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과 노동에 대해서는 이를 '적립'했다가 대체 장기휴가로 쓸 수 있게 한다는 정부의 근로시간저축계좌제 도입안을 두고, 13일 민주노총이 제도가 악용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연장 노동을 했음에도 장기 휴가도 가지 못하고, 그에 대한 수당까지 받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근로시간저축계좌제는 '주 69시간 노동 확대'를 골자로 '노동개혁'을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가 장시간 노동이라는 비판에 내놓은 대안이다. 법정노동시간 40시간을 넘는 연장근로, 야간근로, 휴일근로 등에 대해 수당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휴가'로 사용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법률원은 이날 '고용노동부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법적 쟁점 검토'를 발표하고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도입하면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은 거의 발생하지 않게 된다"고 지적했다.
"연장 노동 해도, 소득은 감소하고 실제 휴가는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 발생할 수도"
고용노동부는 지난 6일 현재 주 52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는 노동시간을 주 69시간까지 늘리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근로기준법개정안)을 확정했다. 연장노동시간 관리 단위를 '주' 단위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변경할 수 있도록 해, 노동시간 활용의 규제를 완화했다.
다만 정부도 장시간 노동에 대한 우려가 계속되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추가 노동시간을 은행 예금이나 마일리지처럼 차곡차곡 모아놨다가 노동자가 원할 때 연차 휴가에 더해 장기 휴가로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현행 근로기준법 56조에 따르면 연장·야간·휴일 근로에 대하여 통상임금의 50%를 가산하여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개정안에는 임금 지급을 '갈음'하여 휴가를 줄 수 있다고 했다.
정부의 근로기준법개정안에는 제57조(보상휴가제)를 개정해 "연장근로·야간근로 및 휴일근로 등에 대하여 전부 또는 일부에 해당하는 근로시간을 근로자별로 적립하고 적립된 시간을 제56조에 따른 임금 지급에 갈음하여 휴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하 '근로시간저축계좌제'라 한다)를 운영할 수 있다"고 적시했다.
민주노총법률원은 4가지 문제점을 제시했다. 먼저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도입하면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은 거의 발생하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연장·야간·휴일근로 수당에 통상임금의 50%를 가산하는 이유는 사용자로 하여금 가산임금을 부담시켜 연장근로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데, 근로시간저축계좌제가 도입될 경우 사용자에게 그런 부담을 없애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노동자에게는 연장근로를 해도 가산임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 법률원은 "통상임금이 1만 원인 노동자가 1주에 64시간씩 1달을 근무하면 연장근로수당으로 1만 원 × 24시간 × 4주 × 150% = 480,000원이 되는데, 이 연장근로수당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근로시간저축계좌제가 악용되면 소득은 감소하고 실제 휴가는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회사가 이런저런 이유로 휴가 사용을 자제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어서 이를 거부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가 지난해 12월7일부터 14일까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휴가 제도 사용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직장인 10명 중 3명은 법정 유급휴가도 자유롭게 쓰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률원은 "연차휴가도 정상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데 고용노동부가 내세우는 장기간 휴가는 뜬구름 잡기에 불과한 허황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법률원은 또한 "사용하고 남은 시간에 대해서는 임금으로 정산하게 되어 있으나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로 이월할 수 있어서 사용자가 악용할 여지는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노동자의 동의 없이 근로시간저축계좌제가 도입될 수 있다"고 했다. 정부의 개정안에는 근로시간저축계좌제가 노·사 합의나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를 통해 도입할 수 있도록 했다.
법률원은 "어용노조가 대표노조이거나 노동조합이 없는 미조직된 노동자의 경우, 비민주적으로 선출된 근로자대표가 실제 노동자의 의사와는 다르게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도입할 수 있다"면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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