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의 정상화"…美 정치, 양극화를 넘어선 치킨게임

[장성관의 202Z] 다시 임박한 연방정부 "셧다운"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말이 있다. 정치권에서 자주 쓰는 문구로, 1996년 미국의 사회학자 다이앤 본(Diane Vaughan)의 책을 통해 널리 퍼졌다. 이 책은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의 폭발 사고 원인의 연구로, 저자는 우주왕복선에 사용된 한 부품의 이상을 으레 있는 일로 받아들인 당시 미 항공우주국(NASA)의 집단적 인식이 문제라고 짚는다. 즉, "비정상의 정상화"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례적인 일을 당연시한다는 뜻이다.

이는 우리 주변에도 빈번하다. 특히 매년 이맘 때, 뉴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단어로 "셧다운"을 꼽을 수 있다.

미국 연방정부의 회계연도가 끝나는 9월 30일까지 예산안이 제정되지 않으면 10월 1일 자정을 기해 연방정부는 자동으로 셧다

운 상태에 돌입한다. 이러한 예산 공백기에 모든 연방정부 공무원의 임금 지급은 중단되며, 극소수의 필수 인력을 제외하고는 업무 또한 처리할 수 없다. 군인은 끝을 알 수 없는 시간 동안 무급으로 복무해야 하고, 공항의 보안검색 요원은 크게 줄어들어 비행기 탑승과 운항 시간에 차질이 생긴다. 일상의 크고 작은 부분에 많은 불편함을 초래하고, 무엇보다 막대한 경제적 피해가 발생한다.

이번 회계연도의 끝이 며칠 남지 않은 현재, 내년 예산안 통과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셧다운을 피하기 위한 단기 임시예산안(continuing resolution) 채택 또한 요원하다. 워싱턴 정가는 이미 셧다운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정부 셧다운은 점점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미국의 연방정부 수립 192년 만인 지난 1981년에 처음 터진 뒤 지금까지 총 18회 발생했다. 1977년 이후 회계연도 내에 익년 정부 예산안이 온전히 의회를 통과하고 대통령의 서명으로 제정된 적은 단 4번뿐이다. 가장 최근 사례는 1997년인데, 그로부터 지난 26년간 셧다운은 네 차례 일어났다. 같은 기간 예산 공백을 피하고자 채택한 임시예산안은 무려 131건이다. 임시예산안 사용 빈도와 함께 셧다운 지속 기간 또한 날이 갈수록 현저히 길어지고 있다. 정부 업무 재개를 위한 협상을 두고 더욱 첨예해지고 있는 양당의 대립을 방증한다.

공화당은 지금 내전 중?

올해 예산 공백 위기의 이유는 간단히 찾을 수 있다. 하원 공화당 내 강경파인 "프리덤 코커스"에서 줄곧 합의안에 반대표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요구사항은 크게 다섯 줄기로 나눌 수 있다. 다음 회계연도 예산 수준을 1조4700억 달러로 제한(2023 회계연도 지출 규모는 1조7000억 달러), 국경 보안 강화, 우크라이나 원조 중단, 미국 내 재난지역 추가 복구 지원금 반대, 그리고 앞으로 모든 예산안에 바이든 행정부의 "워크"(woke) 정책 배제 등이다.

프리덤 코커스는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셧다운을 불사할 것을 강조하며, 이들 정파의 지도부가 온건 보수 계파와 타결한 중재안도 거부하고, 본회의에 상정된 국방예산안마저 부결시켰다. 나아가 이들 중 일부는 맥카시 의장이 만에 하나 민주당의 표를 빌려와 프리덤 코커스의 동의 없이 예산안을 타결시킬 경우, 의장의 탄핵 또한 불사한다고 밝혔다. 이 중 플로리다의 맷 게이츠(Matt Gaetz) 의원의 이름으로 작성된 의장 해임 안건의 초안이 의사당 내 화장실에서 발견되며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 1월 매카시 의장은 프리덤 코커스가 요구했던 의장 선출 지지 조건을 받아들여, 의장 해임 안건 (motion to vacate the chair) 발의에 필요한 최소 동의 인원수를 낮춘 바 있다. 최근 이들의 불만을 잠재우고자 매카시는 또 최근 바이든 대통령 탄핵 조사 착수를 지시하기도 했다. 지금 그의 앞날이 위태로울 뿐 아니라, 단 4석 차이로 다수당의 지위에 있는 공화당이기에 프리덤 코커스의 목소리를 무시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그렇다고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경우, 예산안이 제정될 가능성 또한 아득하다. 상원에서는 이미 내년 예산안의 초당적 지지를 확보하여 본회의 상정만을 앞두고 있기에, 내용의 차이가 큰 하원안에 반대할 것은 기정사실로 전망된다. 백악관 또한 수개월간 구체적이고 명시적으로 우크라이나 지원과 재난지역 복구 예산을 요청해왔기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높다.

직전 공화당 소속 하원의장인 존 베이너와 폴 라이언은 프리덤 코커스와 당내 주류 사이 중재에 지쳐 끝내 정계에서 은퇴한 바 있다. 하킴 제프리스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지금 상황을 두고 "공화당은 지금 내전 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묘사했다.

양극화를 넘어선 치킨게임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하원 민주당 지도부, 초당적 의원 모임, 공화당 내 중도 보수파 등에서 정부 예산 지출을 현행 수준에서 유지하는 30일간의 임시 예산안을 제안한 바 있다. 또 초당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인 국방예산과 국경 보안 관련 예산안의 개별 표결이라는 제시에도 프리덤 코커스 소속 의원의 다수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 외 요구사안인 우크라이나 원조 중단이나 자연재해 피해 복구 예산 반대에 대한 근거를 내놓은 적 없고, 그들이 "과하게 PC(정치적 올바름)하다"고 평하는 "워크"(woke) 정책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무얼 의미하는지 특정하지도 못하고 있다. 때문에 그들이 지금의 대립에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의문할 수밖에 없다.

현 대치 국면에서뿐 아니라 수년간 매카시 의장을 비판하고 있는 공화당 의원 중 네 명을 보면 그 실마리가 보일지도 모른다. 노스캐롤라이나의 댄 비샵(Dan Bishop) 의원은 주 검찰총장직 출마를 선언했고, 플로리다의 맷 게이츠 의원은 차기 주지사에,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랄프 노먼(Ralph Norman) 의원과 몬태나의 맷 로젠데일(Matt Rosendale) 의원은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할 것을 고심하고 있다고 밝혀졌다. 모두 전 주를 지역구로 두는 자리로, 연방 하원에 당선되는 것 보다 수 배로 많은 표를 필요로 한다.

미국 정치제도에서의 교착상태는 이제 이념의 대립과 정치적 양극화에서만 그 원인을 제한할 수 없게 되었다. 마치 만용과 저돌성의 대결로 변질되었다. 더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도출하기 위해, 소셜미디어의 숏폼 컨텐츠에 맞춘 사운드바이트를 내놓는 것 대신, 일상의 문제에 대한 실효적인 해결을 통해 많은 표를 얻는 것은 비현실적인 접근인 걸까.

이런 국면에서 의회는 마치 도박장으로 변질한 듯 서로 내기에 더 많은 것을 걸고 있지만, 그건 의원들의 것이 아닌 시민의 혈세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치는 노름과 다르게, 대결이 끝났을 때 가장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은 바로 시민들이다.

비단 워싱턴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공화당 내 극우세력인 '프리덤 코커스'가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를 앞세워 연방정부 예산안 통과에 반대하고 있어 연방정부 '셧다운'이 불가피해 보인다. ⓒCNN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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