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진아, 국회는 널 멈출 수 있을까?

[국회 다니는 변호사]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이번 주에 다룰 내용은 바로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하 '학교폭력 예방법'이라 하겠습니다)입니다. 워낙 민감한 주제인 만큼, 다루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때마침 몇 개의 법안이 제출되어 있어 다루어보기로 합니다.

배우 송혜교 씨가 주연한 드라마 <더 글로리>가 화제입니다. 그녀의 연기력에 새삼 놀라기도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학교폭력이 드라마의 고정 레퍼토리로 자리잡은 현실입니다. 드라마 속 동은이는 현실 속 학교폭력 피해자의 아픔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학교폭력 가해자인 연진이는 재벌집 아들을 만나 남들이 부러워하는 화려한 생활을 하지만, 피해자 동은의 삶은 죽음과도 같은 지옥의 연속이자 동은의 표현대로 '존엄이라곤 없는 이미 더없이 폐허'인 것이죠.

드라마는 피해자의 복수라는 카타르시스를 시청자에게 제공하지만, 현실 속 피해자의 복수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현실 속 학교폭력은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언어폭력, 집단따돌림, 스토킹, 신체폭력, 사이버폭력, 금품갈취, 성폭력, 강요 등 다양하지요. 특히 언어폭력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합니다. 2021년 기준으로 학생 1000명당 7.4명이 언어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할 정도니까요. 가해 이유 중 35%는 장난이나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고, 화플이나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답변은 10%정도입니다. 다른 친구가 하니까, 또는 강해 보이기 때문이라는 답변은 각 4.1%, 5.3%정도죠. 즉 여하한 형태의 가해든 자신에게 기인한 폭력성이 절반 이상이 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교육부, 2021년 1차 학교폭력실태조사 결과)

▲2021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 발표 ⓒ교육부

반면 피해자들은 어떨까요?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자료(2022년 4월)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 청소년들의 가장 큰 고통은 '우울과 위축(66.3%)'이라고 하지요. 대인기피(40.7%), 강박·불안(30.2), 등교거부(27.9%)는 물론이고, 자해·자살사고(23.3%)로 연결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해자는 별다른 이유가 없이 폭력을 가하지만, 피해자는 딱히 이유도 없는 가해로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죠. 학교폭력에서의 가해행위를 엄단할 필요성을 말해줍니다.

사정은 이런데, 현실 속 우리 학교는 학교폭력을 잘 억제하고 있는 것일까요? 위 2021년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학교폭력이 일어나는 경우 목격자들은 때리거나 괴롭히는 친구를 말리거나(19.5%), 가족·선생님·학교전담경찰관에게 신고하기도 하고(16.2%) 피해 학생을 위로하고 도와주기도 하지만(33.4%), 아무것도 못했다는 답변도 1/3가까이 내놓습니다(29.9%), 드물지만 심지어 피해 학생을 괴롭히기도 하지요(1.0%). 제도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기도 하지만, 1/3 가까운 학생은 방관자가 될 뿐입니다. 정책당국자는 이를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2021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 발표 ⓒ교육부

학교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학교폭력예방법은 학교폭력이 발생하는 경우, 학교장이 경미한 사안(예: 재산상 피해가 없거나 학교폭력이 지속적이지 않은 경우)의 경우는 자체 해결하기도 하지만, 사안이 심각하다고 보면 교육청 소속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약칭 '학폭위')에 안건을 올립니다. 학폭위는 가해 학생에 대해 교육과 선도, 징계를 하고, 피해학생을 보호하는 일을 수행하게 됩니다. 피해 학생에게는 여러 심리상담이나 보호, 요양, 학급교체 등 보호조치를 취하고, 가해학생에게는 낮게는 서면 사과부터 시작해, 중한 정도에 따라 봉사활동, 교육이수, 출석정지, 전학·퇴학처분까지 취하게 됩니다. 제도야 모두 갖추어져 있지요. 

문제는 학교폭력 가해 학생이 반성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이번 정순신 전 부장검사의 자녀 문제에서 보듯, 처분에 불복하며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최근 3년간 전국 학교폭력 조치사항 통계를 보면 행정심판 건수는 2077건, 행정소송 건수는 575건입니다. 학교폭력예방법에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사항을 '학교생활기록부'에 작성하도록 한 교육부 지침 때문이죠.

대학입시가 치열해지면서, 이러한 경향성이 더 심화되는 듯 합니다. 한 학부모 단체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고, 헌법소원을 청구하기까지 했지만, 2016. 4. 28. 헌법재판소는 전원일치로 합헌 결정(2012헌마630)을 내렸습니다. 학교폭력 관련 조치사항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해 상급학교 진학자료로 활용하게 하는 것은 가해학생을 선도하고 교육하며,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는 겁니다. 가해학생을 응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데 불이익하게 학폭자료를 활용하는 것이라는 거죠.

하지만 가해학생이 반성하지 않고,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자신에게 내려진 징계 처분에 불복하고, 처분 집행정지를 구하는 경우 이러한 피해자 보호 조치들도 모두 무력화됩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학교까지 손을 뻗치게 되는 것이죠. 심지어 소위 '학폭 전문 변호사'까지 있다고 하니, 부끄럽기만 합니다. 정순신 전 부장검사나 그의 아들은 이러한 제도를 활용해 6개월 가까이 전학 처분을 지연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그 사이에 피해자가 가해자를 바라보며 당했을 심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겁니다.

가해학생이 법에 정해진 제도를 이용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가해 학생이 제기한 행정심판이나 소송에서 피해학생의 의사가 충실히 반영될 수 있도록, 피해자에게도 변호사를 선임하거나 법률 자문을 받는 등 대등한 무기를 쥐어주는 것이 법의 정신에 부합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서동용 의원 안)

또는 가해 학생이나 보호자가 행정심판·소송을 제기하고 집행정지를 신청하는 경우, 법원이 피해 학생과 보호자의 의견을 들어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 안)

가해자의 일방적 주장과 교육당국의 반론만으로 심리하는 것보다, 피해자의 주장을 공히 경청하는 것이 더 공정한 결정과 판결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물론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같이 얼굴을 맞대지 않도록 분리심문을 하는 등의 조치는 필요하겠습니다. 

연진이가 동은이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반성을 하는 일이 현실에서 가능한 일일까요? 드라마에서 동은은 무르익은 '복수심'을 통고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다시 연진을 만나지요. 그리고 연진에게 자신과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자수하면 용서해 주겠다는 마지막 제안도 합니다. 연진은 이를 매몰차게 거절했죠.

현실세계의 학폭도 이러한 모습일까요? 가해자가 잘못을 뉘우치고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게, 피해자는 가해자의 부당함에 맞서 싸울 수 있게 제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입법자의 의무가 아닐까요? 저는 이런 맥락에서 두 의원의 법안을 의미 있게 바라보았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에서 박연진을 연기한 배우 임지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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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웅

박지웅 변호사는 현재 법무법인(유) 율촌의 변호사로 재직중입니다. 국회의원 비서관, 국회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 기획재정부 장관정책보좌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실 행정관을 역임하며 국회 입법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연구하며 오랫동안 여러 입법 경험을 쌓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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