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꿈틀대는 미국발 '북핵 비밀 의혹'

[정욱식 칼럼] 협상 엎어뜨렸던 북한에 대한 의심…이번에는?

한반도 정세가 중대한 전환점에 설 때마다 어김없는 등장하는 것이 있다. 바로 미국발 비밀 북핵 의혹이다.

그 기원은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남북관계는 물론이고 북일 관계도 급물살을 타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의 중앙정보국(CIA)과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DIA)은 북한의 비밀 핵무기 개발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를 "기만 계획"이라고 불렀다.

핵심적인 요지는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신고한 플루토늄 90g은 거짓이고 북한의 플루토늄 보유량은 핵무기 1~2개 분량인 10kg 정도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2008년 미국은 북한이 건네준 핵 일지를 검토한 결과 북한이 1992년에 신고한 게 정확했다는 잠정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미국의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강온파 사이에 첨예한 대결이 펼쳐졌던 1998년에는 금창리 핵 의혹 시설 논란이 불거졌었다. 미국의 정보기관이 <뉴욕타임스>에 첩보를 흘렸고 이 매체는 이를 특종으로 보도했었다. 하지만 미국이 금창리 현장을 방문한 결과 '텅 빈 동굴'로 판명된 바 있다.

2002년에 미국은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HEU) 의혹을 제기했다. 남북관계가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상 처음으로 북일 정상회담이 성사돼 '평양 선언'이 채택된 때였다.

하지만 미국은 실체가 불분명한 HEU를 근거로 1994년 제네바 합의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와 북일 관계에도 제동을 걸려고 했다. 당시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의도는 존 볼턴 국무부 차관(현재는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발언 속에 잘 담겨 있었다. "HEU는 제네바 합의를 깨부술 해머다."

당시 북한의 우라늄 농축 의혹은 여전히 논란거리이지만, 분명한 점은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친서를 부시 대통령에게 보내려고 하는 등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강력히 희망했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는 편지조차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중유 제공도 중단했을 만큼 강경한 자세로 일관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로 인해 제네바 합의는 깨졌고 북한은 봉인되었던 플루토늄 프로그램을 재가동하고 말았다.

2007년에는 북한의 시리아 핵 개발 지원설이 불거졌다. 이때에는 부시 행정부가 뒤늦게 북한과의 직접 협상을 선택해 2.13 합의와 10.3 합의가 나오는 등 북미관계와 6자회담이 선순환을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딕 체니 부통령 등 잔존 네오콘은 이스라엘이 공습한 시리아의 의혹 시설은 핵시설이고 이건 북한이 지어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실은 오리무중에 빠졌고 협상 동력은 급격히 위축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 역시도 미국 강경파의 농간일 공산이 크다.(☞ 관련 기사 : 북한은 어떻게 악마화 되었나)

또 불거진 비밀 핵!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주류 사이의 설전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트럼프가 한미연합훈련 중단에 이어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변경까지 시사하면서 미국 주류의 반발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 와중에 미국의 일부 정보기관과 언론은 북한의 비밀 핵 의혹을 또다시 제기하고 나섰다.

NBC 방송은 6월 29일 정보당국의 보고서 내용을 인용해 "북한이 최근 몇 달간 여러 곳의 비밀 장소에서 핵무기의 재료인 농축 우라늄 생산을 늘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음날 <워싱턴포스트> 역시 복수의 미국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DIA는 북한이 미국 정부를 속이고 핵탄두와 미사일, 핵 개발 관련 시설의 수를 줄여서 신고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DIA는 북한의 핵 보유량을 65개 정도로 추산하고 있는 반면에, 북한은 이보다 훨씬 적게 신고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은 북한이 이미 공개한 영변의 우라늄 농축 시설 이외에 비밀 시설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는 정보 분석에 근거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의 정보기관이 북한이 '강성'으로 불리는 지역에 2010년부터 대규모의 지하 우라늄 농축 시설을 가동해왔다고 여긴다고 전했다. 북한의 핵보유량이 65개에 달한다는 추정은 북한이 이곳을 포함한 1-2곳의 비밀 우라늄 농축 시설에서 핵분열 물질을 생산했을 것이라는 가정에 기반을 둔 것이다.

또 강경파의 농간?

북한이 미공개 우라늄 농축 시설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는 의혹은 이전에도 지속적으로 제기됐었다. 하지만 그 규모가 공개된 영변 시설의 2배 이상이라는 주장이, 그것도 정보기관에서 제기된 것은 예사롭지 않다. 북한의 비밀 핵 프로그램의 실체가 드러난 것일 수도 있지만, 군부를 비롯한 미국 강경파들의 언론을 통한 반격이 본격화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자의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하지만, 후자의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앞선 사례들을 종합해보면, 미국의 강경파들은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마다 북한의 비밀 핵 의혹을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의혹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었지만, 그 목적은 대부분 달성되기도 했었다.

이러한 역사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두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하나는 한반도 평화를 달가워하지 않는 미국의 강경파들을 예의주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 언론의 객관적이고 균형적인 보도도 대단히 중요하다. 또 하나는 최대 관건으로 부상하고 있는 북한의 핵 신고의 완전성과 정확성을 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방법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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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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