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버리는, 또 하나의 '메가이벤트 증후군'이었다

[시민건강논평] 흥하는 잔치의 주인이 되기 위하여

메가이벤트가 일단락되었다. 올림픽도, 월드컵도 아니었다. 지난 11일 막을 내린 '제25회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이야기이다. 메가이벤트는 방문자 수나 투입되는 비용, 인프라 구축과 인구에 미치는 파급효과 등이 통상적인 행사와 구분되는 수준의 대형 행사를 지칭하기 위해 관광학이나 스포츠경영학에서 쓰는 용어이다. 많은 국민들은 이번 잼버리가 열리기 전 까지만 해도 대부분 이 행사를 잘 몰랐거나, 안다고 해도 스카우트 청소년들의 국제교류 축제 정도로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부터 현재의 윤석열 정부까지 관여했던 모든 정권이 스스로 잼버리를 메가이벤트 급으로 격상시켜왔다.

왜 그랬냐고? 무엇보다 메가이벤트의 가장 큰 특징으로 지목되는, '지역 인프라 개발에 따른 경제적 효과와 지명도 제고'라는 허구적 지역개발담론을 충실히 따르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위하여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지원 특별법'을 제정하고 행사 계획과 시행의 책임을 중앙정부로 명시했다. 잼버리를 핑계로 새만금 일대에 도로와 공항, 항만을 건설하려는 개발주의 시각은 역대 어느 정권들이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다르지 않았다.(☞ 관련 기사 : <경항신문> 8월 7일 자 '잼버리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새만금 개발 위한 도구, 당연히 열악"')

'배수가 되지 않는 농업용지, 바닷물이 남아 있어 나무가 자라기 어려운 땅'이란 점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따라서 정확하게 말하면, 지연되고 있는 '세계 최대 간척지 새만금' 개발 목표를 위해 스카우트 축제를 빌렸다는 점에서 거대한 기만이었다. 국민들이 잼버리 행사의 무사한 종료를 기원하고, 불결한 화장실과 부족한 급식으로 아이들이 고통받았다는 보도에 내 일처럼 미안해하는 것은 이런 국가적 기만에 연루되어 있다는 자책과 반성의 정치적 책임 때문일 것이다.

이미 국내외 연구들은 국제적 메가이벤트의 경제적 효과는 지역관료·개발업자·경제성장주의자들의 과장되고 불확실한 선전이며, 국가와 지역사회에 상당한 재정적·환경적 부담을 준다는 것을 지적한 바 있다. '메가이벤트 증후군(mega-event syndrome)'이라 할 정도로 그 영향은 부정적이고 복잡하다(Müller. 2015). 그럼에도 최근 2030 부산엑스포 유치전에서 보듯이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여전히 이미지와 가치, 사회간접자본 확충을 통한 지역발전 등의 상당한 편익을 기대하고 있다.

주로 정권과 지방정부 단체장의 '정치적 결정'에 의해 추진되는 이런 대형 개발사업은 지역주민들에게 재정 부담과 사후관리 책임을 전가하고,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며, 주민 간 갈등, 환경 자원의 근시안적 개발 같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 주민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는 거의 막혀있다. 사실상 토건개발이 주축인 지역개발사업이 엄밀한 정책적, 환경적, 경제적 분석을 통한 사회 권력주체들 간의 의제화 과정을 거치지 않음으로써,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 공적 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시민들의 정치적 참여권은 봉쇄된다.

그래서 '이런 개발'에 반대한다는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가령 전북 시민사회단체들은 줄곧 "반환경적인 갯벌 매립 중단, 새만금 신공항사업 철회"를 촉구하고 있지만 절차적, 법적 절차가 무시된 채 강행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준비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듣지 않았다. 새만금 시민생태조사단장은 "한여름 매립지는 비만 오면 습지가 되고 해가 쨍쨍 찌면 훈증이 올라온다"며 매립지에서의 잼버리 행사를 반대해 왔지만, 결과는 우리가 지켜본 바 그대로다.

잼버리 파행에 대한 여러 해석들 가운데, 이 사태가 수도권과 비교해 급격히 형편이 나빠지고 있는 비수도권 지역의 불가피한 자구책이었다는데 원인이 있으므로 근본적으로 지역불평등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지지를 얻고 있다. 더 나아가 이번 사태는 지역소멸까지 우려되는 지역불평등에 대한 개입이 단순히 막대한 재원을 투입하여 일거에 대도시적 기능을 재현하는 방식으론 어렵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영향 받는 당사자인 지역 주민들의 기대와 인식, 지역 정치인과 지방 정부의 다양한 목표와 지속가능성 여부가 정책 결정에서 충분히 반영되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실제로 지역 정치인이나 이해관계자들은 개발에 대한 보호적 법적 절차를 우회하기 위하여 '긴급성'을 강조하고, 외부 세력들은 지역사회의 이익을 손상하면서까지 ‘행사에 대한 장악력’을 가짐으로써 지역사회의 사회적·환경적 피해에 일조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들이다.

정치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현대인들의 갈등과 불안의 근원으로 삶에 만연한 두려움을 지목한다. 특히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들에게 누군가의 보호나 독재적 지배를 구하게 될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힘들게 성취해온 민주주의의 안정을 위협한다고 보았다. 잼버리를 통해 드러난 새만금 개발의 현재는 낙후함 또는 소멸에 대한 두려움을 초대형 개발사업에 전가하려는 지역사회와 그것을 이용하여 통제력을 가지려는 중앙과 지방정부의 정치가 작동한 것은 아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 시민들은 어떻게 지속적인 성찰적 사고에 기반하여, 이런 정치세력과 토건자본들에게 압도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우선 시민들이 지역 장기개발 계획의 영향을 반복적으로 평가하고 조정할 수 있는 거버넌스에 참여해야 한다. 이를 통하여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주도하는 절차적 의사결정 및 실행, 평가가 변칙적이고 형식적으로 운영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시민사회가 중앙 정부나 지방정부에서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과제를 중단시킬 수도 있는 권한을 가져야한다. 조직위원회나 정부지원단은 불과 5년 이내의 단기적 계획만을 세울 뿐이다. 그 피해를 혹은 이익을 볼 당사자인 지역주민들이 의사결정과 실행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더욱이 지역 개발에서의 환경의 보존과 생태자원의 활용은 정치 대표자에게도 점점 더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고 있다. 농업용지개발이 필요하던 1987년과 달리 이젠 갯벌의 생태적 가치는 농경지의 100배에 이른다 하지 않는가.

잼버리가 끝난 주말에도 서울 시내 곳곳에서는 무능하고 권위주의적인 정권이 독단적으로 이끌고 있는 대일외교, 원전 에너지 정책, 오염수 방류 방침 등을 비판하는 전국 시민사회와 노동계의 집회와 시위가 열렸다. 생존을 위협하는 불확실하고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이는 대신 다른 시민들과의 연대와 협력을 택한 이들이었다. 한 원전지역 농민회장은 우리 시민들이 거리에서 투쟁하며 눈물을 흘릴 때도 있지만, 같이 춤추고 노래하면서 지치지 말고 끝까지 이 투쟁을 함께 하자고 호소했다. 그렇다. 망한 잔치를 더 두고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 시민들이 여기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 참고자료

- Müller, M. (2014). The mega-event syndrome: Why so many things go wrong in mega-event planning – And what to do about it (Working Paper). Retrieved from http://papers.ssrn.com/abstract=2363958

- Warren, Gina(2020). Mega Sports Events Have Mega Environmental and Social Consequences (June 2, 2018). Missouri Law Review, Vol. 85, No. 2, Available at SSRN: https://ssrn.com/abstract=3463119

- <타인에 대한 연민>(마사 누스바움 지음, 임현경 옮김, RHK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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