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적"에는 "명백한 적"으로, "전쟁 준비"에는 "전술핵 다량생산"으로

[정욱식 칼럼] '강 대 강'으로 치닫는 남북관계, 무엇이 중요한가  

남북관계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다. 남북관계 악화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이번에는 심상치 않은 기류가 다방면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우선 공식적인 남북대화는 2018년 12월 이래 중단된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데, 이는 1971년 이래 최장기에 해당된다.

설상가상으로 남북한 당국 사이의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 '계획 대 계획'도 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5월 출범 이후 북한 정권과 북한군을 '주적'으로 명시할 뜻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그러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월 1일 보도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 전원회의 확대회의' 보고를 통해 남한을 "우리의 명백한 주적"으로 규정했다.

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9일에 북한의 무인기 도발을 강력히 규탄하면서 "우리가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압도적으로 우월한 전쟁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 위원장도 "전술핵무기 다량생산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부각시켜주고 나라의 핵탄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핵무력 강화 방침을 거듭 밝혔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말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핵탄두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겠다는 방침을 밝혔다.김 위원장은 전원회의 보고에서 "남조선괴뢰들이 의심할 바 없는 우리의 명백한 적으로 다가선 현 상황은 전술핵무기 다량 생산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부각시켜주고 나라의 핵탄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일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윤 대통령이 '북핵을 두려워 말라'는 취지로 말하자, 김 위원장은 '이래도 두렵지 않느냐'고 맞받아친 셈이다. 그러자 국방부는 "북한이 만일 핵사용을 기도한다면 김정은 정권은 종말에 처하게 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서로가 주먹을 불끈 쥐고 '나를 건들면, 너를 끝장내겠다'는 식의 극단적인 설전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말뿐만이 아니다. 국방부는 12월 말에 공개한 '2023-2027 국방중기계획'을 통해 대규모 군비증강 계획을 밝혔다. 특히 "북한의 핵·대량살상무기(WMD) 위협에 대응해 압도적인 '한국형 3축 체계' 능력을 확보"하겠다며, 킬 체인(Kill Chain)·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대량 응징보복(KMPR) 분야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미 5대 전략무기를 중심으로 핵무력 증강에 박차를 가해온 북한은 최근 '초대형 방사포'에 방점을 찍고 있다. 북한은 2022년 마지막날과 2023년 첫날 이틀 연속 '600mm 초대형방사포'를 발사했는데, 이 무기가 대남용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정은 위원장은 초대형 방사포가 "남조선 전역을 사정권에 두고 전술핵 탑재까지 가능한 것으로 하여 전망적으로 우리 무력의 핵심적인 공격형 무기로서 적들을 압도적으로 제압해야 할 자기의 전투적 사명을 수행하게 된다"고 말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한꺼번에 30문이나 인민군부대들에 추가인도하게" 되었다고 밝혀, 기존 물량에 더해 30문이 실전배치되고 있다는 점을 강력히 시사했다.

이와 더불어 북한은 "우리의 핵무력은 전쟁억제와 평화안정수호를 제1의 임무로 간주하지만 억제 실패시 제2의 사명도 결행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으며 제2의 사명은 분명 방어가 아닌 다른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적대세력"이 재래식 무기를 동원해 중대한 공격을 가해오거나 그 징후가 명확하다고 판단하면,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위협을 거듭 확인한 것이다.

이처럼 남북한 당국이 위험수위를 넘다드는 설전을 벌이고 한 치도 밀리지 않겠다며 군비경쟁에 나서는 사유는 '힘으로 평화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과시하기 위함일 것이다. 남북한 지도자 모두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격언을 신조처럼 떠받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면 전쟁을 막고자 하는 말과 행동이 전쟁을 초래한 경우는 여러 차례 있었다. 특히 오늘날의 남북관계는 작은 불씨 하나가 큰불을 야기할 수 있을 만큼 메말라 있다.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전단과 무인기는 이미 확인된 불씨이고, 그밖에도 위험한 불씨는 서해 북방한계선(NLL)부터 양측 동해상에 떨어지는 포탄과 미사일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잠복해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남북한 당국은 말부터 자제할 줄 알아야 한다. 나의 안보를 튼튼하게 하겠다며 취하는 조치가 상대방의 반작용을 야기해 나의 안보도 불안하게 만드는 '안보 딜레마'의 속성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는 한반도 주민들의 안위를 지키는 데에 있다는 점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윤석열(왼쪽)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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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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