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차별 실태를 보며 '동료 시민'을 몸으로 깨닫다

[청년이 마주한 세계와 시민] ③성소수자 인권 문제

경희대학교는 지난 2011년 후마니타스칼리지를 설립하고, 3학점 교양 필수과목으로 '세계와 시민'을 운영하고 있다. '세계와 시민'은 매 학기 25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100개의 강좌로 진행된다. 학생들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를 주제로 선정해 한 학기 동안 해당 주제를 토론하고 이를 연구해 동료에게 조사 결과를 소개하는 학생 주도의 공동 프로젝트(Global Citizen Project, GCP)를 수행한다. 수업에서 다뤄지는 주제는 성소수자 문제, 동물권, 플랫폼노동, 기후변화 등 오늘날 언론에서도 뜨겁게 다뤄지는 이슈들이다. 해당 주제들을 다루면서 학생들은 글로컬 차원에서 새롭게 구성되는 시민적 삶의 존재 조건을 이해하고, 세계시민으로서의 책임감 있는 삶의 자세를 다진다. 청년으로서 첫 걸음을 떼는 학생이 수업의 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을 기록하는 수업인 셈이다. <프레시안>은 지난해에 진행한 '세계와 시민' 수업 프로젝트 중 10개를 추려 수강생이 직접 작성한 원고를 소개한다. 편집자.

'김이정'은 각각 경제학과, 국어국문학과, 관광학부에 속해있는 1학년 학생 세 명의 성을 가나다 순으로 정렬해서 붙인 모둠 이름이다. 김서연, 이유진, 정선영.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 어떠한 접점도 없었던 세 사람은 대학에 들어와서 듣게 된 첫 수업 <세계와 시민>에서 만나 작은 공동체를 만들었다.

한 학기 동안 전혀 모르는 사람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함께 움직여야 했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만은 아니었다. 우리는 학기 시작 전부터 이미 성소수자의 존재와 그들이 겪는 차별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김서연은 미디어 속의 성소수자를 포착하였고 이유진은 차별금지법 관련 움직임을 눈여겨보았다. 정선영은 바로 주변에서 들려오는 차별 발언에 주목했다. 김이정이 성소수자 차별 해소를 활동 목표로 정한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주제는 '한국 노동 환경에서 성소수자에게 가해지는 차별 현황과 사회·제도적 해결방안'으로 최종 선정하였다. 시간과 장소마다 차별 양상이 달라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서는 범위를 좁히고 그곳에 집중해야 했다. 어느 분야의 차별 해소가 가장 시급한가, 어느 분야의 개선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위주로 주제를 탐색했다. 특히 노동 환경에서 그들의 처우를 개선하기로 한 것은 오랜 시간을 보내는 만큼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차별이 성소수자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노동 환경에 한 번도 놓이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서이기도 했다.

조장, 기록, 발표로 역할을 나누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렇게 임무를 나누긴 했지만 실제 활동에서는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을 넘어 서로를 도와야 했다. 모둠원의 수가 적어서 그러지 않으면 안 됐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더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같다. 대학에서 비대면 수업을 주로 하고 있었던 만큼 오프라인으로 만나기가 어려워 활동 대부분을 온라인에서 할 수 있는 것으로 구성했다. 그러다 주변에서 관련 행사가 있으면 개별적으로 참여하고 메신저 방이나 화상회의를 통해 모둠원들과 공유했다. 중요하게 결정해야 할 일이 있으면 날짜와 시간을 정해 온라인으로라도 실시간으로 소통했다.

문제를 탐색함으로써 직접 행동의 가닥을 잡기 위해 처음으로 한 것은 노회찬 재단 <너에게 가는 길> 공동체 상영 참여였다. 우리는 활동 이전 나름 여러 자료를 찾아보았고, 그를 토대로 세운 계획도 있었다. 하지만 성소수자와 직접 대면해 그들의 문제의식을 들어본 적이 없고, 자료와 당사자의 목소리 사이에도 얼마간의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하였기에 이 활동에 참여하기로 했다. 예상대로 차별 당사자를 보고 듣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경험이었다. 그들은 '차별받는 타자' 이상이었다. 우리 곁에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었다. 남들과 같은 일상을 살며 종종 혐오와 배제를 마주한다는 점만이 달랐다. 차별이 얼마나 부당한지 다시 한 번 느끼고 행동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듣는 연장선에서 제14회 성소수자 인권포럼 '퀴어로드: 우리의 행진이 만드는 길' 세션1과 세션2를 청취했다. 성소수자 청년들의 제도 관련 욕구와 차별, 노조와 종교 커뮤니티 등 각종 단체에서 성소수자를 위해 해왔고 앞으로 해나갈 일들을 듣는 시간이었다. 노동 현장을 비롯해 대학, 교회, 상담사 모임에서 평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연대의 힘은 정말로 컸다. 연대가 성소수자의 희망에서 운동가의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그리고 다시 평등을 위한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순환의 고리가 놀라웠다. 연대는 말 그대로 어디에서나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활동은 우리에게 중요한 길라잡이가 되었다. 특히 세션1의 내용을 많이 참고했다. 직장이 성소수자가 커밍아웃을 가장 꺼리는 장소이며 따라서 커밍아웃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점, 성소수자 인권침해 및 차별에 대한 구제 기구와 교육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점,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성소수자들의 욕구가 크다는 점이 그것이었다. 추가적으로 성소수자들의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현실이 크게 다가왔다.

한 학기라는 짧은 기간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때로는 방향을 과감하게 트는 것이 필요했다. 시간이 관건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 대응 매뉴얼' 개정 지지 서명운동 시행이 모둠 내에서 이야기된 바 있으나 시간이 부족해 고용노동부에 민원만 넣는 것으로 간소화되었고, 경희대학교 측에 온라인 폭력 예방 교육 영상에 성소수자 관련 내용을 추가하도록 요구하는 것도 후속 활동으로 밀려났다. 이 부분에서는 조금 아쉬움이 있다. 특히 고용노동부에 넣은 민원의 답변이 실망스러웠다. 매뉴얼에 직장 내 괴롭힘 성소수자 관련 내용을 보충·강조해달라는 요청에 고용노동부가 '이미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을 매뉴얼에까지 명시할 필요는 없다'라는 식으로 답변한 것은 '만약 서명운동의 결과를 기반으로 많은 시민이 매뉴얼 개정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면 어땠을까'하는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썼더라면, 머뭇거리지 않았더라면 더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다소 씁쓸한 민원의 결과였지만 거기서 얻은 교훈은 있었다. 기관에 제대로 요구·요청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의 지지를 보여주거나, 또는 기관이 인정할만한 단체가 대신 요구·요청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후속 활동에서 활용했다. 원래는 온라인 폭력 예방 교육 영상에 성소수자 관련 내용을 추가해달라고 학교에 직접 메일을 보내려고 했지만, 경희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울림'에 건의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지금으로선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학소위 내부에서 조사 뒤 자세한 건의 사항을 우리가 건의한 바와 함께 학지처에 전달하겠다는 답변을 받은 상태다.

한 학기 동안 성소수자의 노동 환경을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이런저런 활동을 진행하며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바로 '동료 시민'이라는 개념을 머리로 아는 것을 넘어 마음으로 느낀 경험이었다. '너'를 '나'와 같이 여길 필요성과 '너'의 목소리를 명확하게 듣는 방법을 배웠다. 우리의 행동은 타인의 아픔에 진정으로 공감하는 데서부터 출발했다. 여기서 얻은 것은 지금도 남아 계속해서 우리에게 소수자의 관점에서 세상의 불합리를 발견하게 한다. 마치 세상을 보는 제 삼의 눈을 뜬 것처럼 그 발견은 쉽게 멈출 것 같지 않다. 각종 시위와 파업이 이어지고 있는 요즘 특히 그렇다. '나'의 아픔만 신경 쓸 게 아닌 '너'의 아픔과 불만에도 귀 기울이는 세대가 되어야 한다. 더불어 '너'는 곧 '우리'가 된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새기는 것이 갈수록 중요해진다.

세상의 불평등을 고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종종 비난이 쏟아진다. 대학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당장 김이정이 소속되어 있는 학교 학생들의 커뮤니티만 살펴보아도 그렇다. 대학은 배우려는 마음가짐을 갖춘 이들이 배운 것을 적용하려는 이들로 변모하기 전, 사실상 가장 마지막으로 품는 곳이자 자기 자신의 길을 결정할 수 있게 된 성인 대부분이 가장 처음으로 큰 사회를 맛보게 되는 곳이다. 여기서 대학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우리가 동료 시민으로서의 첫 발걸음을 내디뎠던 <세계와 시민> 같은 수업을 통해 공감과 연대의 힘을 학생들에게 계속해서 길러준다면 소수자들이 자신의 마땅한 권리를 두려움 없이 주장하고 또 누릴 수 있는 사회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김이정: 경희대 학생 김서연, 이유진, 정선영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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