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극한 기후 시대 가야 할 길과 정반대로 향하고 있다

[시민건강논평] 기후위기TF 구성했다고 하지만…

최근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사건 사고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각각의 사건들의 심층적, 구조적 원인을 살피고, 시간을 들여 숙의하는 과정을 가지기도 전에 또 다른 커다란 사건으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그중 하나가 기후위기의 문제다.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목숨을 잃게 된 사건들을 보면서, 또 피부로 폭우와 폭염을 체감하면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 역시 작년 폭우 때, 기상이변이 더는 이변이 아니라 했고, 올해도 기상이변은 일상화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은 뜯어고쳐야 한다고 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후에 경각심을 가지고, 그로 인한 희생이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문제는 이것이 정치적 레토릭에 그치는 것이다. 대통령에서부터 현장의 재난 담당 공무원, 군인에 이르기까지 권력/권한과 책임이 반비례하는 형국 아닌가(기후위기 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을 가로지르는 문제기도 하다). 회의 자리에서 당위를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 꼬리 자르기식 담당자 문책을 넘어 구조적 원인을 파악하고 그에 걸맞은 제도와 정치를 만들어 갈 책임이 있다. 각종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유가족들이 스스로를 추스르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때 협의체를 만드는 것은 국가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기후변화가 미치는 파급효과와 대응 활동 전반을 고려했을 때, 재난이 발생할 때만 이상기후에 대한 행정적 대비, 신속한 구조, 피해 지원을 강조하는 것은 상당히 협소한 시각이기도 하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것은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다.

최근 극한 기후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노동자 온열질환을 대비해 이런저런 규정이 있다고 하지만, 그러한 규정을 적용받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 전혀 충분하지 않다. 평상시에도 경제적 효율성의 압박 속에 안전은 뒷전이 되는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인데, 기후에 따른 위험에만 안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리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주거정책도 기후위기 대응과는 동떨어져 있다. 극한 환경에 노출되지 않고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주거정책이 절실하지만, 기껏해야 쪽방촌에 쿨링포그와 무더위 쉼터를 설치하는 정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작년에 침수로 반지하 주택에서 일가족이 목숨을 잃었던 사건 이후, 서울시는 반지하 주택을 없애겠다 했지만, 침수위험 반지하 가구 중 8%, 전체 반지하 가구 대비 0.95%만이 지원을 받아 이사를 갔다. 아직 많은 사람이 여전히 비가 오면 불안한 환경에 놓여 있다.

현재 기후위기로 인한 고통이 주로 자기 노동을 통제하기 힘든 노동자나 자원을 박탈당한 사람들에게 집중된다면, 필요한 것은 그 고통이 집중되는 곳에 대한 개입이다. 현장 노동자가 실질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를 조성하고, 모든 사람에게 재난에 대비하고 대처할 수 있는 자원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정확하게 그 반대로 가고 있다. 노동자 안전을 위한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하기 위해 안달이 나 있고, 노조 탄압을 통해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한 목소리를 짓밟고 있다. 최근 실업급여와 관련한 논란이나 최저임금 결정 과정과 인상 규모를 보면 자원이 부족한 사람들은 기후위기 시대에 더욱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

식량 부족이나 생태계 파괴 등 기후변화로 인한 결과를 완화하고 대처하는 기후위기 '적응' 활동 중에서도 개선할 것이 한가득하지만, 기후위기 자체에 대한 '완화' 활동 및 전략도 빼놓을 수 없다. 당장 눈앞에 닥친 재난 피해에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 할지 모르겠으나, 정부는 이번 참사와 지금의 기후위기를 야기하는 인간 활동과의 연관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다. 이번 참사는 재난 대비와 대응에서 보인 무능력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지만, 기후위기를 심화시키는 근본 요인에 대한 정책적 접근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큼 무관심하다. '기후위기 대응 범정부 TF'를 구성한다는 발표에서도 기후위기 '완화' 활동에 대한 언급은 없다. UN 사무총장이 '지구 온난화의 시대'는 끝나고 '끓는 지구(global boiling)의 시대'가 왔다며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당장 행동할 것을 촉구한 것이나 해수 순환 붕괴로 기후 시스템을 되돌릴 수 없는 시점이 곧 다가올 수 있다는 과학계의 급박한 경고는 무시하는 셈이다.

기후위기로 인한 고통이 갈수록 커지는 상항에서 우리 사회의 생산과 소비 활동을 지금처럼 해서는 파국을 피하지 못할 형편이다. 기후위기 완화와 적응을 중심에 두고 사회 모든 영역의 변혁이 필요하다. 기후위기 문제의 특성상 국민국가 단위의 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이지만, 그것이 국가가 해야 하는 역할을 하지 않고 손 놓고 있을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제도를 통해 기후위기를 완화할 수 있도록 인간 활동을 규제하고 지원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국가의 중요한 책임이다. 그리고 국가가 제 역할을 다하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중요한 책임이다. 특히 국가가 제 역할을 하기는커녕 정반대로 향하고 있는 요즘, 현실의 불평등과 부정의를 기후위기를 통해 해석하고 더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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