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이 말한 중대선거구제, '공천 혁신' 빠지면 사상누각

[최창렬 칼럼] 중대선거구제, 정치개혁 만능키라는 착각

윤석열 대통령과 김진표 국회의장의 '중대선거구 선거제도 개편 필요' 발언 이후 선거제도와 정치개혁 담론이 부상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치가 문제 해결 능력을 상실한 채 권력 탐닉의 도구로 전락한 현실에서 정치는 당연히 개혁 대상이다. 그러나 중대선거구제 개편이 정치개혁의 본질인 양 오도(誤導)되선 안 된다. 몇 가지 이론적 쟁점들이 있다.

첫째, 선거론의 관점에서 현재의 소선거구와 단순다수대표제가 결합되어 있는 선거제도는 승자독식을 강화한다. 게다가 사표(死票) 발생으로 유권자의 정치 참여를 결과적으로 제약한다. 또한 거대양당에 의한 기득권 정치를 타파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따라서 중대선거구제 개편은 적어도 형식논리상으로는 논의할 가치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둘째, 대통령제와 중대선거구는 썩 잘 어울리는 조합으로 볼 수 없다. 중대선거구제를 통하여 제3당을 육성해 정치양극화를 완화시키겠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중대선거구가 반드시 제3당에 유리하다고 볼 수도 없다. 여당과 제1야당의 동반 당선을 가져오고 정치는 더욱 기득권화할 수도 있다.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 때 중대선거구제를 실시했으나 민주화 이후 최초의 선거인 1988년 13대 총선에서 소선거구로 바꾼 이유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셋째, 정치개혁은 권력구조, 선거구제, 비례대표와 공천제도, 정당민주주의 등 층위가 다른 변수와 제도들이 입체적으로 혁신될 때 가능하다. 특히 내년 4월 22대 총선을 앞두고 올해 4월까지 선거구제 개편을 마무리할 수 있을지 시간적인 한계도 존재한다. 

넷째, 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 등 정치관계법들은 정치인들에게 사활적인 제도들이기 때문에 선거를 불과 1년 앞둔 시점에서 여야의 정파적 이해가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선거 때까지 시간이 많으면 논의가 여야의 정치 셈법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으나 지금은 '무지의 베일'이 작동하기 어려운 시점이다.

다섯째, 국회의원들이 헌법기관으로서 양심과 소신을 가지고 의정 활동과 정당 활동을 할 수 있는 구조가 되어 있느냐를 살펴봐야 한다. 친윤, 비윤, 친명, 비명은 정치철학과 지향을 공유하기보다 정치적 친소관계에 따라 맺어진 관계들이다. 정당의 파워그룹이 공천권을 장악하고 이를 의식하는 국회의원들은 강성 발언과 반정치적 발언으로 진영 내에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려 한다. 이는 곧 공천과 연결되고, 극성 지지층과 맞물리면서 정치는 자연스럽게 극한의 정치를 구성하게 된다.

무당층, 중도성향의 스윙보터와 수도권이 선거의 승패를 가르지만 일상의 정치는 팬덤(열성 지지층)의 무비판적이고 맹목에 가까운 지지를 결집하기 위한 정당과 의원들에 의해 작동된다. 이러한 구조에서 정치적 소명의식이 들어설 공간은 없다. 정치는 정치를 업으로 하는 정치기능인들이 장악하고, 갈등과 이해관계의 조정이라는 정치 본령은 설 땅을 잃게 된다. 이러한 부분이 한국정치 퇴행의 원인이요, 한국정치의 핵심 규정 요소다.

권력구조 개편이라는 거대 정치담론은 '87체제'의 수명이 다했다는 현실에서 비롯되지만 정당의 공천제도라는 미시적 차원의 개혁이 안 된 상황에서 거대담론은 감히 생각도 하기 어렵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독일식의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논의됐지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기이한 제도로 전락했고 결국 위성정당의 꼼수를 동원되면서 거대양당제는 더욱 공고해졌다. 중대선거구제 개편이 이러한 전철을 밟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야는 정치적 유불리의 관점에서 접근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개혁은 우선 공천제도 혁파에서 출발해야 한다. 당 주류가 공천권을 장악하고 공천에 포획된 정치인들에게 정치 본연의 공적영역에서의 활동을 기대한다는 자체가 무리다.

민주주의는 사회적 갈등이 제도권 내에서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해결되는 상황을 지향하는 체제이다. 국민의 정치적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기 위해서는 정당의 주요기능 중 하나인 후보자 추천 즉 공천이 정당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공천이 역학관계나 세력관계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어떠한 권력구조나 선거구제 하에서도 정치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공천을 따내기 위하여 소신과 양심을 팽개친 채 상식과 보편에 반하는 발언을 일삼고 당 주류의 심기를 살피는 의원들의 퇴출이 선행될 때 다양한 제도 개혁이 의미가 있다. 다수결 정치에서 합의제 민주주의로 가기 위해 지금의 공천제도는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

▲ 국회 본회의장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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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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