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리 회의 열기도 전에…북한 "회의 소집, 강력한 경고"

강대국 간 대립 속 북한 제재 못하는 무기력한 안보리…자신감 얻은 북한은 목소리 커져

북한 군 내에서 서열 2~3위로 알려져 있는 리병철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미국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소집에 대해 반발하는 '경고 입장'을 발표했다. 안보리 소집을 두고 북한의 거물급 인사가 이같은 형식의 입장을 밝힌 것은 이례적으로 평가된다.

17일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당 중앙군사위 리병철 부위원장, 미국의 도발적 행위에 경고 립장발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국과 그 추종무리들이 조선(북한)의 자위적 국방력강화조치를 문제시하는 유엔 안전보장리사회 공개회의를 또다시 강압 소집하려 하는데 대하여 강경한 경고립장을 발표하였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리 부위원장은 "미국이 유엔 안전보장리사회를 전면에 내세워 우리의 당연한 자위권행사를 그 무슨 '도발'과 '위협'으로 묘사하며 문제시하려 드는데 대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국권에 대한 노골적인 무시로, 명백한 내정간섭행위로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의 신형전략무기개발은 철두철미 미국의 가증되는 군사적 위협과 전망적인 지역의 안전상 우려로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호하고 전쟁을 억제하며 평화적인민의 삶과 미래를 보위하기 위한 합법적인 자위력강화조치"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리 부위원장은 자신들의 군사 행동의 이유를 미국과 남한 탓으로 돌렸다. 그는 "올해 들어와 미국과 남조선(남한) 괴뢰역도들은 그 무슨 말로써도 변명할 수 없고 그 이상 더 명백할 수 없는 '평양점령'과 '참수작전', '정권종말'이라는 가장 적대적이고 침략적 성격이 짙은 표현으로 망발을 쏟아내며 우리에 대한 핵선제타격과 전면전쟁을 가상한 대규모합동군사연습들을 쉬임 없이 연속적으로 벌려놓았"다고 말했다.

이어 "오는 6월에는 또다시 남조선 지역에서 역대 최대규모의 '연합합동화력격멸훈련'이라는 것을 강행하여 정세를 더욱 폭발직전으로 끌어가려고 기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리 부위원장은 지난 14일 미국의 핵 전략폭격기인 B-52H가 한반도 상공에 전개한 것을 언급하면서 "조성된 엄중한 사태와 전망적인 위협에 대처하여 우리가 보다 강위력한 정당방위수단들을 갖추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며 "이렇게 해야만 힘의 균형이 유지되고 조선반도안전상황이 통제권안에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엔 안전보장리사회가 조선반도(한반도) 정세악화의 주범인 미국에 대해서는 우려조차 표하지 않고 우리의 합법적인 자위권행사만을 또다시 문제시하려 드는 것은 명백한 이중기준이며 우리 주권에 대한 엄중한 모독"이라고 규정했다.

리 부위원장은 "유엔 안전보장리사회가 진정으로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보장에 관심이 있다면 유엔헌장에 명시된 주권평등과 자주권존중, 내정불간섭의 원칙에 립각하여 미국의 불법무도한 강권과 전횡, 정세를 격화시키는 각종 무력증강, 무력시위행위부터 문제시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아직도 미국은 근본적으로 달라진 조미관계의 력학구도를 의식하지 않고 자기의 힘에 대한 과신에만 빠져있다. 미국은 이제라도 대세판단을 똑바로 하고 우리를 자극하는 정치군사적 도발행위들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며 만일 미국이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를 무시하고 조선반도의 안전 환경을 계속 위태롭게 하는 행위들을 지속한다면 더욱 분명한 안보위기와 불가극복의 위협을 느끼도록 우리는 필요한 행동적 조치들을 취해 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엔 안보리는 오는 17일(현지시각) 오후 3시 뉴욕 유엔 본부에서 북한의 비확산 문제에 대한 공개회의를 계획하고 있다. 이 회의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과 비상임이사국인 일본 등의 주도로 개최될 예정인데, 주요 안건은 지난 13일 북한이 발사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과 관련한 대응 조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지난해 9월 8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회의 2일회의가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리병철 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연설하고 있다. ⓒ로동신문=뉴스1

안보리 회의를 열기도 전에 북한군의 핵심 인사가 이같은 입장을 밝힌 것은 다소 이례적이다. 이를 두고 우선 회의 결과에 따라 이후 보다 강력한 군사 대응을 실시할 것임을 예고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인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안보리가 북한의 군사 행동을 제대로 제지하지 못했다는 점도 리 부위원장의 강경한 입장이 나오게 된 배경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북한이 외교적인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에 이러한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는 평가다. 

안보리는 상임이사국 간 갈등으로 지난해 이후 북한의 ICBM 발사에 대해 그 어떤 공통된 대응도 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높은 수준의 대응조치인 '결의안'(Resolution)은 커녕 중간 단계 수준인 '의장 성명(Presidential statement)'도, 가장 낮은 수준인 '언론 성명(Press Statement)'도 내지 못하고 있다.

무기력해진 안보리와는 달리 북한은 자신들의 군사 행동에 대해 외교적인 차원에서 적극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지난 2월 24일 북한 외무성 권정근 미국담당국장, 22일 김선경 외무성 국제기구담당 부상 등은 각각 담화를 통해 안보리가 자신들만 제재하는 '이중기준'을 가지고 있고 미국의 뜻대로만 움직이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한 발 더 나아가 북한은 국제적 사안에서도 러시아와 보조를 맞추는 등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조성된 대립적인 국제정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지난 1일 본인 명의의 담화에서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핵우산' 밑에 들어가길 자처하며 위기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처럼 북한이 미국과 러시아‧중국 간 대립을 자신들의 외교에 활용하면서 향후에도 이번과 같은 입장 발표가 있을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두 세력으로 나뉘어진 국제적 갈등이 북한에게는 외교적인 발언권을 키우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는 셈이다.

한편 이번에도 안보리는 북한의 화성-18형 발사에 대해 공통된 입장을 도출해내지 못했다.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 등은 북한의 행위를 규탄했으나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군사 행동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불러왔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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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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