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연차도 못쓰는데…'추가근로 적립, 휴가로 쓰라'는 정부

비정규직 2명 중 1명 "법적으로 보장된 유급 연차휴가도 자유롭게 못 써"

비정규직 노동자 2명 중 1명은 현재 법적으로 보장된 유급휴가도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고용이 불안한 상태이기 때문에 사업주의 눈치를 보느라 이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이른바 ‘노동개혁’ 방안 중 하나로 내놓은, 노동시간을 현재보다 늘리고 추가 노동시간에 대해서는 이를 ‘적립’했다가 대체휴가로 쓸 수 있게 한다는 구상은 탁상공론이라는 지적이 예상된다. 

15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발표한 직장인 1000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47.3%가 유급연차휴가를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고 답했다. 사업장의 규모가 작고 임금이 적을 수록 연차를 더 쓰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49.4%, 월 150만원 미만 임금노동자는 55.6%도 유급연차휴가를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고 답했다.

반면 고용이 안정적인 반면 정규직 노동자의 81.3%는 '자유롭게 사용한다'고 했다. 30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84.0%), 월 500만원 이상 임금노동자(90.2%) 등 회사 규모가 크고 임금이 많을수록 휴가를 쓰는 데 제약이 적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명절을 포함한 공휴일 유급휴가는 물론 여름휴가·유급병가·출산휴가도 제대로 쓰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정규직(84%)·30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77.0%)·월 500만 원 이상 임금노동자(87.4%)는 '명절 등 공휴일 유급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다'는 질문에 75%가 넘게 긍정 답변을 했고, 비정규직(46%)·5인 미만 사업장(51.9%)·월 150만원 미만 임금노동자(35.5%)는 긍정 답변을 보인 비율이 최대 50%넘게 차이났다.

출산휴가·육아휴직도 마찬가지였다. 여성 직장인의 44.7%, 비정규직 54.3%, 월 150만 원 미만 임금노동자 65.3%가 ‘출산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한다’고 응답했다.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는 답변은 여성 50.2%, 비정규직 56.0%, 5인 미만 사업장 66.7%, 월 150만 원 미만 임금노동자 62.9%였다.

▲2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 관계자들이 노동시장 이중구조 피해자 비정규직 오체투지 기자회견을 마치고 오체투지를 하는 한 노동자의 그림자가 도로에 비치고 있다. 이들은 노조법 개정 등을 촉구하며 29일까지 경총, 마포역 등을 거쳐 국회 앞까지 오체투지를 이어나간다. ⓒ연합뉴스

이같은 설문조사 결과는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의 전제조건이 성립하지 않음을 방증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현재 주 52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는 노동시간을 주 69시간까지, 휴일수당을 받고 일하면 주 80.5시간까지 가능케 하도록 하는 '노동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 ‘노동개혁’ 또는 노동시장 개편의 전제조건은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로 발족한 전문가 기구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제시한 권고문에 적힌 대로 "노사 당사자의 이해관계는 '자율'의 힘으로 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장노동시간의 관리단위를 월 단위로 확대하더라도, 근로자 대표 혹은 개별 노동자의 동의를 얻어 실시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유명무실한 근로자 대표 제도를 정착할 방안이 병행되지 않는 데다, 노조 조직률이 14.2%에 불과한 한국에서 다수 사업장의 경우 노동시간 관리는 사용자의 작업지시권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된다는 현실을 간과한 ‘탁상공론 권고안’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노동계의 '장시간 노동'에 대한 우려와 비판에 대해,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노동자가 원하는 경우 연장·야간·휴일노동 등에 대한 보상을 시간으로 저축해 휴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을 권고하기도 했다. 추가 노동시간을 은행 예금이나 마일리지처럼 차곡차곡 모아놨다가 노동자가 원할 때 몰아서 장기 휴가로 쓸 수 있다는 구상이다.

직장갑질 119 장종수 노무사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근로시간 저축계좌제의 취지는 추가 노동 시간을 휴가로 저축했다가 개인의 선택으로 다른 시기에 휴가로 사용한다는 것인데, 이번 통계에서 보듯이 비정규직 단시간 근로자는 휴가를 선택해서 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탁상공론에 불과한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장 노무사는 "마치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도입해서 한시적 기회를 통해 장기적으로 쉴 수 있거나, 휴가를 갈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실상은 노동자들을 장시간 노동에 노출시키게 하기 위한 것"이라며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는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권순원 숙명여자대학교 교수(왼쪽 두 번째)가 12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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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

프레시안 박정연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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