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당당히' 세계적 추세 역행하고 있다

[시민건강논평] 오염수 방류 저지를 넘어 탈핵-탈성장으로

과학의 핵심은 의심하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둘러싼 안전성 논쟁이 뜨겁다. 이번에도 안전성을 우려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근거 없는 '괴담' 프레임으로 덮으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정치와 과학을 가치편향(주관)과 중립(객관)의 이분법 구도로 인식하는 경향에 기댄 채 말이다.

가치로부터 자유로운 과학이라는 착각은 위험하다. 가정부터 결론까지 모든 과학적 탐구 과정에 가치가 스며든다. 이미 많은 지적이 제기된 것처럼, 여러 제한적 가정의 토대에서 이뤄진 오염수 해양 확산 시뮬레이션 결과는 그 자체로 불완전하다.

특히 분석에 활용된 데이터의 수집, 선별 과정에서 일본 정부의 관점이 개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과학의 핵심 중 하나가 '의심하기'라고 생각한다. 이해당사국으로부터 막대한 분담금을 받고 있는 국제원자력기구의 공정성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야말로 비과학적 발상 아닌가? 우리는 무엇이 진짜 '과학적' 판단인지 의심해야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현재 시점에서 오염수 방류의 보건학적 피해를 정확히 예측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수많은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상호작용하는 '개방체계'를 분석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먹이사슬에 따른 방사성 물질의 축적과 장기간 누적 효과 등 모르는 것 투성이다.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요인들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과학적 근거가 불확실한 상황일수록,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정 수준 이하의 피폭은 건강에 무해하다는 허용치 가설은 대체로 틀린 것으로 판명나지 않았나. 즉, 저선량이라 할지라도 피폭량이 증가할수록 건강 위험은 비례해서 커지기 마련이다. '사전예방의 원칙'에 따라, 아무리 낮은 확률이라 할지라도 건강을 위협하는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것이 타당하다. 우리는 건강권의 일환으로서 탈피폭의 권리 보장을 요구해야 한다.

'과학적 엄밀성'의 위험

한데 왜 현실에서는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검증'되면 방류를 허용해도 된다는 생각이 상식적인 견해로 통용되고 있을까? 해양 방류는 오염수 처리의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다. 수증기 증발이나 지하 매설, 지층 주입 등 다른 대안들도 존재한다. 지하수 오염이나 대기 오염이 우려된다면, 한국과 일본 시민사회에서 한 목소리로 요구하는 바와 같이, 지금처럼 대형탱크를 더 확보해 장기 보관하는 방법이 가장 안전하고 건강친화적인 대안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해양 방류를 선택했다. 안전보다 경제적 가치를 우선한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비용-편익 계산에 기초한 정치적 결정이라고 본다면,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과학적 엄밀성' 담론이 동원되는 측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이에 대해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과학성의 기준을 엄밀하게 하면 할수록 위험하다고 판정되어 과학의 대상으로 되는 위험은 정말로 얼마 안 되게 되며, 결과적으로 암암리에 '위험 증대 허가서'를 주게 된다. 과학성을 엄밀하게 함으로써 생명의 위험은 용인되거나 조장된다. 엄밀한 과학성과 생명의 위험은 은밀한 연대 관계에 놓여 있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먹거리 불안에 그치지 않고, 원전의 위험성과 함께 탈핵의 필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핵 발전을 둘러싸고 서로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는 관-산-학-언 복합체로서는 오염수 방류의 위험성을 가급적 축소하려는 동기를 가질 것이다. 엄격한 과학적 잣대를 들이밀수록 오염수 방류와 건강피해의 (확률적·통계적) 인과관계는 부정될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들 복합체가 어떤 과학적 지식을 체계적으로 (비)생산, 유포하는지 감시하는 '비판적 시민과학'이다.

위험을 '외부화'하는 핵 발전 시스템

한편 우리는 방류 결정을 경제성(또는 편의성)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고 생각한다. 비용이 저렴한 까닭은 그만큼 비용을 바다라는 외부로 전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외부화'는 원전 사고에 국한되는 예외적 사례가 아니다. 1993년 국제적으로 금지되기 전까지 고준위 핵폐기물이 해양에 배출되었고, 저준위 핵폐기물의 경우 지금도 바다에 흘려보내지고 있다. 해양 투기에 있어서는 대부분의 원전 국가들이 사실상 공모관계인 셈이다.

위험의 외부화는 핵 발전 시스템을 지속시키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이번 오염수 방류 사태가 시사해 주듯이, 우리는 결국 언젠가 이 외부화된 비용의 최종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방사성 위험물질이 돌고 돌아 우리 몸과 만나게 될 것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말자.

우리가 외면하지 말아야 또 다른 중요한 진실. 바로 이 외부화 메커니즘이 만들어내는 구조적 차별과 불평등의 문제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핵 발전이 생산하는 위험의 비용은 특정 공간과 시간, 계층에 전가되는 방식으로 처리되고 있다.

공간적 전가는 발전소의 지리적 위치와 인근지역 주민의 높은 암 발병률에서 잘 드러난다. 사고와 피폭 위험이 큰 핵폐기장을 기존 발전소 부지 내 건설하겠다는 정부 계획은 지역에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수도권 종속화 문제와 떼어놓고 이해하기 어렵다.

방사성 물질의 긴 반감기를 생각할 때 미래 세대로의 위험 전가 또한 심각한 문제다. 발전소 종사자 가운데 비정규 하청 노동자의 피폭 위험이 더 크다는 사실은 계층적 불평등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재일 한국인 작가 유미리가 증언했듯이, 많은 홈리스들이 위험천만한 후쿠시마 오염 제거 작업에 투입되기도 하였다.

이렇듯 우리는 오염수 방류 위험으로부터 핵 발전이 가진 위험의 외부화 문제와 여기에 내포된 반생명적이고 반인권적이며 반윤리적인 속성을 읽어낼 필요가 있다. 비가시적 존재들의 고통에 책임지지 않는 부정의한 핵 발전 시스템을 해체할 필요성과 정당성을 확인하고 이를 정치적 실천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탈핵은 탈성장을 필요로 한다 

물론 현실은 암담하다. '원전강국 건설'을 기치로 내세운 정부는 원전산업 확대 정책에 여념이 없다.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원자력발전 비중을 대폭 늘리겠다고 밝혔고, 'RE100' 대신에 원자력 에너지를 포함하는 'CF100' 띄우기에 나서며 '당당히'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중이다.

탈핵에 대한 사회적 지지가 약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탈핵에 맞서 부정적 여론을 조성하고 확산하는 원자력복합체의 치밀하고 광범위한 개입, 그리고 세계 에너지 가격 상승 등의 경제 위기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경제성장 패러다임과 단호히 결별하지 못한 데에서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장 패러다임은 우리를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존재로 길들인다. 핵 발전 시스템은 풍요로운 에너지 공급의 대가로 모든 희생과 심지어 인류 절멸의 위험 가능성까지도 감수하도록 요구한다. 동시에 핵 발전 기술은 경제성장에 필요한 거대 에너지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고 나아가 '대량생산-소비-폐기'의 자본주의 체제가 봉착한 한계를 감추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고 있다.

핵 발전과 성장 패러다임은 상호의존 관계로 묶여 있다. 성장지상주의를 극복하지 않는 한 '핵 안전 불감증'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울리히 벡은 세계화된 위험생산체제로부터 세계시민적 유대의 출현을 기대했다. 후쿠시마 원전 방사성 오염수 방류는 세계화된 위험의 한 양상이다. 하지만 성장에 중독된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러한 위험을 제대로 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보편적 위기 앞에서 스스로 안전하다고 기만하며 애써 불안을 잠재우는 것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는 아닐 것이다. 우선 '발전(發電)'에 의한 성장만이 '발전(發展)'이라는 신화에서 벗어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자. 핵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발전(發展)이라는 인식의 공감대를 넓히는 여정에서 탈핵으로 가는 에너지 패러다임의 전환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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