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년 전과 다르지 않는 남과 북, 또다시 100만 명의 죽음을 원하나

[기자의 눈] 달라지지 않은 한반도,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6.25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7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전쟁을 끝내지 않는 남북은 각자 자국의 편에서 전쟁을 벌였던 국가들과 70년 전의 전투만을 기억하고 있다. 6.25 전쟁이 한반도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어떤 고통과 피해를 입혔는지, 이 전쟁을 어떻게 끝내고 평화를 가져올지는 생각하지 않은 채 상대를 향한 적대감만 높이고 있는 모습이다.

북한은 2020년 2월 코로나-19 바이러스 창궐 이후 처음으로 해외 인사들을 초청해 스스로 '전승절'이라고 부르는 정전협정체결일 행사를 거창하게 열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집권 이후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면담을 가졌을뿐만 아니라 '무장장비전시회-2023' 행사장 방문, 기념공연 관람 등을 함께했다. 이와 함께 27일 저녁에 열린 열병식에서는 쇼이구 국방장관과 주석단에 나란히 서서 북러 밀착 관계를 대내외에 과시했다.

북한에서 이러한 행사를 하는 동안 전쟁을 어떻게 끝낼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과 무인기 등의 무기를 보여주는 열병식을 통해 전쟁의식을 고취하는 데 열을 올렸다. 6.25전쟁의 상흔을 넘어선 한반도 평화구축보다는, 현재의 국제정세를 활용해 정권 안보를 지키겠다는 목적에서 이뤄진 측면이 크다고 볼 수밖에 없는 행사였다.

▲ 28일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27일 평양에서 열병식이 열렸다고 보도했다. 김정은(가운데) 북한 국무위원장은 세르게이 쇼이구(왼쪽) 러시아 국방장관과 주석단에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그렇다면 또 다른 전쟁 당사국인 남한은 어떨까? 정전협정 체결일인 27일 부산 우동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유엔군 참전의날 및 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여러분의 희생과 헌신으로 공산 전체주의 세력으로부터 자유를 지켜낼 수 있었다"며 북한과 마찬가지로 당시 전투만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평화에 대한 배제는 지난 6월 26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69주년 기념식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반국가 세력들은 북한 공산집단에 대해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부르고 다녔다"고 말했다.

전쟁을 끝내고 평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람들을 '반국가 세력'이라고 규정하는 냉전적이고 대결적인 인식을 드러낸 셈인데, 이 발언 역시 북한이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난 전쟁에 대한 성찰보다는 지지층을 다지기 위한 '정권 안보' 목적이 커 보인다.

▲ 6·25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해운대구 부산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에서 진행된 유엔군 참전의날·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조성된 대결적 국제정세, 상대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 없이 자신들의 안위를 최우선시하는 남북 양 정권의 모습은 73년 전 6.25 전쟁이 벌어졌던 그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국제정세와 남북 정권의 행보가 당시와 정도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상황과 그에 따른 인식은 70년 전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유사하다.

문제는 당시 전쟁으로 가는 과정과 전쟁 발발에 대한 반성 없이 대결적 인식 하에 70년 전 '전투'만을 기억한다면 이는 상대를 정복해야 한다는 의지를 부추기게 되고, 결국 물리적 충돌인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는 데 있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6.25 전쟁 당시 사망한 군인은 국군은 약 13만 명, 유엔군은 3만 7000여 명, 북한군은 약 50만 명, 중공군은 약 15만 명 등 80만 명에 이른다. 민간인 역시 약 25만 명이 사망했으며 학살이나 행방불명, 납치를 당한 사람은 50만 명에 육박한다. 피난길에 오른 사람은 600만 명에 달했다.

한반도에 다시 한 번 전쟁이 일어난다면 이 수치는 다시 쓰여질 가능성이 높다. 재래식 무기가 주로 사용됐던 당시와는 달리 북한의 핵과 미사일, 미국의 핵무기가 한반도에 투입된다면 북한 정권뿐만 아니라 사실상 한반도의 종말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정전협정체결일을 계기로 무엇을 기억할 것인지는 곧 한반도의 미래가 어떻게 쓰일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나 다름없다. 남북의 정권이 자신들의 안보를 위해 70년 전의 전투가 위대했다는 것만 기억하려 한다면 한반도의 미래는 곧 제2의 '6.25 전쟁'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렇다고 전쟁의 책임과 그 과정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전쟁의 과정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이고 남북이 각자가 지향하는 가치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반도의 공멸을 막기 위해서는 3년 동안이나 서로를 죽이면서 무고한 목숨을 앗아갔던 전쟁의 어두운 면도 반드시 같이 기억되어야 한다. 남북 정권의 안보가 아닌, 한반도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안보를 위해 아픈 기억을 붙잡고 이 전쟁을 어떻게 평화적으로 마무리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핵과 전쟁에 짓눌린 한반도를 조금이나마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하고 빠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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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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