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3분의2는 핵무장 찬성? 핵 보유로 인한 위기 제시하면 3분의2 반대

통일연구원, 2023 통일의식조사…"한국인 핵무장 욕구에 대한 논의, 근본적 차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국 국민 다수는 핵 보유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핵 보유로 경제제재 등의 위기가 발생한다는 조건이 붙을 경우 이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핵 보유를 둘러싼 대국민 여론 수집 및 논의를 기본부터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5일 통일연구원은 '한국의 핵개발에 대한 여론'을 주제로 한 2023년 통일의식조사(연구책임자 이상신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공동연구자 민태은 연구위원, 윤광일 숙명여대 교수, 구본상 충북대 교수)를 발표했다. 지난 4월 15일부터 5월 10일까지 전국 거주 만 18세 이상 성인 10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조사에서, 연구원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남한도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응답자의 60.2%가 '찬성한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같은 조사 결과를 두고 국민 다수가 핵 보유에 대해 무조건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우선 핵무기 보유 찬성 여론이 60%에 달하고 있지만 이는 이전보다 감소한 수치였다. 

연구원은 2014년부터 핵무기 보유 여부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당시 50.5%의 찬성 응답이 나온 이후 매년 60% 중반대로 그 비율이 높아졌다가 2021년 10월 찬성 71.3%로 최고치를 찍었다. 그러다 2022년 69%로 주춤하더니 올해 60% 초반대로 집계됐다. 

연구원은 "최근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다는 여러 언론보도가 있었다. 시카고 국제문제협의회(71.0%), 아산정책연구원(70.2%), 샌드연구소(74.9%),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55.5%), 통일과나눔재단(68.1%), 최종현학술원(76.6%) 등의 조사에서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을 지지하는 여론의 비율이 70%가 넘거나 근접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그런데 핵 보유 필요성에 대한 여론은 언론보도와 달리 상당한 폭으로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연구원은 "2021년에서 2023년 사이에 북한의 미사일 도발 등이 오히려 빈번해지고 대중국 관계가 악화되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핵 보유 필요성 하락은 국내정치적 요인 및 자체적 핵 보유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장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것 등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풀이했다.

이와 함께 미국의 핵을 남한에 재배치할 것을 요구하는 여론도 2021년 이후로 하락했다. 조사에 따르면 2021년 재배치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61.8%로 집계됐으나 2022년 60.4% 떨어진 이후 올해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3.6%만이 찬성한다는 답을 내놨다.

전반적으로 핵 보유에 대한 찬성 여론이 주춤한 가운데, 핵을 개발할 경우 맞닥뜨리게 될 위험 요소들을 언급하고 그럼에도 핵을 보유해야 하느냐고 묻자 응답자의 3분의 2 이상은 핵 보유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선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로 인한 경제위기가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응답자의 75.3%가 동의한다고 답했다. 또 그럼에도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는 응답은 36.8%로 집계돼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63.2%)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핵무기 개발로 인해 생기는 다른 문제점과 관련해서도 유사한 경향이 발견됐다. 한국의 핵무기 개발로 한미동맹이 파기되고 주한미군이 철수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응답자의 62.8%가 동의했으며, 그럼에도 핵무기를 개발해야 하냐는 질문에 62.8%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한국의 핵무기가 북한과 중국을 자극하여 한반도 전쟁위험이 더 커질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응답자의 70%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주장에는 68.6%가, 환경파괴가 벌어질 것이라는 주장에는 79.1%가, 평화를 지향하는 이미지 손상에는 72.2%가 각각 동의한다고 답했다. 또 각각의 위기가 있음에도 핵을 개발해야 하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0% 이상은 개발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연구원은 "여섯 가지의 위기 가능성을 제시하고, 그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보유가 필요할지를 물었을 때 핵개발을 계속 주장하는 여론은 극적으로 줄어든다. 각 항목 모두 핵개발에 동의하는 비율은 36%에서 37%에 그친다"라며 "이는 핵 보유 찬성여론이 70%를 넘는다는 다른 연구기관의 조사결과와 매우 대조적인 내용"이라고 전했다.

연구원은 "이 조사결과의 함의는 지금까지 한국인의 핵무장 욕구에 대한 많은 여론조사와 논의들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들은 "끊임없는 북한의 핵위협과 점증하는 동북아시아의 미중갈등, 그리고 트럼프 전 미국대통령의 한미동맹 파기 위협에서 촉발된 '방기에 대한 공포'(fear of abandonment) 등을 고려하면 한국의 대중이 더 확실한 안보를 원하는 심리는 자연스러운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한국인들은 핵보다는 동맹과 외교적 수단 등을 통해 안보를 확고히 하는 것을 더 선호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이밖에 "미국의 핵우산 정책이 한국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은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 얼마나 동의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52.2%가 동의한다고 밝혀 핵 보유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물을 때와는 반대되는 경향의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이같은 결과를 두고 연구원은 "한국의 핵보유에 대한 여론은 국제 정세 및 국내정치 구도의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 지난 1월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2023년도 외교부-국방부 업무보고를 받은 윤석열 대통령. 그는 이 자리에서 자체 핵무장 가능성에 대해 "만약 그렇게 된다면 오랜 시간이 안 걸려서 우리 과학 기술로 앞으로 더 빠른 시일 내에, 우리도 (핵무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연합뉴스

한편 연구원은 "선거에서 후보나 정당이 한국의 독자적 핵무기를 개발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다면, 이 후보나 정당에 투표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33.7%가 이 후보나 정당에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는 답을 내놨다고 밝혔다. 투표한다는 응답은 17.7%에 그쳤으며 중요한 기준이 아니라는 응답은 48.7%에 달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자의 경우 투표한다가 15.3%, 투표하지 않는다가 39%, 중요한 기준이 아니라는 응답이 45.8%로 집계됐으나 국민의힘 지지자의 경우 투표한다는 응답이 29.4%로 조사됐다.

연구원은 "다른 후보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독자적 핵무기 보유를 주장한 후보들에 의해 한국의 핵 개발 논의가 주도되어 왔다"며 "이번 조사 결과는 핵무기 개발 공약이 선거에서 중요한 의제가 되지 못할 것임을 시사한다"고 진단했다.

연구원은 "국민의힘 지지층에선 29.4%가 핵개발 공약을 내세운 후보와 정당을 선호한 반면 지지하지 않겠다는 답변은 25.3%에 그쳤다"라며 "양극화된 한국 국내정치의 구도 및 정당공천 제도 때문에 정치인이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정당 내부의 지지를 먼저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며, 따라서 보수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정치인들의 핵개발 공약 경쟁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연구원은 "핵무기 개발을 약속한 정당과 후보자에게 투표하겠다는 답이 가장 높은 것은 산업화세대(1951년~1960년 출생자)로, 26.9%가 투표하겠다고 응답했다. 반면 IMF세대(1981년~1990년)에서는 이 비율이 6.6%로 가장 낮아서 뚜렷한 세대별 차이가 관찰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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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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