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회계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노동조합에 과태료를 부과할 방침이다. 정부가 권한 밖의 실력 행사를 통해 노조를 옥죈다는 비판이 나온다.
노동부는 14일 조합원 1000명 이상 노조 319곳 가운데 86곳이 어제까지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 등의 비치·보존 여부를 보고하지 않아 다음날인 15일부터 과태료 부과 절차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노동부는 지난달 1일 조합원 수 1000명 이상의 단위노조와 연합단체 319곳에 서류 비치·보존 의무 이행 여부를 보고하도록 요구했다. 제출 기한인 지난달 15일까지 보름 동안 120곳이 정부 요구에 따라 표지 1쪽과 내지 1쪽의 자료를 제출했다.
노동부는 노조가 제출한 자율 점검 결과서와 증빙 자료를 검토하고 보완 의사 확인 등을 거쳐 나머지 199곳 중 132곳에 소명과 시정의 기회를 줬다. 하지만 전날 오후 6시까지 319곳 중 86곳(26.9%)이 여전히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상급단체별 제출 현황도 공개했다. 민주노총의 제출 비율이 37.1%, 한국노총은 81.5%, '기타 미가맹 등'은 82.1%가 제출했다고 밝혔다.
노동부가 노조에 회계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근거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7조다. 노조법 제27조는 '노조는 행정 관청이 요구하는 경우 결산 결과와 운영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고 되어있다. 같은 법 제96조는 '제27조의 규정에 의한 보고를 하지 않거나 허위의 보고를 한 자는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노동부는 오는 15일 5개 노조를 시작으로 다음 달 초까지 과태료 부과 사전 통지 작업을 마칠 계획이다. 사전 통지 이후에는 10일간의 의견 제출 기간을 거쳐 해당 노조에 최종적으로 과태료가 부과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회입법조사처는 노조가 행정관청의 요구로 결산 결과와 운영상황을 보고하더라도 재정 장부·서류를 반드시 제출하지는 않아도 된다는 취지의 해석을 내놨다. 즉, 정부가 노조에 회계 '내지'까지 요구할 권한이 없다는 입장이다. (관련기사 : "노조 회계" 때리는 정부, 열람 권한도 없으면서 공개하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입법조사처로부터 받은 답변자료를 근거로 "노조법 제27조의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에 제14조의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가 당연히 포함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정부가 아닌 조합비를 낸 조합원에게는 회계 장부를 공개해야 한다고 입법조사처는 해석했다. 입법조사처는 "조합비의 운영을 조합원에게 공개하는 것은 조합민주주의에 부합한다"며 "노동조합이 조합원을 대상으로 공개할 때와 행정관청을 대상으로 보고할 때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의 범위가 같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할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즉, 정부가 열람 권한도 없는 자료를 제출하라고 노조를 겁박하고 이를 근거로 과태료를 매기겠다고 나선 셈이다.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노조법에 따라 조합원들이 볼 수 있도록 이미 노조는 회계자료를 비치하고 있다"며 "고용노동부는 회계장부 주요 목록의 각 첫 페이지들을 요구하고 하고 있는데, 목차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총괄 현황과 같은 노조의 일반현황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있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이어 "세세한 운영 계획이 담겨있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정부가 그런 자료를 노조에 요구하는 것은 남용일 뿐더러 법의 취지에도 맞지 않아서 저희는 현행 법대로 집행했다"며 "그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월권"이라고 맞섰다.
한국노총도 성명을 내고 "정부는 노조에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한국노총을 비롯한 산하 노동조합은 이미 조합원 알권리 보장을 위해 서류보존·비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노조를 사회부패세력으로 매도하고 노조혐오를 조장하려는 정부의 불순한 의도라면 절대 응할 계획이 없음을 다시 한번 밝힌다"고 했다.
특히 정부가 과태료 부과와 별도로 현장조사를 언급하며 공무집행방해죄, 질서위반행위규제법 위반을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두고 한국노총은 "1990년대 초반 구노조법상 업무조사권을 발동하여 이를 거부한 노조에 대해 고발과 노조간부 구속이라는 극단적 방식으로 보복했던 정부의 노조 자주성 말살시도가 연상된다"고도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양대 노총은 오는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을 직권남용으로 고발할 방침이다.
한편, 노동부는 과태료 부과 이후 현장조사를 통해 노조법 14조에 따른 서류 비치·보존의무 이행 여부를 확인할 예정이다. 다음달 중순부터는 질서위반행위규제법에 따른 현장조사도 본격화 하기로 했다. 정부는 현장조사를 거부·방해 또는 기피하는 노조에 대해서는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하는 등 엄정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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