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과 푸틴이 만난다면, '무기 거래' 이상이 있다?

[정욱식 칼럼] 북한, 우크라이나 전쟁 넘어 러시아와 협력 강화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 가능성이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그리고 온통 관심사는 양측의 주고받기에 쏠려 있다. 북한이 탄약과 대전차 미사일 등 재래식 무기를 제공하고 러시아는 북한의 전략무기 기술 지원, 식량, 에너지 등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다 큰 그림을 볼 필요도 있다. 자칫 나무는 보되 숲을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큰 그림이란 북러가 국제정세의 다극화를 향해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련의 몰락을 "20세기 최악의 지정학적 사건"으로 규정한 푸틴은 30여 년 동안 러시아가 미국에 철저하게 모욕당했다고 여긴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동진과 미국이 동유럽 국가들에 미사일방어체제(MD)를 전진배치한 것이 대표적이다.

푸틴은 2007년 뮌헨안보회의에서 "주인이 하나밖에 없는 세상"에 대한 강한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는데, 이런 감정이 강해질수록 미국 주도의 단극체제를 다극체제로 바꾸겠다는 결의도 강하게 다졌다. 불법적이고 반인도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러한 의사 표현이었다.

소련 몰락 이후 북한의 최대 목표는 제국의 지위에 올라선 미국과 친해지는 것이었다. 핵 카드가 이를 가능하게 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핵비확산이라는 제국의 뜻에 도전해 제국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한 북한은 제국의 뜻을 수용하는 대가로 "조미 적대관계의 평화로운 관계로의 전환"을 도모했었다. 이것이 총체적인 위기에 처한 북한이 살 길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소련의 몰락으로 위기에 처한 세력은 또 있었다. 바로 미국의 군산복합체이다. 1990년대 들어 미국 군수산업계엔 구조조정의 바람이 몰아쳤고 미국 국방비는 1980년대 중후반에 비해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하여 한반도 문제의 보이지 않는 핵심은 위기에 처한 두 세력, 즉 북한과 미국 군산복합체의 상호작용에 있었다. 위기에 처한 북한은 미국과 친해지려 했지만, 위기에 처한 군산복합체는 '북한위협론'을 필요로 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전쟁의 승자는 군산복합체였지만, 북한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핵 개발을 지렛대로 삼아 북미관계 정상화를 도모했던 과거와 결별하고 핵무력을 국체로 삼아 거침없는 행보에 나선 것이다.

특히 북중관계 강화에 이어 북러관계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최근 국제정세를 '신냉전'과 '다극화'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러한 국제정세의 변화에 적응하는 것을 넘어 다극체제로의 전환을 도모하려 한다는 해석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최근 푸틴에게 보낸 친서에서도 이러한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6월 12일에 보낸 친서에선 "전략적 협조를 더욱 긴밀히 해나갈 용의를 확언한다"고 했고, 8월 15일에 보낸 친서에선 "백년대계의 전략적 관계로 승화발전될 것이며 필승불패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표현의 수위를 높였다. 푸틴도 8월 15일에 보낸 친서에서 "모든 분야에서의 쌍무 협조 관계를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화답했다.

이게 정치적 수사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이후 정상회담 추진설이 나오고 러시아 정부가 이를 확인해준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실제로 9월 중순에 북러 정상회담이 열릴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말이다.

물론 북러가 반미 연대를 앞세워 국제정세의 다극화를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 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그 잠재력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당장 북한이 다량의 재래식 무기를 러시아에 제공하면, 러-우 전쟁의 양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수십 년 동안 준전시체제를 유지해온 북한의 재래식 무기는 상당한 수준으로 비축되어 있을 가능성도 높고 또 소련제 무기를 기반으로 삼고 있어 러시아 무기체계외의 호환성도 높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도 역설을 발견할 수 있다. 미국이 오랫동안 우려하면서 대북강경책을 정당화하려고 했던 것은 북한의 핵무기 이전 가능성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오늘날 긴장하고 있는 대상은 북한의 재래식 무기의 러시아로의 이전이다.

미국은 연일 북한에 경고를 하고 있지만, 실효적인 수단은 부재한 상황이다. 과거처럼 북한이 미국과 대화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더 강력한 제재를 부과할 방법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원하는 바는 내년 11월 대선 이전에 러-우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가 확실한 승기를 잡아 미국의 대규모 지원이 헛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데에 있다. 미국이 최근 일부 동맹국들과 국제 인권단체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집속탄과 열화우라늄탄 지원에 나선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이 다량의 재래식 무기를 러시아에 제공하면 러-우 전쟁의 교착상태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더더욱 높아진다.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바이든 행정부에겐 선거의 악재가 될 공산도 커지면서 말이다.

이 밖에도 북러가 국제정세의 다극화를 도모할 수 있는 잠재적인 카드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핵보유국간의 전략적 제휴 강화 자체가 국제질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북러가 국제사회의 제재에 굴하지 않고 경제협력을 새로운 국면으로 올려놓을 수도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한국의 참여를 전제로 구상했던 철도 연결과 가스파이프 등 에너지 협력을 한국 없이 추진할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다.

자급자족과 자력갱생에 박차를 가해온 북한은 국경 개방과 더불어 북중, 북러 교역과 경제협력 수준도 끌어올리려고 할 것이다. 북한의 핵 고도화와 못지않게 북한의 전략적 입지 강화 및 경제발전의 가능성에도 주목해야 하는 까닭들이다.

▲ 2019년 4월 25일(현지 시각)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정욱식 소장은 최근 신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를 출간했습니다. 변화된 북한과 그에 따른 동북아시아 향후 정세 및 남한이 나아가야 할 대외 정책 방향을 모색해보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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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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