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위험한 사회' 입증한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

[새만금잼버리 리포트 24] 위험경고에 대한 ‘무시’와 ‘무책임‘ ‘자만’이 화를 불렀다

사회학자들은 “현대사회는 위험하다”라고 말한다.

특히 2008년 3월에 한국을 찾은 세계적인 석학 ‘울리히 벡’은 “근대화가 극단적으로 실험된 나라들, 예를 들면 한국 같은 나라가 바로 내가 여행하고 싶은 나라다. 한국은 '아주 특별한' 위험 사회”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내가 지금까지 말해온 위험 사회보다 더 심화된 위험 사회”라며 “전통과 제1차 근대화 결과들, 최첨단 정보사회의 영향들, 제2차 근대화가 중첩된 사회이기 때문에, 특별한 위험사회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뿐 아니라 학자들은 “현대사회의 위험 문제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합의와 공론의 장 형성을 통한 숙의민주주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그 위험을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현대사회의 위험과 위기,갈등에 대한 해석과 대응을 담은 책 ‘위험, 위기 그리고 커뮤니케이션’(2008년)이라는 책에서 김영욱 교수는 “우리나라 조직들의 위기관리 수준은 매우 낮다”고 평가하고 있다.

말로는 위기관리 ‘자화자찬’, 결과는 위기자초 ‘세계적 망신살’

조직의 범주에 정부는 당연히 포함될 것이다.

정부는 지난 2019년 ‘재난 분야 위기관리 표준 매뉴얼’에 ‘폭염’을 자연 재난 유형으로 추가해 관리하고 있다.

▲2023년 7월 행안부에 제출된 전주기상청의 부안군 최근 10년 기상특보 현황표 ⓒ프레시안

그렇다면 폭염으로 온열환자가 속출했던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를 앞두고 정부의 위기관리 수준은 어땠을까?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확보한 행정안전부의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정부합동 안전점검 결과’ 보고서를 보면, 행안부는 지난 3월 7∼9일(1차)과 7월11∼13일(2차) 전북 부안군 새만금 야영지 일대에서 여가부와 산업부, 환경부,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계부처와 잼버리 조직위원회, 전북도 등과 함께 잼버리 기반시설과 재난위기대응 등의 안전관리 실태를 점검했다.

행안부는 지난 7월 정부합동 2차 안전점검 결과보고를 통해 ‘기관별 점검.지원(협조) 분야 및 임무와 역할을 부여한다.

잼버리 대회 개최 한달여를 앞두고 실시한 안전관리 실태 점검에서 행안부는 분야별 점검 결과와 보완대책에서 각 부처별로 모두 77건의 시정요구를 했다.

행안부는 이 당시 전주기상청이 제공한 부안군의 최근 10년간 기상특보 현황자료를 첨부하면서 ’폭염 발생 시 대비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보고서에 담겨 있는 전주기상청의 지난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최근 10년간 8월 1일에서 15일까지 기상특보 발표현황을 살펴보면 폭염특보(주의보 18일, 경보 8일)가 26회나 발생했다.

새만금잼버리 기간(8월1∼12일)에도 폭염이 기승을 부릴 것으로 충분히 예측하고도 남는 근거였다.

행안부는 덧붙여서 2차 안전점검 당시 영내 그늘 시설인 덩굴터널의 덩굴 생육이 충분치 않다는 점도 지적했다.

실제로 새만금잼버리가 열리기 전인 지난 7월 28일 오전 10시 전북 부안군에 폭염경보가 발령돼서 8월 9일까지 무려 12일간이나 지속됐다. 이는 전주기상청이 제출한 지난 10년간 폭염경보 발생일보다 4일이나 더 많이 발생한 것이다.

이를 입증하듯 잼버리대회 개영 이틀 만에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자 발생이 400명을 넘었다. 대회 초반부터 예상치 못한 폭염과 각종 준비 부실 문제가 드러나면서 새만금잼버리는 ’생존게임‘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국민들은 야외활동 ’자제‘시킬 때 잼버리는 땡볕에 그대로 ’노출‘

ⓒ프레시안

이에 앞서 잼버리 개영 이틀 전인 7월31일 전북녹색연합은 “대회기간 내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폭염에 국민들에게는 자제가 권고되는 야외활동을 다수가 참여하는 국제행사에서 진행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성명을 냈다.

녹색연합은 성명에서 “연이은 폭염특보와 열악한 야영지 환경에서 정상적인 대회 진행이 우려된다”면서 “무엇보다 참여자들의 안전이 최우선인만큼 지금이라도 야영지 행사를 취소하거나 대회를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잼버리조직위는 대회를 강행했다. 대회를 강행했을 뿐 아니라 개영식 장에서 집단탈진으로 온열환자가 속출하자 소방당국은 비상대응 2단계를 발령하고 잼버리조직위에 축하공연 중단을 요청했지만 이마저 무시했다.

8월 5일 루 폴슨(Lou Paulsen) 미국 보이스카우트 운영위원장은 “6일로 예정된 K팝 콘서트를 포함해 잼버리 활동을 관두는 것에 대해 대원들이 아쉬워하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는 날씨 때문에 떠난다”라고 말했다.

결국 ’자연재난‘인 ’폭염‘에 대비한 위기를 관리하지 못한 새만금잼버리대회는 최다참가국인 영국과 미국이 대회 초반인 8월 5일 잼버리숙영지에서 철수하면서 파행은 시작됐다.

영국과 미국 대원의 철수를 비롯해 야영장 내 화장실과 샤워실, 의료시설의 부족을 비롯해 곰팡이가 핀 계란이 아침식사로 제공된 일, 심각했던 벌레 물림 등은 6년여를 준비해 온 세계잼버리 대회가 국제적 망신을 초래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웠다.

ⓒ연합뉴스

위기관리의 무관심과 무능이 빚어낸 파행

대회준비에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도 위기관리의 무능으로 빚어진 예정된 결과였다.

새만금잼버리대회 유치가 확정되기 전인 지난 2016년 전라북도의 요청으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수행한 타당성 조사 보고서는 "가장 중요한 것은 2023년 8월 1~12일 2023 세계잼버리 기간 한반도에 폭염이 가장 심하고 태풍과 폭우 등 자연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2018년 보고서 또한 "8월 행사가 36도 폭염과 태풍에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이처럼 폭염에 대한 경고는 이미 여러 차례 있었고 결과도 그대로 나타났지만 이같은 위험경고에 따른 대비책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태풍 ’카눈‘으로 인해 수만 명의 잼버리대원들이 1천여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새만금야영장에서 조기철영한 9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적신호를 무시하고 한국은 어쨌든 스카우트 잼버리를 강행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주최 측의 과거 보고서를 살펴본 결과, 이미 2016년부터 극한 기상이 예측돼 사전 조치의 필요성이 제기됐음에도 한국 관계자들이 이에 대비하지 못했다“고 꼬집기도 했다.

울창한 녹색 숲 조성은 ’거짓말‘

WP는 또 ”주최 측은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2023년까지 5년 동안 행사장에 '울창한 녹색 숲'을 조성하겠다고 밝혔으나, 정작 지난주 행사가 시작됐을 때 녹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이 때문에 많은 온열질환자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WP는 "나무를 심으려는 주최 측의 계획은 (갯벌을 매립한) 토양의 고농도 염분 때문에 무산됐고 7월의 폭우로 야영지는 모기가 들끓는 습지로 변해 있었다"고 비판했다.

ⓒ연합뉴스

주무부처 장관의 엉뚱한 ’위기대응‘ 역량 자화자찬

새만금잼버리대회 주무부처 장관이며 공동조직위원장였던 김현숙 전 여성가족부 장관은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조기 철수 사태에 대해 “한국의 위기 대응 역량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껏 자랑(?)했다.

당연히 폭염 대책 준비 부실과 비위생적인 화장실, 절대 부족했던 샤워실 등으로 대원들의 원성이 자자했던 행사의 주무부처 장관이자 공동조직위원장으로서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김 전 장관은 수만여명의 잼버리 대원들이 새만금 야영장을 빠져나간 직후인 8월 8일 오후 새만금 잼버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위기 대응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역량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그런 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사태는) 오히려 대한민국이 가진 위기관리 능력에 대해 보여줄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예 입국조차 하지 않은 나라 잼버리 대원들의 숙소를 배정하거나 전혀 엉뚱한 곳에 내려진 잼버리 대원들도 나타나는 등 마지막까지 주무장관의 발언과는 동떨어진 허술한 위기관리 능력 부재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다.

기업이 위기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동안 쌓은 명성과 신뢰가 하루아침에 땅에 실추되는 것은 물론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까지 초래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국가가 위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새만금잼버리대회에 대한 경고등은 수없이 켜져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2022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새만금잼버리가 진행될 전북 부안김제를 지역구로 둔 이원택 의원의 경고였다.

이 의원은 당시 “폭염이나 폭우 대책, 비산먼지 대책, 해충 방역과 감염 대책을 정말 점검해야 한다” "전세계 청소년들과 전세계에서 다 바라보고 있는 이 대회가 정말 어려운 역경에 처할 수 있다는 걸 장관이 좀 인지해주셨으면 좋겠고 대책을 적극 강구해주셨으면 좋겠다" “폭염과 폭우에 대해 지나칠 정도의 반복적인 점검이 필요하고 즉각적인 대책 마련이 중요하다" "해충과 화장실 등 위생문제에도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고 수없이 강조했었다.

이에 잼버리 행사의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의김현숙 장관의 답변은 "태풍, 폭염에 대한 대책도 다 세워 놓았다"다며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결과는 배수도 되지 않는 진창상태의 야영장, 안이 들여다보이는 샤워장, 불이 들어오지 않는 화장실, 부패한 음식 제공, 절대 부족한 의료 시설과 의약품이 외국인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의 수준이 됐다.

뒤늦게 새만금잼버리 대회는 반면교사의 모델로 등장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와 관련해 "앞으로 국제행사 유치에 ‘반면교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잼버리대회가 막을 내린 지 한 달 여가 되는 9월 7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 8월에 열린 잼버리와 관련해 “준비가 상당히 미흡했고 행안부가 안전 대책 지원을 위해 참여했음에도 폭염대책 역시 부족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행안부가 100여개의 지적 사항을 발굴해 조직위에 경고했으나 이행까지 강제할 권한은 없었다”면서 “향후에는 지원 조직이라도 맡은 분야에서는 집행 권한까지 부여하는 방안, 역량 있는 부처가 사업을 주도할 수 있는 지휘부 구성 등의 개선이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대회 유치 후 잘 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초반 파행을 거듭한 새만금잼버리대회, 뒤늦게 누구의 잘못인지 감사원 감사가 착수됐지만 이마저 반발을 사고 있다.

▲전북도의회 새만금 대응단은 19일 전북도를 상대로 감사를 벌이는 감사원 관계자를 만나 입장문을 전달했다. ⓒ전북도의회

전라북도의회는 감사원 새만금잼버리 감사반에 이같은 내용의 입장문을 전달했다.

“화장실과 샤워장, 폭염 문제 등은 이미 1년 전 국정감사를 통해 우려가 제기됐으나 폭염 대비 예산 반영 요구에 기재부는 마이동풍이었다”며 “국무총리부터 여가부, 행안부 등 관계부처 장관은 잼버리 개최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위기관리

세계적인 망신살을 산 뒤에 깨우친 깨달음일까? 아니면 2030부산엑스포 유치에 걸림돌이 될까 우려했기 때문일까?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달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철수가 중단이 아닌 "적극적 위기 관리의 일환"이라고 적극 해명했다.

한 총리는 "유례없는 폭염 속에서 우려를 낳았던 새만금 잼버리가 안정을 찾아가며 중반부를 넘어섰는데 안타깝게도 새만금 야영장이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면서 잼버리 자연재난 비상대비계획 가동에 따른 소산조치를 결정한 것“이라는 것이다.

한 총리의 말처럼 ‘적극적 위기관리'가 전 세계 150여개 나라에서 4만 여명의 잼버리 대원들이 온 새만금잼버리대회에는 왜 적용이 안됐을까 하는 아쉬움과 의문이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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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

전북취재본부 최인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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