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교수들 "굴욕 강제동원 해법, 최소 존중도 없다"

서울대 민교협 성명 발표 "삼권분립·피해자 권리 무시한 정부 해법, 새로운 갈등 시작"

서울대학교 민주화교수협의회(이하 민교협) 소속 교수들이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배상 이행 입장 발표를 두고 굴욕적이고 위험하다며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14일 서울대학교 민교협 교수들은 '윤석열 정부는 굴욕적이고 위험한 강제동원 판결 관련 해법을 철회하라'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지난 6일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 배상 이행 관련 정부의 입장 발표는 "대법원의 판결을 정면으로 짓밟은 결정"이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대한민국 사법부의 권위나 삼권분립의 원칙 등 헌법적 질서에 대한 존중이 온데간데없이 실종되었으며, 생존한 피해 당사자인 소송 원고의 반발이 보여주듯이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는 일방적인 해법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도 2018년 당시 대법원 판결을 환영하는 논평에서 "강제징용 피해자의 권리가 구제되고 역사를 바로세우는 계기로 일본의 태도 변화를 기대"한다고 밝혔고, 자유한국당의 나경원 원내대표와 바른미래당의 하태경 의원이 각각 내놓은 안에 일본 피고 기업의 책임을 묻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면서 지금에 와서 이같은 일방적 해법을 지지하는 어이없는 언행을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서울대 민교협은 "생존 피해자들이 정부의 해법을 거부하는 한, 대법원 판결에 따른 법적 절차는 그대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민주국가, 법치국가에서는 당연한 일"이라며 "정부 해법은 문제의 해결이 결코 아니며 새로운 문제와 갈등의 시작일 뿐"이라고 진단했다.

▲ 남기정 일본연구소 교수(오른쪽 두번째)가 14일 관악구 서울대학교 관정관 별관동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판결 관련 해법에 대한 비판 성명서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서울대학교민주화교수협의회 이준호 생명과학부 교수, 김백영 사회학과 교수, 김명환 영문학과 교수, 남기정 일본연구소 교수, 이동원 국사학과 교수. ⓒ연합뉴스

이들은 이번 정부 입장 발표가 국제정세 측면에서 봤을 때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 정부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중단하고 한미일 안보 협력에만 매달린다면, 군사적 긴장이 높아져 한반도의 불안정한 상황이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민교협은 "현 정부는 한일관계 악화의 모든 책임이 직전 문재인 정부에 있다는 편견에 찬 인식 위에서 그동안 어렵사리 진행되어 온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완전한 실패로 규정하고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한다는 전략적 선택을 했다"며 "이는 한국의 역대 정부와 시민사회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평화체제 구축 속에서만 원만하게 실현 가능하다고 보는 인식에 등을 돌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이대로 간다면 한일관계는 장기적으로 더 악화되고 불안정해질 것이며, 한미일 군사협력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한미동맹이 미일동맹의 하위동맹으로 편입되어 대한민국의 자주성이 크게 훼손될 것이다. 이것은 이미 글로벌 중견국가로 도약한 대한민국의 선택지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 입장문을 발표하고도 일본 정부가 별다른 입장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삼았다. 이들은 "일본은 우리의 대법원 판결에 대한 불만으로 2019년 수출규제조치를 통해 국제 교역질서를 어지럽히며 한국 정부를 부당하게 압박했으며, 이것이 한일관계 악화의 가장 가깝고 큰 원인"이라며 "그러나 일본 정부는 수출규제조치 철회조차 우리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절차 중단을 선결조건으로 삼는 오만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는 6일 발표한 해법이 진정한 해법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즉시 그것을 철회해야 한다. 더불어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는 가운데 일본 정부와 기업이 합당한 정책 전환을 하도록 설득하고 압박해야 한다"며 "지금이라도 국민의 비판에 귀를 기울이고, 피해자 중심 문제 해결이라는 국제사회의 인권규범을 따라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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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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