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버리 파행, 묻지마 칼부림…진짜 문제는 '정치'

[최창렬 칼럼] 민주주의의 위기, 정치의 위기, 사회의 위기

세계잼버리 대회의 난맥상은 후진국에서조차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다. '묻지마 살인', '살인 예고'라는 듣지도 못하던 일들도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집권세력의 무능과 무책임, 제1야당의 각종 비리 의혹, 고위공직자 후보의 부정의 등 정치사회의 비정상은 익숙한 우리의 자화상이다.

건설 비리로 인한 부실 주택, 정상 궤도를 벗어난 시민사회의 난맥상 등의 모든 사안이 정쟁화되고 반목과 경계, 과한 경쟁과 상실감으로 인한 극단적 행위 등 정치사회와 시민사회 구분 없이 극단적 물질주의와 배타적 적대감이 한국사회를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유대와 연대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하고 공허하게 들린다. 공동체 해체 조짐의 파열음들이다. 지정학적인 안보와 국가 존재의 문제는 더 중차대하다.

이제 총체적으로 한국사회를 점검할 때가 됐다. 사회, 정치, 안보, 환경, 건설, 노동 등 각 영역에서 분출하는 강한 충돌들을 미봉책인 정쟁이나 다툼으로 지나치면 종국에 한국사회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불안의 징후들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한국사회가 총체적으로 위기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반증이다.

국가와 시민사회, 정치사회 모두 반성하고 성찰하지 않으면 한국은 급격하게 쇠락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 굳이 출산율과 자살률 수치를 들먹이지 않아도 한국사회의 상식과 보편의 궤도를 이탈한 각자도생이 공동체의 해체를 앞당기고 이미 그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민주화 이후 '87체제'의 변화가 담론으로 제시되었지만 이는 단순한 권력구조의 개편이나 제도 차원의 변혁에 그쳐서는 안 된다. 하기야 87체제를 돌아보는 지성과 담론도 사라진지 오래이긴 하다. 각 집단과 정치세력이 이익을 방어하고 생활공간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의 일상화가 현재의 삶의 모습들이다. 한국사회의 여러 부정적인 조짐들이 한국만의 고유한 문제라고만 할 수 없다는 반론도 있지만, 출산율, 자살률, 공직자들의 도덕적 해이 등을 단순히 세계 공통의 문제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부안=연합뉴스) 최영수 기자 =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 참가한 영국 대원들이 전북 부안군 야영장에서 철수를 위해 짐을 옮기고 있다. 2023.8.6

정치사회학자인 헬드의 표현을 빈다면 '국가와 사회의 이중의 민주화(double democratization)'가 요청되고 있다. 헬드는 국가권력의 개혁과 시민사회의 재구조화를 강조하고 있다. 민주주의이론과 이데올로기의 존재도 생활 속에서 '실천'으로 구현되지 못한다면 아무런 유용성도 갖지 못한다.

정치와 정당의 비정상적 권력탐닉만을 탓해서 될 일도 아니고, 모든 분야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역시 '정치'의 문제로 환원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정당은 시민사회에 침투하여 이해갈등을 조직화하기보다는 이들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시민사회를 분할시켜왔다. 시민사회의 분할은 각종 폭력적 사건을 야기한다. 정치와 정당의 위기를 방치한다면 이는 고스란히 사회의 위기로 이어진다. 특권적 사회관계와 사회의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십의 부재 등은 당장의 문제를 미래에까지 연장시키는 중요한 기제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지식인들의 실천이 사회변화의 기폭제가 될 수 있지만 그러한 분위기와 동력이 상실된 지 오래다. 지식사회는 오히려 정치권력에 동화되기를 바라고 각 진영으로 포획되곤 한다. 정치가 개인과 집단의 대치를 완화시키고 사회적 연대를 복원하지 못한다면 정치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박근혜 탄핵 이후 벌어진 진영 대치의 심화는 정권이 바뀌고 완화되기커녕 문재인, 윤석열 정부를 거치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리고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랜드 플랜과 대통합을 제시할 만한 리더십과 원로의 실종은 한국사회에 커다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특성이 유난히도 명징하게 관철되는 한국사회의 정글의 폭력성은 도처에서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국가의 폭력성이 문제됐던 권위주의 시대 못지않게 자본과 권력, 시민사회 내의 폭력성도 시민들을 위협하고 있다.

진영과 정권, 여야의 구분도 사회가 온존할 때 의미가 있다. 지속가능한 사회의 작동원리가 무너질 때 공동체 논리가 깨지고 이는 모두의 패배로 이어진다. 정치가 재구성되지 않으면 숨가쁘게 달려온 노력과 업적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절박한 시대인식과 문제의식을 갖는 정치인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도 정치판은 정쟁의 도가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정치사회적, 경제적 낡고 당연시되는 관행들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대내외적인 위기가 빨리 도래할 수 있다. 민주주의도, 정치도, 사회도 위기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