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문제, 예산만 늘리면 끝? 개인화하고 있다

[시민건강논평] 각자도생 사회에서 예방적 정신보건을 꿈꿀 수 있을까

세계 정신건강의 날(10월 10일)이다. 한글날과 같은 공휴일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생소하겠지만, 정부의 관련 부처와 기관은 기념행사와 캠페인을 벌인다. 약 두 달 전에 대통령이 직접 '국민의 아픈 마음을 살필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수립'할 것을 지시했고, 살벌한(?) 예산 삭감 가운데서도 2024년도 정신보건 예산이 많이 증가하는 것을 봤을 때, 정신건강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점점 더 커지는 분위기다.

복지부는 내년도 정신보건 예산안과 관련해 치료에서 예방 중심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국민은 누구나 상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전국민 마음건강 투자사업'을 신설하고, 인식개선 캠페인과 교육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대한다는 것이 복지부의 설명이다(보도자료 바로가기). 특히 새로 도입되는 '전국민 마음건강 투자사업'에는 539억 원이라는 거금이 책정되었는데, 이는 2023년 정신보건 예산(550억 원)과 거의 맞먹는 규모다.

치료에서 예방 중심이라는 패러다임 전환에 적극 동의한다. 하지만 정신 건강이 악화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중점 사업이 상담 서비스라는 것에는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현재 이 사회에서 정신 건강이 악화되는 것이 과연 개인이 필요한 상담을 받지 못해서인가? 상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면 사람들의 정신건강 수준이 정말 좋아질 수 있는 것일까?

위험 요인에 대응할 수 있도록 개인의 역량과 자원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사회적 요인들이 해결되더라도 개인이 다뤄야 할 고통이 여전히 남아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인구집단의 정신건강을 향상하려는 조치라면, 사회 구성원들에게 공통으로 작동하는 위험 요인 자체를 줄이는 방향을 상상하고 나아갈 수는 없을까. 이것이야말로 치료에서 예방으로의 진정한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구집단의 정신건강을 악화시키는 중요한 위험 요인에 대해 저마다 의견들이 있겠지만 과도한 경쟁이 주요 위험 요인 중의 하나라는 점에 대해서는 크게 이견이 없을 것이다. 시장과 경쟁 원리가 온 사회를 뒤덮고 있는 가운데,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개인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생존의 필수적인 요소들에 접근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은 경쟁에 뒤처질까봐 만성적인 불안을 느끼고, 남들과 비교하며 박탈감이 커진다.

개인은 경쟁할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경쟁을 내면화한다. 각자가 자기 자신에 대한 경영자가 되어 스스로 리스크를 관리하고, 인적 자본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투자를 한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그렇게 움직이고, 시장에 적응한 자기 경영적 주체가 되지 못하면 스스로를 질타하고 고통을 느낀다. 불안을 느끼면서도 경쟁은 점점 더 옳은 것이 되어가고, 협력의 가치는 점점 줄어든다. 그럴수록 사람들의 고립은 심해지고 '사회 따위는 없어'지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 아닌가.

사람이 타고나기를 경쟁을 너무 사랑해서 지금의 사회를 만든 것은 아니다. 몇십 년에 걸쳐 국가의 역할을 축소하며 사회를 해체하고, 사람들이 알아서 살아남기를 강요하는 제도와 정책들이 켜켜이 쌓여 미친 영향이 크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와 자기 경영적 주체가 서로를 강화하니 풀어나가는 것이 쉽지 않다.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한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지금의 방향이 적절치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복지부가 정신보건 예산을 설명하며 '투자'로 표현하는 것은 자기 경영적 주체를 전제로 하는 인식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이 아니라 시장에 적응하고 경쟁할 수 있는 주체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사회 전반적인 작동 원리의 문제라면 정부의 일개 부처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권한과 역량의 부족이라기보다는 틀린 인식을 기반으로 정신건강 문제를 개인화하고, 그에 맞춘 대책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전망을 어둡게 한다.

경쟁 압력 자체를 완화하거나 경쟁으로 인한 압박감을 줄일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당연히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을 시장에 미루지 않고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자 감세 하고, 국군의 날 행사에 100 원억이 넘는 재정을 투입하면서, 지역거점병원 공공성 강화, 이주노동자지원센터, 사회서비스원 예산과 같이 사람들 삶의 필수적인 재화와 서비스를 보장하는 예산을 삭감하며 방기하는 것은 예방 중심의 정신보건으로부터 멀어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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