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대응한 핵무장 어렵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정욱식 칼럼] 한국의 핵무장론, 알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한국의 핵무장론과 관련해 확실한 것도 있고 불확실한 것도 있다. 이걸 구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선 한반도 비핵화 달성이 불가능해졌다는 점은 거의 확실해졌다. 필자는 비핵화에 대한 희망이 절정에 달했던 2018년 말에 <비핵화의 최후>라는 책을 통해 비핵화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 바 있다. 그리고 2020년 이후 북한은 안보는 핵으로, 경제는 자력갱생으로, 외교는 중국과 러시아 중심으로 가고 있다.

비핵화의 전망이 매우 어두워진 만큼, 한국도 핵무장을 통해 자구책을 마련하자는 주장을 일견 이해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런데 핵무장이 자구책이 될 수 있을까? 그건 안 해봐서 모른다.

핵무장론자들이 주장하는 최선의 시나리오는 북한이 최대 4천개의 핵무기 개발 잠재력을 갖고 있는 남한과의 핵군비경쟁의 무모함을 깨닫고 핵군축 협상에 나오는 것이다. 과연 북한이 이런 선택을 할까? 이것도 알 수 없는 영역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북한은 세계 최강의 핵보유국인 미국의 위협에 핵무력 강화로 맞서왔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는 남한이 핵무장에 나서면 북한은 더더욱 핵무력 강화에 나서 핵전쟁의 공포가 한반도의 '뉴 노멀'이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해준다.

미국의 입장도 확실한 게 있고 알 수 없는 게 있다.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점은 확실하다. 그래도 한국이 핵무장에 나선다면 미국은 묵인해줄까? 그런 모른다. 한국의 핵무장을 달가워하지 않지만, 매우 중요한 동맹국인 한국을 버리는 선택을 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미국의 입장에서 최선은 무엇일까? 한국의 핵무장을 만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국이 이런 수단이 있느냐의 여부이다. 그런데 있다!

미국이 한국을 압박하거나 만류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다. 우선 한국이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추출하려면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해야 하는데, 미국이 여기에 동의해주지 않는 방법이 있다. 미국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한국이 핵무장에 나선다면? 아마도 미국 대통령은 직접 한국 대통령을 만나거나 특사를 보내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한국이 우리의 안보 공약을 믿지 않고 핵무장에 나선다면, 우리로선 한미동맹 자체에 대해 재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동맹은 성립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도 한국이 고집을 꺾지 않는다면, 미국은 한국을 유엔 안보리에 회부해 압력을 가할 수도 있다. 또 한국에 우라늄을 수출하는 나라들을 회유·압박해 금수 조치를 취하게 할 수도 있다. 압박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 그럼 우리가 핵무기를 한국에 재배치할게'라고 회유할 수도 있다.

한국 핵무장론의 가장 큰 근거로 제시되고 있는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신뢰성은 어떨까? 미국이 과연 서울을 구하기 위해 미국 대도시에 핵폭탄이 떨어질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할까? 여기에도 확실한 게 있고 모르는 게 있다. 확실한 것은 미국이 핵우산을 포함한 확장 억제를 굳게 약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북한이 '한반도 유사시 미국이 개입하면 미국 대도시를 핵미사일로 날려버리겠다'고 협박하면, 미국은 어떻게 응수할까? '너희 마음대로 하라'며 발을 뺄까? '미국이나 미국의 동맹국들에게 핵무기를 사용하는 순간 너희는 끝장날 것'이라며, 한반도 안팎에 전략 자산을 대거 투입할까? 미국이 후자의 선택을 할 것이라는 점도 확실하다.

물론 위협과 실제 행동은 별개일 수 있다. 미국이 핵무기를 이용해 보복에 나선다는 것은 고도의 정치적인 결단을 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의 핵 독트린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팩트는 미국이 역사상 핵 선제공격을 포기한 적도, 적대국이 미국이나 동맹국을 상대로 핵공격에 나서거나 그 징후가 분명할 때 압도적인 핵 공격에 나설 것이라는 것도 포기한 적이 없다는 데에 있다.

물론 유사시 미국이 이런 선택을 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미국의 핵전략은 이런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북한이 남한에 핵폭탄을 떨어뜨릴 경우 미국이 북한에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까 봐 걱정해야 할 것이 아니라 미국이 선제적으로 혹은 과도하게 핵을 사용해 대재앙을 초래할 가능성을 걱정해야 하는 건 아닐까?

▲조선중앙통신은 1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2월 15일 오전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대출력고체연료발동기 지상시험을 지도했으며 시험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질문을 달리 해보자. 미국의 핵보복 위협을 받은 북한은 어떤 선택을 할까? 미국의 경고와 위협을 허풍이라고 간주하고 미국이 보복에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에 기대어 한국에 핵 공격을 감행할까? 북한이 생존을 위해 만들었다는 핵무기를 이런 식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가정인가?

이것은 마치 10발의 총알을 넣을 수 있는 회전식 연발 권총에 9발이 장전된 상태에서 벌이는 '러시안 룰렛'과도 같은 일이다. 북한 지도자가 과연 본인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기겠는가?

핵무장론자들이 답해야 할 질문은 또 있다. 미국은 냉전시대에 최대 4만개의 핵무기를 보유한 소련을 상대로도 동맹국들을 보호하기 위해 핵우산을 펼쳤는데, 소련보다 훨씬 약한 북한을 상대로 핵우산 펼치기를 주저할까? 세계 최강이자 태평양 건너에 있는 미국의 대북 핵 억제가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장에 따른 대북 억제보다 약하다고 믿을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기술적인 차원에서도 한국의 핵무장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점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도 확실한 게 있고 불확실한 게 있다. 확실한 것은 한국에는 우라늄 광산은 물론이고 핵무기 물질을 생산할 수 있는 우라늄 농축 시설이나 재처리 시설도 없다는 점이다. 핵무장론자들은 한국이 1만톤에 이르는 사용후 핵연료를 갖고 있고, 여기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하면 핵무기 수백·수천개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게 가능할지는 안 해봐도 모른다. 다만 참고할 만한 팩트는 있다. 플루토늄을 대량으로 추출하려면 대규모 재처리 시설이 필요한데, 한국은 재처리 시설을 상용화해본 경험이 없다. 한국이 연간 수백㎏의 플루토늄을 추출하려면 일본 롯카쇼무라 재처리 시설 정도의 규모로 지어야 하는데, 일본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애초 이 시설은 1993년에 착공돼 1997년에 완공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26차례나 연기를 거듭한 끝에 아직도 완공되지 않았다. 비용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최초 건설비는 7조 원 정도로 추산되었지만, 최근에는 30조 원 이상으로 늘어났다. 여기에 40년 간의 운영비를 합치면 총비용은 140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밖에도 한국의 핵무장과 관련해 짚어봐야 할 문제들은 많다. 혹자들은 레이저를 이용한 우라늄 농축 방식으로 빠른 시일 안에 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방식은 원심분리기 방식에 비해 가성비가 크게 떨어진다. 레이저 농축 기술이 농축 속도를 높여 극소량의 고농축 우라늄을 추출할 수는 있지만, 많은 양을 생산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참고로 한국이 2000년에 레이저를 쏴서 추출한 고농축 우라늄은 0.2g이었던 반면에, 1개의 핵폭탄을 만드는 데에는 고농축 우라늄 20㎏ 안팎이 필요하다.

핵실험 없이도 핵무장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검증되지 않은 것이다. 미국처럼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모의 핵실험이 가능해지려면 실제 핵실험을 통해 다량의 데이터를 확보해야 한다. 핵실험 경험도 전혀 없고 관련 데이터도 전무한 한국이 과연 '실험 없는 핵무기'를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까닭이다.

더구나 현대식 핵무기는 탄도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소형화가 필수적이고, 소형화는 실험을 통한 데이터 축적이 전제되어야 한다. 물론 핵실험 없이도 핵무기를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핵 억제의 핵심인 '신뢰성'을 저해한다. 핵실험을 통해 '터진다'는 확신을 상대방에게 심어줄 때 핵 억제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다. 과연 좁은 영토에 5000만 명이 모여 사는 대한민국에서 지하 핵실험장을 건설하고 실제로 핵실험을 할 수 있을까?

재처리 공장도 마찬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재처리 대상인 사용후 연료와 재처리 결과물인 플루토늄 및 잔여 고준위 폐기물에는 엄청난 양의 방사성 물질이 담겨 있다. 이에 따라 사고 발생이나 피격 시 대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 해당 지역 주민들과 지방자치단체들의 격렬한 반발을 일으켜 입지 선정부터 상당한 진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핵무장은 가능하지도, 타당하지도 않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핵무장 시도가 '칼자루'를 손에 쥐는 것이 아니라 '칼날'을 손에 쥐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럼 대안이 뭐냐는 반론이 나올 것이다. 반핵평화 활동가로서 비핵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할 수밖에 없지만, 이게 공허한 주장이라는 점도 잘 알고 있다. 다만 우리가 비핵화를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그렇지 못했다면 앞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토론의 여지가 많다는 생각이다.

기실 군사적인 차원의 북핵 대처는 이미 지나치리만큼 작동하고 있다. 세계 6위의 군사력을 보유한 한국과 세계 최강인 미국, 그리고 재무장에 나선 일본이 손을 잡고 대북 억제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안을 느끼면서 한국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결코 군사력이 약해서가 아니다. 북핵에 대한 과도한 피해망상과 미국 핵전략에 대한 무지에 가까운 오해, 그리고 한국의 비핵 첨단 능력에 대한 평가절하가 그 주된 원인이다.

하여 북핵 대처의 출발점은 지피지기(知彼知己)에 있다. 더 나아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관점에서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의 본질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도 요구된다. 역지사지의 관점을 강조한 언론도 있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이 아니라 미국의 <AP> 통신은 2010년에 이런 논평을 내놓은 바 있다.

"1950년대부터 오바마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반복적으로 북한에 대해 핵무기 사용을 고려해왔고, 계획해왔으며, 위협해왔다. (중략) 미국의 핵 위협은 북한에게 핵무기를 개발·보유할 구실을 주고 있다. 북한은 이러한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 이글은 <피렌체의 식탁>에 기고한 것을 동의하에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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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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