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연설에 러 "강한 유감"…이념에 빠진 외교로 문제해결 할 수 있나

유엔서 북·러 비난 윤석열, 북과 대화하겠다며 납치자 문제 챙긴 기시다

윤석열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에 대해 러시아 당국이 미국의 선전에 동참하고 있다며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한러 관계를 잘 관리해야 하는데, 대통령실이 이러한 복합적인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이분법적이고 일차원적인 외교를 펼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주한 러시아 대사관은 사회관계망(SNS) 서비스인 페이스북 공식 계정에 북러 군사 협력을 두고 한국의 안보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도발이라고 규정한 윤 대통령의 지난 20일(현지시각) 유엔총회 연설에 대해 "러북 협력을 깎아내리기 위해 미국이 주도하고 미국과 한국 언론이 지원하는 선전활동에 동참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러시아 측은 "이러한 추측성, 사실무근 발언들은 도발적이고 대결적이며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 집단이 우리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침략적인 하이브리드 전쟁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간주한다"고 규정했다.

이들은 "우리의 선량한 이웃이자 오랜 파트너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관계 발전과 관련된 의무를 비롯하여 우리가 약속한 모든 국제 의무를 변함없이 준수하고 있다"고 말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등 제재에 위반되는 협력을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측은 "러시아와 호혜적인 소통 및 협력의 경험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의 지도부가 현재의 상황, 그리고 한국이 계속해서 반(反)러 노선을 따를 경우 그것이 러한 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윤 대통령은 연설에서 "북한이 러시아에 재래식 무기를 지원하는 대가로 WMD(대량살상무기) 능력 강화에 필요한 정보와 기술을 얻게 된다면 러시아와 북한 군사 거래는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안보와 평화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도발이 될 것"이라며 "대한민국과 동맹, 우방국들은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8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러시아에 재래식 무기를 전달하고 러시아가 이에 대해 위성 발사와 관련한 핵심 기술을 전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지난 4일(현지시각) 북러 정상회담을 처음 보도한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에 의해 제기됐지만 실제 양측 간 어떤 협력을 했는지는 아직 정확히 확인된 것이 없다.

양측 간 군사협력에 현재까지 드러난 것은 지난 17일(현지시각) 러시아 매체 <타스통신>에 보도된 드론 6대와, 통제 시스템, 방탄복 등이 러시아에서 북한에 전달됐다는 부분이 전부다.

또 정부는 러시아 측의 이러한 전달에 대해서도 안보리 결의 위반인지 명확하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19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러시아가 북한에 드론을 전한 것이 안보리 결의에 100% 위반된다고 결론을 내리지 않은 것이냐는 질문에 "소위 말하는 '자폭 드론'이 어느 부분에 해당되는지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답했다.

이 당국자는 "그렇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단정해서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고 말씀드리는 것보다도 전반적인 제재 결의 내용을 봤을 때 결의 위반을 구성할 가능성이 높다는 입장으로 설명을 드리게 된 것"이라며 어떤 결의에 어떻게 위반되는지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렇듯 정확한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 대통령이 유엔에서 공개적으로 러시아에 대해 날선 반응을 보이는 것은, 북러 밀착을 약화시키고 한러 관계를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 강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14일 통일부 고위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일각에서 북러 정상회담이 이뤄지니까 우리도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본다면 우리가 대단히 신중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며 "러시아도 북한과 관계보다는 대한민국과 관계가 훨씬 중요할 것이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을 장기적 관점에서 보고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외교부와 통일부는 신중한 입장에서 여러 변수를 고려하고 있음에도 대통령이 유엔 무대에서 북한과 러시아에 대한 비난으로만 점철된 연설을 진행하는 것을 두고, 대통령실의 성급하고 즉자적인 판단이 한국 외교와 한러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북한에 비판만 했던 한국과는 달리 기시다 후미오 (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지난 19일(현지시각)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날 수 있다는 입장을 또 다시 밝히며 운신의 폭을 넓히고 있다. '이념'과 '가치'만을 중시하다가 문제 해결도, 실속도 챙기지 못하는 윤석열 대통령실의 외교 방향과는 매우 대조되는 대목이다.

▲ 19일(현지시각)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유엔 총회에서 연설을 가졌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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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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