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가 백지화한 산악관광개발, 尹정부에서 되살아나나

[함께 사는 길] "지리산에 고철덩어리만 남길 지리산 산악열차, 여기서 멈춰야 한다"

2016년 가을부터 2017년 봄 사이 '적폐청산'을 요구하는 시민의 촛불이 타올랐다. 시민들이 꼽은 대표적인 적폐 가운데 하나는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건설이었다. 박근혜 정권의 자연공원 내 케이블카, 산악열차 확대 정책은 산악관광활성화 정책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오색 케이블카가 불러온 도미노효과로 인해 전국적으로 31개 케이블카 사업이 추진됐다. 그러나 2016년 12월 촛불 국면 속에서 문화재관리위원회는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업을 위한 문화재현상변경안을 부결시켰다. 이에 따라 각 지역의 무분별한 케이블카 사업에도 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추진 절차가 중단됐을 뿐 백지화되지 않았던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업을 비롯한 산악개발사업들은 되살아났다. 2019년 문재인 정부 들어, 지리산 형제봉 일원에 산악열차, 모노레일, 관광호텔을 건설하겠다는 하동군의 '알프스 하동 프로젝트'를 정부가 '규제특례를 통한 산림휴양관광 시범사례'로 선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 사업 또한 지리산과 반달곰을 지키려는 시민들의 노력으로 2021년 연말 기획재정부가 '원점 재검토' 결정을 내리면서 중단됐다.

국립공원 설악산과 지리산까지 개발 대상지로 삼았던 산악개발정책이 이대로 폐기되는가 싶었지만 2020년 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오색 케이블카 사업 추진자인 양양군이 제기한 행정심판에서 양양군의 심판청구를 인용하면서 부활했다. 나아가 2022년 들어 윤석열 대통령이 '오색 케이블카 재추진'을 7대 공약의 하나로 약속했다. 새정부 출범 이후에는 환경부, 강원도, 양양군의 환경영향평가 보완 합의안이 나왔다. 사업 추진에 속도가 붙었다. 7월에는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최우선 추진과제로 오색 케이블카 사업 추진을 설정하고 2026년 운행 목표시한을 밝히면서 오색 케이블카 사업은 완전히 되살아났다. 더불어 전국을 무대로 하는 산악관광정책 또한 되살아났고 그 여파가 '지리산 산악열차 사업'으로 구체화 되어 국립공원 지리산을 덮치고 있다.

▲ 지난 9월 17일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과 '지리산사람들' 등 지리산권역 시민사회단체 회원, 활동가들이 지리산 산악열차사업 종점인 정령치휴게소의 전망대에서 펼친 '지리산산악철도백지화' 퍼포먼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 생태계, 법, 주민 무시하는 산악열차 사업

지난 10월 25일 남원시의회는 남원시가 제출한 '지리산 산악열차 시범사업 동의안'을 별도 토론 없이 전원 동의로 통과시켰다. 산악열차 시범사업은 국토부의 R&D 과제로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이 관리하고 철도기술연구원(이하 철도연)이 실행연구를 하는 사업이다. 철도연과 남원시는 육모정-고기삼거리-정령치에 이르는 13.22km 구간에 산악전기열차를 도입할 계획인데, 제안된 사업계획서를 보면 시범노선(고기삼거리에서 정령치 방향 1km) 사업 과정에서 2개 구간의 연장노선 또한 연계 수행하는 것으로 전체 시범사업(시범노선+2개 연장노선) 진행이 제시돼 있다. 철도연은 지난 6월에 남원시를 '산악열차 시범사업 우선협상대상기관'으로 선정한 바 있다.

11월 7일 오후 남원시청 앞. '지리산산악열차 반대대책위원회(위원장 장효수, 이하 대책위)'의 월요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지난 5월부터 매주 월요일 지리산 산악열차 도입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집회장에서 만난 김진수 대책위 정책위원은 인터뷰를 통해 "국립공원 지리산의 생태계와 법과 주민을 무시한 사업을 추진한다"며 남원시와 철도연을 비판했다.

ⓒ함께사는길

주민 교통편익 증진은커녕 이동권 제약만 불러올 것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선임활동가는 연대사를 통해 "현실화될 수 없는 허구적 개발이익에 눈멀어 국립공원 지리산을 훼손하는 사업을 추진하는 남원시의 맹성을 촉구"했다. "지리산 산악열차 사업은 치적용 대형 관광개발사업을 추진하려는 최경식 현 남원시장과 이에 동조한 남원시의회의 오판이 불러온 것"이며 "남원시는 산악열차가 동절기 주민 이동권 편익 향상에 기여한다고 홍보하고 있으나 실상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이 산악철도 노선과 겹치는 곳에 계획하고 있는 신설도로 개설이 추진되면 산악열차의 동절기 이동 편익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주민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시범노선이 시작되는 고기삼거리에서 만난 주천면 내기마을 주민 이윤성 씨는 "남원시가 주민들의 이동권 신장을 위해 이 사업을 한다고 홍보하는데 전혀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남원시는 '주천면 마을 주민들이 높은 고도와 급경사, 낙석위험구간의 위험도로를 이용하고 있어 강설과 급경사로 인한 미끄럼 사고와 낙석 위험이 커지는 겨울과 봄철에는 마을에서 시내로 바로 내려가지 못하고 운봉을 거쳐 여원재를 넘어 2배 거리를 돌아서 내려가고 있는데 산악열차가 들어오면 겨울에도 안전하게 빠른 길로 시내 접근이 가능하다.'고 주민들에게 홍보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윤성 씨는 현실을 모르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산악열차는 주천면 주민 입장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사업이다. 주민과 관광객 대부분이 남원에서 육모정을 거쳐 정령치로 올라가는 현재 도로를 타고 이동한다. 기존 운행되는 버스조차 연중 만차가 된 걸 본 적 없다. 산악열차가 들어온다고 관광객이 갑자기 불어나거나 주민 통행량이 늘어날 일도 없다. 차라리 사업 재정의 일부라도 위험도로를 피해 먼 길을 돌아가는 주민들의 교통보조비로 집행하는 게 훨씬 유용하며 지리산도 훼손하지 않는 방법이다."

▲ 산악열차 연장노선 1구간에 위치한 고기댐 앞에 나붙은 현수막. ⓒ함께사는길(이성수)

도미노 산악개발의 방아쇠, 지리산 산악열차를 멈춰라

"지리산에 고철덩어리만 남길 지리산 산악열차는 여기서 멈춰야 한다." 윤주옥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공동대표는 지리산 산악열차 시범사업 구간 13.2km 중 72%가 지리산국립공원에 속하며 특히 종점부인 정령치 쪽은 백두대간 핵심구역으로서 역사문화환경보존지구 1구역이어서 '절대 개발해선 안 될 곳'이라고 확언했다. 또한 "남원시가 개발 불가지역의 개발을 위해 1, 2, 3차로 사업을 쪼개고, 국비로 진행되는 1km 개발을 추진한 뒤 추가 개발 여지를 보려한다"고 비판했다. 윤 대표는 주민 대책위원들과 함께 11월 9일 국토부와 면담했다. 윤 대표는 "국토부에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을 통해 사업을 정밀검증하도록 요구했다"며 정부가 신속히 검증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고 밝혔다.

남원시의회의 만장일치 사업 동의에도 불구하고 11월 10일로 예정돼 있던 남원시와 철도연의 사업협약은 체결되지 않았다. 국토부가 반대여론이 잠잠해지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면 즉시 사업 정밀검증을 실시하고 사업 철회를 선언해야 마땅하다. 지리산 산악열차는 국립공원을 포함한 전국 산악 개발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 이미 지리산 산악열차 시범사업에 영향을 받은 구례, 하동, 함안, 산청 등 인근 지역 지자체의 산악개발계획이 들썩거리고 있다. 실제 남원시의회가 산악열차 동의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한 바로 다음날인 10월 26일 구례군은 지리산 케이블카 사업 재추진을 천명(연구용역비 2억 원 투입)했다.

"지리산의 생태계와 버보가 주민을 무시한 지리산 산악열차 사업"

[인터뷰] 김지수 지리산산악열차 반대대책위원회 정책위원

▲ 김지수 지리산산악열차 반대대책위원회 정책위원. ⓒ함께사는길(이성수)

- 지리산 생태계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리산 산악열차 시범노선 구간은 물론 그 연장구간은 멸종위기종인 천연기념물 지리산반달곰의 주요 이동경로와 겹친다. 또한 애초 남원시는 이 사업을 주민들에게 홍보하면서 "나무 한 그루 자르지 않고 시행"하겠다고 했다. 남원시가 2022년 4월 25일 제출한 '산악용친환경운송시스템 시범사업 공모 사업계획서'(이하 사업계획서)를 보면 시범사업 제안노선 전체가 '도로구역 내 기존도로 100%'로 돼있다. 헌데 기존도로의 폭은 8~10m밖에 안 된다. 시범노선은 최소 10.9m가 나와야 시공이 가능하다. 따라서 사업계획서상의 제안노선에 대한 설명에 나오는 '산림 훼손 없이 기존도로 100% 활용'은 불가능하다. 결국 남원시 홍보와 사업계획서의 내용이 다르다. 진실은 지리산을 훼손해야 산악열차 공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지리산 산악열차 사업은 자연공원법과 백두대간법, 문화재보호법 등을 엄밀히 적용했을 때 불가능한 사업이 아닌가

"그렇다. 그 법들이 국립공원 권역에서 개발사업을 인정하는 경우는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었을 때뿐이다. 따라서 개발금지 법규의 유권해석이 중요하다. 대책위가 산림청과 환경부에 유권해석을 문의한 결과, "최종 사업설계도가 들어와야 정확히 판단할 수 있으나 현재로서는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라 인정할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 나아가 시범노선 구간과 연결되는 연장노선 1구간은 자연보존지구를 포함하고 있고 백두대간법에 의해 보호받는 백두대간 핵심지역의 4km를 포함하고 있다. 관광시설 설치 자체가 불가한 구간인 것이다. 사업 추진 전 관련 유권해석을 받아야 했으나 이를 무시한 채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행정이 정상 작동한다면 멈출 수밖에 없고, 멈춰야만 하는 사업이다."

- 이 사업의 경제성 평가에 직결된 산악열차 운영계획이 부실하다는 건 무슨 말인가

"사업계획서에 기재된 하루 왕복 42회 운행은 불가능하다. 산악열차 4대가 하루 13시간 42회 왕복운행하는 것으로 계획돼 있다. 1회 운행시간은 80분이 걸리고 20분 동안 충전해야 한다.

1회 왕복에 총 100분이 소요되는 것이다. 상행 편도로만 따져보면 출발점-종착점 운행시간은 38분이 소요된다. 각 열차는 25분 간격으로 상행시킨다. 그런데 이런 계획은 상하차가 교행하는 구간을 만들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헌데 도로법과 궤도운송법에 따르면 교행구간 건설은 불가능하고 교차로만 허용하고 있다. 교행구간을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계획대로 운영할 경우 상하차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를 피하려면 4대의 운행차량과 1대의 비상용 차량 운행은 불필요하다. 2대를 가지고 40분 간격으로 운영(1~2분 오차 조정 추가)할 수밖에 없고 이때 1일 운행가능 횟수는 15~16회에 불과하다. 42회를 상정한 이 사업의 경제성 평가는 오류일 수밖에 없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이 강행된다면 일개 사업이 법의 개정을 전제로 기획됐다는 황당한 얘기밖에 안 된다. 매일 42회 운행이 어렵다면 이 사업은 경제성 평가, 재무성 평가를 다시 받아야 한다."

- 남원시가 국비 지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중점 홍보하는데 지역경제에 보탬이 된다고 보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사업구간에 삼곡교를 비롯한 3개 교량이 있다. 전북도 도로교통과에 문의해보니 '교량 통행 허용중량은 기본적으로 40톤을 초과하면 안 되고 110%인 44톤까지는 허용된다'고 한다. 산악열차는 46톤이고 만차 중량은 56톤에 달한다. 즉 산악열차가 운행하려면 허물고 새 철교를 놓거나 대대적인 교량보강공사를 해야 한다. 이 예산은 사업계획에 잡혀 있지 않아 시민 혈세로 감당해야 할 몫이다. 또 사업구간 전체는 낙석위험구간이다. 낙석대비시설을 해야 한다. 이 예산도 계획에 빠져 있다. 더 놀라운 건, 남원시와 철도연이 합의한 내용이다. 철도연이 실험운행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해당 사업시설 철거 책임은 철도연이 지되, 실험운행에 성공했지만 사업이 법에 저촉돼 중단될 경우에는 남원시가 철거비용을 내기로 했다고 한다. 이미 법에 저촉된 사업이 명백해진 상황에서, 사업이 이대로 추진돼 산이 훼손되고 궤도 등 시설이 들어선다면 그 복원과 철거를 남원시가 혈세로 책임져야 할 판이다. 한편 278억 원의 국비 지원을 받았다는 내용도 꼼꼼히 살펴보면 오히려 남원시가 혈세로 철도연의 프로젝트를 지원한다고 판단해야 옳다. 278억 원 가운데 198억 원은 철도연의 실험운행이 가능한지 알아보는 연구비다. 시로 들어오는 건 시범노선에 대한 80억 원뿐으로 이 재원조차 남원시가 수령해서 철도기술연구원의 실험운행을 보조하는 데 쓰라고 지원된 것이지 남원시가 자의적으로 용처를 정할 수 있는 지원금이 아니다. 그런데 철도연은 이와 별도로 남원시에 33억 원의 추가적 실험운행 지원금을 요청했다. 이 비용은 남원시가 자력으로 마련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계획된 예산을 초과시 그 추가예산도 남원시가 부담해야 한다. 사실상 국비 지원사업이 아니라 시비로 철도연의 실험운행을 보조해야 하는 사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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