좋고 싼' 제품처럼 표현하고 있다.
"싸고 질 좋은 외국 제품, 가능할까요?"
"외국 제품, 국산 제품 보다 싸게."
"외국 제품, 국내 소비자 '문제는 신뢰'"
제목을 살짝 바꿔봐도 의미가 달라지지 않지 않는가. 마치 외국인가사근로자를 상품처럼 전시하는 기사 제목을 2023년 대한민국에서 버젓하게 사용한 것이다. 물론 기사의 제목은 내용을 압축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인간으로서의 가사근로자인 그들을 상품처럼, 효용성이나 가치만으로 판단하는 듯한 뉘앙스를 담은 표현에 대해서 언론인으로 고민했어야 하지 않는가? 이제 가사근로자 시장에는 내국인을 뜻하는 '이모님'과 중국 동포 가사근로자를 제외한 외국인가사근로자를 의미하는 '특정국가명 + 이모님'이라는 호칭이 자리 잡고, 이들 사이의 구분을 명명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언론은 다양한 명명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인식에 여러 가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모님이라니. 이모님이라는 호칭의 사회적 맥락을 살펴보자. 돌봄과 가사노동은 비숙련 노동으로 평가절하되어 저임금, 여성직종화 되어 있는 대표적인 노동영역 중 하나이다. 그러다 보니 이를 어떤 직업의 노동자로 보기보다는 여성이 수행하는 비숙련 역할의 연장으로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그래서 호칭 자체에서 '이모님'과 같이 가정 내 돌봄 역할 수행자 중 성역할 고정관념과 전통적 가부장제에 영향이 깃든 경우가 많다(예를 들어 식당 이모라던가, 청소 여사님). 즉 이모님이라는 호칭 자체가 이미 가사근로자가 수행하는 노동의 전문성이나 그 가치에 대해 낮은 인식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거기에 필리핀, 동남아라는 특정 국가명이나 지역명을 붙였다는 점도 유의미하다. 향후 대중의 인식 속에서 필리핀이나 동남아 국가에 대한 이미지는 어떻게 각인될까? 진지하게 반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차별을 법제화하려는 시도, 부끄럽다
이제 기사의 시작인 개정안으로 돌아가자. 해당 개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 발상의 참신함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는데, 이는 외국인가사노동자에게는 '가사근로자법' 상의 제정 취지와 목적에 반하여 5년간 한시적으로 이들이 내국인과 동일한 가사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이라는 국적을 이유로 가사근로자가 아닌 '최저임금법'의 적용이 제외되는 가사사용인으로 규정할 것을 제안하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제안 이유로 '육아 하는 맞벌이 가정을 중심으로 가사근로자가 필요함에도 찾기 어려워, 일과 가정의 양립이 위협' 받고 있어, '저출산 문제 해결과 여성의 지속적인 경제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지속적인 경제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시급하다는 점을 들고 있는데,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일·가정 양립을 위해 돌봄을 대신할 가사근로자를 고용하는 경제적 부담을 줄여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법제화하겠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는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출신 국가, 출신 민족 등을 이유로 고용과 관련하여 특정한 사람을 우대, 배제, 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 등을 규정하고 있다. 만약 단순히 금전적 부담을 줄이겠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자 개인을 동일한 가사근로자이지만 국적을 이유로 고용에 있어 최저임금제에서 배제하는 것은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취지이다.
90년대로 회귀를 제안하는 2023년, 반성이 필요하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해결 노력은 개인에 대한 비용 지원이나 사적 영역의 자력화 지원을 통한 방식이 아닌 공보육 저변 확산과 일·생활 균형 보장 및 양육 환경과 서비스 질 제고를 통하여 개인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출산과 양육을 선택할 수 있는 방향에서 제시되어야 한다. 이는 이미 1994년 카이로 국제인구개발회의에서 성과 재생산 건강과 권리로서 인권 관점의 패러다임 전환이 선언되었음에도 2023년 현재에도 계속해서 돌봄을 개인적 문제로 해결할 것을 강조하며 출산 독려를 위한 인구정책 측면에서 비용 지원 정책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매우 부끄러운 부분이다.
게다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한시적으로나마 최저임금제 적용을 배제하겠다는 해당 개정안은 발의 자체에 대해 통렬한 반성이 필요하다. 이는 우리나라가 1998년 비준한 '고용과 직업에 있어서 모든 형태의 차별을 철폐할 목적으로 채택한 국제노동기구(ILO) 제111호 협약 "차별(고용과 직업) 협약에 반하며, 그동안 노동 가치에 대한 적합한 평가와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했던 가사근로자를 위해 제정된 '가사근로자법'의 제정 목적과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으며, 국적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금지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제6조의 균등한 처우에 반하며, 대법원 판결(2006,12.7 선고 2006다3627 판결)에도 반한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당연한 결과이다.
돌봄은 인류의 근본적 가치이다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는 1만5000년 전 "부러졌다 치유된 대퇴골"을 문명의 첫 증거라 말했다. 그 당시 대퇴골이 부러진다는 것은 생존 경쟁에서 탈락을 의미하는데, 어려움에 직면한 타인을 돕는 누군가가 존재했다는 것이 바로 인류 문명의 시작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류는 서로에 대한 돌봄을 통해 공동체를 구성하고, 함께 생존하고 성장하며 사회로 발전해 왔다. 그래서 우리에게 돌봄이란 사람의 전 생애주기에 걸친 핵심 경험이자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보장하기 위한 공동체 유지의 본질적 요소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에 강하게 남아있는 전통적인 가족 이데올로기와 가부장제, 성역할 고정관념은 삶의 존엄 보장의 핵심인 돌봄 기능을 개인의 역할, 사적 영역의 문제로 규정하며, 이를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때로는 공적 영역에서 해결할 수 있는 돌봄 문제를 개인에게 부담을 가중하는 방식으로, 개인 역량 강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돌봄의 외주화 방식을 택하는 등의 돌봄의 본질과 주체성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더욱 복잡하게, 그리고 차별과 폭력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아닐까.
"…많은 가난한 여성들이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대도시나 해외로 일을 찾아 떠난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더 나은 급여를 제공하는 해외 취업은 불가피하다. 그래서 남겨진 그들의 아이들은 시골 친척 등에게 보내진다. 남의 아이를 돌보기 위해 그들의 아이는 또 다른 돌봄의 부재를 경험한다. 아이들은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하고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 8월 연구 업무차 방문했던 필리핀 마닐라 대학에서 만난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본다. 누군가는 외국인가사근로자들의 해외 취업은 그들의 자발적 선택이라고 보겠지만, 그 선택의 맥락 속에 겹겹이 녹아있는 빈곤과 차별, 성역할고정관념, 돌봄의 빈곤화, 성별임금격차와 같이 중첩된 문제를 들여다볼 때, 그것이 정말 자발적이며 진정한 선택인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우리 역시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를, 중동에 건설노동자들을, 베트남에 군인들을, 시골에서 도시로 누이를, 동생을 식모로 보냈던 과거를 경험한 나라임을 기억한다면 말이다.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저출생, 돌봄, 노동력 부족 등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 최선인지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인권의 관점에서 생애주기에 맞는 성과 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보장하는 과정은 다각적이고 다채롭고 유기적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다양한 방법과 관점에 대해 찾아가는 과정에서 돌봄의 인권적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그 안의 돌봄노동자들이 배제되거나, 차별받지 않도록 가장 인간다운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동료 시민의 자세가 필요하다. 외국인 이모님 역시 나의 이웃이며 우리의 동료 시민이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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