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69시간 추진' 노동부, "포괄임금 오·남용 뿌리 뽑겠다" 한 이유는?

직장갑질 119 "정부 단속 생색…포괄임금제 오·남용 방지가 아닌 '금지'해야"

'주 노동시간 69시간 확대' 등을 골자로 한 노동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올해를 포괄임금 오·남용 근절의 원년으로 삼아 강력한 조치를 통해 불법·부당한 행위를 뿌리 뽑겠다"고 공언했다.

최근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안이 '장시간 노동 사회로의 회귀'라는 비판이 나오자, 장시간 노동을 해도 야근 수당을 받지 못하는 '포괄임금제 단속'으로 화살을 돌려 이같은 비판을 불식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호봉제(연공급제)를 비판하며 직무성과급제를 추진중인 정부가 IT업계에 다수 포진된 젊은 세대인 'MZ세대' 잡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13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열린 IT 기업 노조·근로자 간담회에서 "포괄임금제가 오남용되면 일한 만큼 보상받지 못해 '공정'의 가치에 맞지 않는다"며 "특히 노동시장에 막 진입한 청년이나 저임금 근로자의 좌절감을 가져오므로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3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정보기술(IT) 기업 노동조합 지회장, 근로자들과 포괄임금 오·남용 근절을 위한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포괄임금제는 회사가 노동자에게 미리 일정한 수당을 주고 추가 노동 시간이 길더라도 이에 상관없이 일을 하게 하는 제도다. 이 제도가 적용된다면 특히 새 프로그램 출시 전 특정 기간 동안 잠과 식사, 씻기까지 포기하고 몰아 일하는 이른바 '크런치 모드'와 같은 고강도 근무가 잦은 IT 노동자들은 법정 노동시간인 '주 52시간'을 초과한 노동에 대해서 수당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 장관은 현행 노동시간 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현행 근로시간제도는 공장법 시대에 만들어졌다"며 "70년간 유지된 획일적·경직적 규제로 인해 현실 요청에 부합하는 관행이 생겨났는데 이게 바로 소위 포괄임금"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포괄임금제 단속을 통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이 받고 있는 '장시간 노동사회로의 회귀'라는 프레임을 벗어나려고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장관은 이 자리에서 "포괄임금 오·남용 근절은 현시점에서 가장 확실한 근로시간 단축 기제"라고 강조했다.

또한 직무성과급제로의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고 있는 이 장관이 'MZ세대'의 마음을 잡기 위한 포석으로 포괄임금제를 겨냥한 것으로도 보인다. 지난해 9월 22일 이 장관은 '임금 결정기준 불공정'에 대한 목소리를 듣겠다며 'MZ세대 노조 간담회'를 개최한 바 있다. 이 장관은 젊은 세대들로부터 호봉제(연공급제)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기대했으나, 오히려 포괄임금제에 대한 비판만 나와 머쓱한 상황이 연출된 바 있다.

당시 이 장관은 "요즘 젊은 직장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블라인드앱에서는 '성과와 무관히 보상이 정해져 있어 열심히 일하면 바보가 된 기분에 의욕이 저하된다', '경력만 쌓이면 승진되는 것은 부당하다' 등 하소연이 많은 공감대를 얻고 있다"며 호봉제를 비판했으나, 현장에서는 "임금체계가 성과 중심으로 된다고 저절로 공정이 이뤄지지 않는다", "포괄임금 계약이 가장 큰 문제"라는 의견이 제시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는 정부가 이날 발표한 포괄임금제 오·남용 단속 방안으로는 '공짜 노동'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포괄임금제의 오·남용을 단속할 것이 아니라, 포괄임금제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장갑질 119는 이날 입장문에서 "정부 역사상 최초의 기획감독을 진행한다고 생색을 내고 있으나 눈에 보이는 현상적인 문제점(미리 정한 고정시간외근로시간 보다 더 일을 많이 하거나 이 경우 제대로 시간외수당이 지급되지 않은 실태, 허위로 근로시간을 기록하게 하는 문제 정도)만 확인하고 시정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 확실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어 "포괄임금제는 인정하고 유지하면서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남용을 방지하는 수준으로 접근하는 노동부의 태도는 포괄임금제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책일 수 없다"며 "포괄임금제가 장시간 중노동 체제를 만드는 주범 중 하나인 상황에서 정부도 인정하는 것처럼 포괄임금제를 금지하는 것이 실노동시간 단축의 핵심적인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앞서 정부는 연장노동시간 관리 단위를 '주' 단위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되면 현재 주 52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는 노동시간이 주 69시간까지, 휴일수당을 받고 1주일 내내 일하면 80.5시간까지 늘어나게 된다. (관련기사 : '나인 투 식스'에서 '나인 투 텐'으로…尹정부 '노동개혁'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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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

프레시안 박정연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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