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태평양 섬나라들과 공동 대응 가능할까

태평양 도서국 포럼 사무총장 "안전성 납득 전까지 방류 않겠다는 기시다 총리 신뢰"

후쿠시마 핵 발전소 오염수 배출이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한국과 마찬가지로 태평양에 위치한 섬 국가들도 오염수의 안전성이 확실히 보장되지 않는 한 방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다만 이들 국가들이 일본과 협력을 중시하고 있어 한국과 공동으로 오염수 방류에 대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4월 26일(현지시각) 피지 수도 수바에 위치한 태평양 도서국 포럼(Pacific Islands Forum·PIF) 사무국에서 취재진과 만난 헨리 푸나(Henry Puna) PIF 사무총장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의 안전성이 완벽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바다에 방류되면 안 된다는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푸나 총장은 "2021년 4월 일본의 방류 계획 발표 이후, 해양 방류의 안전성에 대해 일본과 지속적으로 연계해 왔다"며 "올해 PIF 의장인 쿡제도의 총리와 함께 일본을 방문하여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만났는데, 기시다 총리는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방류가 안전하며 해양을 오염시키지 않는다고 납득할 때까지 방류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우리는 이에 대해 폭넓게 협의해야 하며 우리가 임명한 전문가패널도 과학적인 문제에 대해 우리에게 자문을 제공해야 한다"며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절차는 시작됐고 앞으로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이 과정의 목표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오염수 방류가 안전하다고 상호 간 합의와 이해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푸나 총장은 "태평양 지역은 핵실험장으로 쓰인 역사가 있다. 마셜제도 등 미국이 핵실험을 실시한 일대의 주민들은 암을 비롯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프랑스령 폴리네시아도 프랑스의 핵실험으로 인해 동일한 문제를 겪고 있다"며 "태평양도서국 정상들은 더 이상 해양의 핵 오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해 이 지역이 오염수 배출에 대해 민감할 수밖에 없는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오염수 관련 안전성을 검증하고 있는 과정에 PIF도 참여하고 있냐는 질문에 "IAEA가 PIF측에 협조를 요청해왔으며, 마셜제도의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여 마셜제도 인사를 추천했다"며 "IAEA는 PIF가 임명한 전문가패널 그룹과도 기술적, 과학적 문제에 대해서 협의하고 있다"고 답했다.

푸나 총장은 IAEA 검증단에 포함된 마셜제도 인사에 대해 "기밀유지 의무 때문에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불편한 점이 있긴 하지만 태평양 도서국을 대신하여 마셜제도 인사가 참여하고 있는 것을 평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PIF가 IAEA 모니터링에 대해 모두 동의한다거나 지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안전성 확보에 대한 자체 판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PIF는 오염수의 안전성을 납득하기 전까지 방류하지 않겠다는 기시다 일본 총리의 입장을 신뢰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 4월 G7 환경장관회의에서 일본이 오염수 방류 결정 환영 성명을 내려다가 독일의 반대로 무산된 바가 있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고 있냐는 질문에 푸나 총장은 "일본 방문시 기시다 총리가 한 약속은 정치적 합의로 이를 존중하고자 하며, 해당 사건으로 인해 일본의 진정성에 대해 의문을 갖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 헨리 푸나 PIF 사무총장이 4월 26일(현지시각) 피지 수바에 위치한 PIF 사무국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외교부 공동취재단(피지)

이에 한국과 오염수 방류에 대해 공동행동을 하기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 지난 2월 PIF가 후쿠시마에 시찰을 다녀온 이후 태도가 달라졌다는 증언도 나왔다.

9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장호진 외교부 제1차관은 일본의 오염수 방류와 관련, PIF와 공동 전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이 있냐는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의 질문에 "사실은 저희가 자료 협조하려고 접촉도 해보고 했는데 (PIF 시찰단이) 일본에 다녀온 다음부터 썩 협조가 잘되는 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PIF 국가 정상들이 올해 2월 일본에 시찰 명목으로 방문한 이후로 태도가 바뀌었다. 그 전에는 (오염수 방류에) 굉장히 반대하다가 지금은 입을 다물고 있는데 아마도 자이카(JICA, 일본 국제협력기구)라든가 이런 것을 통한 추가적인 이야기들이 있지 않았을까 예측된다"라고 진단했다.

자이카는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한 경제·사회 협력기구로, 한국의 코이카(KOICA)와 유사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개발도상국과 기술 협력, 무상 자금 지원, 개발협력 등을 통해 해당 국가의 경제 및 사회적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주된 기능인데, 상대적으로 경제적 상황이 열악한 PIF 소속 국가들이 이러한 분야에서 일본의 도움을 얻기 위해 오염수 방류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것이다.

오염수 방류 문제와 관련해 한국 측의 공동 대응 제안이나 협조 요청 등이 있었냐는 질문에 푸나 사무총장은 "지난해 개최된 한-태도국 외교장관회의에서도 지역의 우선순위이자 관심사안인 이 문제에 대해 협의했고, 한국 정부는 이 문제를 면밀하게 검토하기를 원했다"며 "PIF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말해 구체적인 공동 대응은 나오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다만 그는 "(5월 29~30일 예정인) 이번 한-태평양 도서국가 정상회의 계기 이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가 있을 예정"이라며 공동 대응 가능성을 아예 닫아두지는 않았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가장 주안점을 두고 협의하는 분야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시오네 테키테키(Sione Tekiteki) PIF 거버넌스 국장은 "오염수 방류 등을 포함한 해양 관련 현안, 태평양 도서국의 최대 안보 문제인 기후변화와 해수면 상승 및 경제개발, 인적교류, 민간 투자 등을 논의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기후 변화 대응, 말만 있고 구체적 행동 없어 실망스럽다

태평양 섬 국가 중에서는 투발루와 키리바시처럼 기후 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국가 존립이 위기에 빠진 곳도 있다. PIF는 이러한 국가들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세계적으로 여러 움직임이 있지만, 실질적인 행동이 없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푸나 사무총장은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회의인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가 27번이나 개최됐지만 아직까지 기후변화에 대해서는 구체적 행동 없이 말만 있다"라며 "기후변화는 태평양 섬 국가들의 당면 과제이지만 여기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며, 전 지구적 문제로 세계 어디서나 발생되는 사안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태평양 지역에서 기후변화는 매일 매일 겪고 있는 현실이다. 기후변화의 피해가 더욱 심각해지지 않도록 전 세계에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다"며 "그러나 실질적인 진전이 없다는 것에 매우 실망스럽다. 선진국이 충분히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테키테키 국장은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 마련이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그는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많은 재원이 필요한데 소규모 섬 국가들의 재정 접근성이 너무 떨어진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기후 재정 지원이 경감(mitigation)에 치중되어 있으며, 기후재정의 0.2%만이 대응(adaptation)에 소요되고 있다. 더 많은 재정이 대응에 지원되어야 한다"라며 "재정 규모 자체도 매년 1000억 달러 조달을 약속했으나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필리몬 마노니 PIF 사무처장은 "투발루, 키리바시 뿐만 아니라 여타 태평양 도서국들 중에서도 국가성(statehood) 자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이 있다"며 "기후변화는 심각한 문제로 다양한 이니셔티브가 추진 중인데 바누아투는 국제사법재판소(ICJ)가 기후변화와 관련된 국가의 의무에 대해 권고적 의견을 제공할 수 있도록 유엔 총회에서 결의안을 채택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고 태평양 섬 국가들의 자체적 활동을 소개하기도 했다.

▲ 2019년 투발루에서 열린 태평양 도서국 포럼(PIF) 정상회의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조형물. 투발루 정부청사 뒤편 컨벤션 센터 앞에 놓여있다. ⓒ외교부 공동취재단(투발루)

2030년 부산 엑스포 유치를 추진하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는 이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적극적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엑스포 개최지를 결정하는 국제박람회기구(BIE)에 10개 태평양 섬나라들이 포함돼있는 만큼, 이들의 지지 여부가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엑스포와 관련해 푸나 총장은 "엑스포 지지 국가 선택은 각국의 고유한 권한"이라면서도 "동 문제에 대해 논의하기 적합한 계기는 5월 정상회의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작년 한-태도국 외교장괸회의 참석 계기 부산을 방문하여 엑스포 부지를 둘러보았고 유치위의 유치 계획도 들었는데 매우 훌륭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PIF와 25년 이상 협력한 국가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국의 엑스포 유치에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며 "이번 5월 정상회의 일정 중 부산 방문도 예정되어 있는데 이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에 따르면 태평양도서국포럼은 태평양의 독립국가 및 자치 지역의 연례 정부수반 회의로서 매해 정상회의 개최를 통해 경제발전 등 역내 공동문제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1971년 남태평양포럼(SPF)으로 시작되어 1999년 현재의 태평양도서국포럼(PIF)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회원국은 호주, 뉴질랜드, 피지(사무국 소재), 파푸아뉴기니, 키리바시, 마셜제도, 솔로몬제도, 바누아투, 나우루, 투발루, 통가, 사모아, 마이크로네시아, 팔라우, 니우에, 쿡제도, 뉴칼레도니아,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등 18개국이다.

한국과는 1995년 제7차 PIF/PFD 회의부터 협력이 시작됐고 이후 한국은 이 회의에 매년 참석하고 있다. 또 한-태평양 도서국 외교장관회의를 2011년부터 매 3년마다 개최하고 있으며, 회기 간에는 매년 고위관리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FPD는 태평양도서국포럼의 '대화상대국 회의'(PFD, Post Forum Dialogue)로 태평양 도서 국가들과 함께 21개의 국가가 함께 회의를 가진다. 여기에는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일본(이상 89년 부터), 중국(90년), EU(91년), 한국(95년), 말레이시아(97년), 필리핀(2000년), 인도네시아(01년), 인도(03년), 태국(04년), 이탈리아(07년), 쿠바(12년), 터키(14년), 스페인(14년), 독일(16년), 노르웨이(21년), 싱가포르(21년), 칠레(21년) 등이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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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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