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내 수몰 위기 직면한 투발루, 땅이 없으면 만든다

[사라질 위기 놓인 투발루] ② 위기 극복위해 자구책 마련하는 투발루 사람들

"투발루에서 우리는 기후변화와 해수면 상승이라는 현실 속에 수몰되고 있다. 바닷물이 차오르는 상황에서 말뿐인 약속을 기다리고 있을 여유가 없다"

지난 2021년 사이먼 코페 투발루 외무장관은 무릎까지 물이 차오른 바다에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연설을 진행했다. 한 때는 육지였다가 바다로 변한 수중에서의 이 연설은 전 세계적으로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지난 3월 31일 한국에 방문한 코페 장관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만났다. 그는 당시 연설이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조수 간만의 차로 연설 장소가 물에 잠기게 됐다는 건데, 해수면 자체가 과거보다 높아지다 보니 조수 간만의 차로 침수되는 범위가 예전보다 넓어지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한 셈이다.

"우리가 연설 장소에 도착해서 준비할 때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었다. 연설을 위해 (깃발 등을) 설치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는데, 계획의 일부가 아니었지만 해수면이 상승했고 이미 무릎이 잠길 정도로 물이 차올랐다"

▲ 사이먼 코페 투발루 외무장관이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연설한 장소. 지금은 바다지만 이전에는 육지로 모두 연결돼 있었다. ⓒ외교부 공동취재단(=투발루)

COP 26에서 수중 연설로 투발루의 현실을 알린 코페 장관은 COP 27 회의에서는 또 다른 시도를 통해 투발루의 미래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디지털 섬을 배경으로 메타버스 안에서 연설을 진행했는데, 이것이 "디지털 국가" 아이디어의 시작이었다고 밝혔다.

투발루는 매년 4mm 씩 높아지는 해수면으로 인해 영토가 점점 수몰되고 있다. 투발루 인근에 위치한 키리바시 역시 이러한 현실에 직면해 있는데, 대체 영토를 구입하려는 키리바시와는 달리 투발루는 '디지털 국가' 라는 구상을 내놨다.

이는 설사 기후 변화로 인해 물리적 영토가 사라지더라도 메타버스 등 디지털 공간에서 투발루라는 국가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투발루가 국가로서의 권리를 지키고 국제적 공인을 받으면서 국가를 영구히 존속시키겠다는 생각이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50년에서 100년 안에 우리의 섬들이 완전히 물에 잠길 수 있다는데, 우리는 그런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 그래서 비록 우리가 미래에 물리적 영토를 잃더라도, 우리 수역과 자산에 대한 우리의 권리를 계속해서 국가로서 인정받기 위해 어떻게 디지털 국가를 만들 수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디지털 국가는 국민들이 분산되어 있더라도 국가가 계속해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틀이다.

사실 한국에 온 이유 중 하나는 이곳에 있는 한국의 기업들과 (디지털 국가에 대해) 상의하기 위해서다. 한국이 ICT 분야에서 앞서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에 SK와 마블러스라는 메타버스 회사와 만났다. 한국에서 가지고 있는 기술을 활용하여 디지털 국가 조성을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 사이먼 코페 투발루 외무장관이 3월 31일 외교부 청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외교부

실제 SK는 코페 장관과 만남에 대해 "지구 온난화, 해수면 상승 등의 이슈로 투발루 영토의 일부가 가라앉고 있으며, 이를 대비하고자 투발루 정부는 메타버스 가상국가 프로젝트를 (Digital Twin City) 한국의 메타버스 기술 기업 (마블러스)과 추진 중에 있다"고 밝혔다.

SK는 "혹여 투발루가 가라앉는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투발루 고유의 문화와 가치를 디지털 가상국가를 통해 영구 존속시키고자 하기 위한 것"이라며 "SK도 메타버스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기에 (SK텔레콤), 해당 프로젝트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을지 의견을 청취하고자 면담을 진행했다"고 전했다.

다만 코페 장관은 디지털 국가에 대해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기 위한 시나리오다. 우리는 각 국가들이 더 큰 책임을 지고 온실 가스 배출을 줄일 것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계속 원하는 것"이라며 현실 속에서의 영토 보존을 포기한 것은 아님을 분명히 했다.

땅을 만드는 사람들

기후 변화를 막아 해수면 상승을 억제하는 것이 투발루의 영토를 지키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이는 투발루 혼자서만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투발루가 아닌 선진국이나 다른 개발도상국들의 협조가 없다면 사실상 불가능한 과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투발루에는 기후 변화 방지와 같은 장기적인 목표와 함께, 단기적 대책으로 땅을 새로 만들어 내려는 시도도 진행되고 있다. 유엔 개발계획(UNDP, 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 주관 하에 투발루에서 '투발루 해안 정비 프로젝트'(Tuvalu Coastal Adaptation Project)가 실시되고 있는데, 4월 28일(현지시각) 투발루 현지에서 프로젝트 담당자들을 만나 현재 상황을 들어봤다.

▲ 유엔개발계획(UNDP)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투발루 해안 정비 프로젝트 담당자들. 왼쪽부터 필립 호스 사회 및 환경 안전 컨설턴트, 알란 레스쳐 프로젝트 매니저, 제임스 루이스 해안 엔지니어. ⓒ외교부 공동취재단(=투발루)

이들은 UNDP 주관으로 투발루 해안선 정비를 통해 땅의 높이를 높이고 면적을 넓히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종의 간척 사업인데, 바다를 메우기 위한 모래는 투발루 내에 있는 석호(라군, Lagoon)에서 퍼올리고 있었다.

사업 예산은 3800만 달러로 7년의 기간을 두고 시행될 예정인데, 지난해 11월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됐고 모래를 끌어올리는 펌프는 지난 3월에 설치됐다. 프로젝트 팀은 석호 바닥에 있는 모래를 퍼내기 위한 준설선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는 제임스 루이스 해안사업 엔지니어는 "이 프로젝트는 투발루를 국가로 유지하기 위해 땅을 만드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며 "길이가 약 750미터, 너비가 100미터인 곳의 면적이 (사업을 통해) 300헥타르가 되는데 이는 모든 투발루 사람들이 바다 위에 있을 수 있는 충분한 땅"이라고 설명했다.

필립 호스 UNDP 컨설턴트는 현재 투발루 해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정비 사업에 대해 "그곳이 투발루에서 가장 높은 땅, 가장 안전한 곳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투발루에서 UNDP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해안선 정비 사업. ⓒUNDP

이들은 이같은 간척사업이 투발루를 지키는 다른 어떤 방법보다 저렴하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호스 컨설턴트는 "투발루 사람들이 다른 나라로 옮겨가는 것보다 이게 더 저렴한 해결책"이라며 미국과 일본, 유럽, 한국 등 선진국들로부터 더 많은 자금이 투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루이스 엔지니어 역시 이같은 간척은 "검증된 해결 방법"이라며 "우리는 이 작업의 속도를 낼 수 있다. 문제는 자금"이라고 말했다.

알란 레스처 프로젝트 매니저는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킹타이드(King tide‧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큰 경우) 때도 땅이 젖지 않을 것이라면서, 준설선을 구매하고 모래를 퍼올리기 위해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호스 컨설턴트는 "(기후 변화는) 산업활동이 만들어 낸 문제"라면서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적" 방식의 해법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여기에 부합하는 사례로 해안선 정비 프로젝트를 꼽았다.

기후 변화, 투발루 국민들의 건강에도 위협적

UNDP가 간척 사업을 통해 투발루의 면적을 넓히면 국가가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는 있지만, 그 땅에서 농사를 짓고 작물을 수확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투발루가 땅 자체가 좁기도 하지만 토양에도 염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취재진을 안내했던 투발루 현지 주민인 도비(Faitofi Pusinelli) 씨는 기후 변화가 투발루에 가져온 또 다른 주요한 위기로 '식량 안보'를 꼽았다.

"잦은 폭풍과 해일의 결과로 풀라카(Pulaka, 토란과 유사한 작물. 투발루 사람들에게 주요한 탄수화물 공급원) 재배를 위한 구덩이가 물에 잠겼다. 또 토양의 염분 농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풀라카 재배가 정말 어렵다. 풀라카는 예전에 우리나라의 사람들에게 안정적인 음식이었다"

이런 이유로 투발루에는 신선한 채소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투발루의 편의점이나 상점에서 주로 볼 수 있는 품목은 오랜 기간 지속해서 보관할 수 있는 통조림이다. 어렸을 때부터 주로 통조림과 냉동 음식 등을 섭취하다 보니 비만이 많고 고혈압 등의 질병을 보유한 주민들도 다수 있다.

그런 와중에 채소를 재배하고 이를 유통시키기 위한 노력은 작게나마 계속되고 있다. 투발루 푸나푸티 국제공항 활주로 옆에는 투발루의 수교 국가인 대만의 국제협력 개발기금(ICDF, The International Cooperation and Development Fund)에서 주관하는 농장 정원이 있는데, 여기에서 투발루 사람들은 시장가보다 저렴하게 채소를 구매할 수 있다.

▲ 푸나푸티의 'Happy friendship garden'(행복한 우정의 정원)에서 주민들이 구매할 채소를 고르고 있다. ⓒ외교부 공동취재단(=투발루)

이 프로젝트의 공식 이름은 '과일과 채소 생산 증산 및 영양 향상 프로젝트'로, 푸나푸티에 2곳, 또 다른 섬인 바이타푸(Vaitupu) 섬 1곳 등 총 3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프로젝트는 2004년에 시작됐는데, 2024년까지 푸나푸티 섬 채소 수요의 70%까지 공급하는 것이 목표다.

4월 29일(현지시각) 이른 새벽, 푸나푸티의 'Happy friendship garden'(행복한 우정의 정원)의 담당자인 대만 출신의 제임스 첸 씨를 만났다. 그는 이 정원에서 오이, 양배추, 콩 등 10여 종의 채소를 생산하며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 주민들에게 판매한다고 말했다.

첸 씨는 투발루의 환경이 농사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흙과 비료 등은 1년에 한 번씩 대만에서 화물로 운송해 온다고 전했다. 농사를 위해 필요한 기본 요소들을 대만에서 준비하고 투발루에서 묘종을 심어 채소를 재배하는 방식이다.

정원에서 판매하는 채소는 투발루의 다른 상점들에서 판매하는 것보다 약 절반 정도 저렴하다고 한다. 또 상점에서의 채소가 비행기를 통해 들어오는 것과 달리 이 채소는 재배 즉시 판매되기 때문에 신선도는 겉으로만 봐도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였다.

▲ 투발루의 한 슈퍼마켓에서 판매되고 있는 채소 및 과일. 한국의 일반적인 기업형 슈퍼마켓(SSM) 규모의 매장에서 판매되는 채소와 과일은 진열장에 있는 것이 전부다. ⓒ외교부 공동취재단(=투발루)

정원에서 저렴하고 신선한 채소를 판매하기 때문에 이곳을 찾는 주민들이 많다. 빠를 때는 판매 당일 새벽 4시 반부터 주민들이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 놓는다고 한다. 첸 씨는 이날 비바람이 많이 불어 대기 주민이 오전 6시 40분경 30여 명 정도였으나, 날씨가 좋을 때는 100명 이상의 주민이 채소를 사기 위해 기다린다고 말했다.

이날 채소를 구매하기 위해 정원에 들른 셀레타 따우보 씨는 다른 상점보다 정원이 종류도 많고 저렴해서 이른 시간인데도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또 모종을 공짜로 가져갈 수 있어서 실제 양배추 모종을 사다가 키우고 있다고도 했다.

실제 이 정원 프로젝트를 통해 투발루 내에서는 적잖은 채소와 과일 수확이 가능해졌다. ICDF에 따르면 2023년 현재까지 세 정원에서 총 54만 7707개의 채소와 과일 모종을, 139톤의 채소와 과일을 생산했다고 한다.

▲ 행복한 우정의 정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담당자 대만 출신 제임스 첸. ⓒ외교부 공동취재단(=투발루)

이처럼 투발루에는 땅을 만들고 농사를 지으며 당장의 어려움을 극복해 보려는 움직임들이 있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현실로 만드는 이들의 노력은 분명 의미가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이같은 노력이 필요 없어지도록 투발루뿐만 아니라 지구의 모든 구성원들이 기후 변화 방지에 힘쓰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투발루 정부가 디지털 국가를 만들지 않고, UNDP가 더 이상 간척 사업에 많은 돈을 사용하지 않으며, 대만이 농사지을 흙을 투발루에 보내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투발루가 수몰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투발루와 지구 모두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급속한 산업화를 통해 세계 경제 10위권으로 도약한 한국은 그 성과만을 평가할 것이 아니라, 그에 걸맞은 책임도 무겁게 떠안으며 기후 변화 방지에 힘써야 한다. 이는 투발루의 생존만이 아닌 한국을 포함한 지구 전체의 지속가능한 내일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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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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