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미 정부에 묻는다, 전쟁 위기를 수습할 대책은 있는가?

[정욱식 칼럼] 2022년 가을 위기에 던지는 질문

올 가을 들어 한-미 동맹과 북한은 한반도 안팎에서 전시를 방불케 하는 무력시위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여러 사람들은 '이러다가 전쟁이 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는데, 남-북-미 당국은 힘만이 살길이라며 군사력과 사용 의지를 과시하고 있다.

이에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한-미가 "정상화"라는 이름 하에 강화하고 있는 연합훈련과 군비증강은 한반도의 안보를 '안정화'시키고 있는가? 과거에는 한-미 연합훈련 기간에 군사적 맞대응을 자제했던 북한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군사 행동에 나서고 있는 원인과 배경은 무엇인가?

올 가을 위기가 달라진 한-미 동맹과 북한을 보여준 것이라면, 한반도 주민은 상시적이고 일촉즉발 위기 속에서 살아야 하는가? 북한의 도발적인 언행은 스스로 표방해온 '인민대중제일주의'와 어울리는 짝인가? 그리고 최근의 북한의 행동이 그들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얼마나 효과적인가?

남-북-미는 이 위기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의지와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가장 중요하게는 대결로 치닫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대화로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렇게 제기된 중요한 질문에 대하여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많은 찬반과 논쟁이 있다.

2022년 가을 위기가 보여준 것은?

가히 역대급 무력시위 공방전이었다. 올해 가을 한-미 동맹과 북한이 서로를 향해 벌인 군사훈련을 두고 하는 말이다. 9월 23일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가 이끄는 항모강습단의 부산 입항에서부터 11월 5일 한-미 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스톰'이 끝날 때까지 43일간의 양측 무력시위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자제의 미덕이 실종되었다. 한-미 동맹과 북한은 한 치도 밀리지 않겠다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군사적 대응과 맞대응을 반복했다. 10월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미는 "국가애도기간"에도 불구하고 240여 대의 군용기를 동원해 비질런트 스톰을 강행했고, 북한은 애도 표시는 고사하고 수십·수백 발의 미사일과 포탄을 동해와 서해 공해상에 쏘아댔다.

▲한미 공군의 대규모 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스톰' 훈련이 진행 중인 2일 오후 경기도 오산시 주한미공군 오산기지에 전자전기 EA-18 그라울러가 비행하고 있다. 북한은 2일 분단 이후 처음으로 동해상 북방한계선 이남 우리 영해 근처로 탄도미사일 도발을 감행했으며, 이날에만 10여 발의 각종 미사일을 발사했다. ⓒ연합뉴스

처음 벌어진 일들도 있었다. 북한은 9월 25일 새벽에 서북부 저수지 수중발사장에서 전술핵 탑재를 모의한 탄도미사일 발사훈련을 진행했는데, 발사지가 바다가 아닌 저수지인 것은 처음이었다. 9월 30일부터는 한-미-일이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를 가상한 대잠수함 훈련에 돌입했는데, 동해상에서 한-미-일 군사훈련이 실시된 것도 처음이었다.

해상훈련을 마치고 귀항하던 미국의 항모강습단이 뱃머리를 돌려 동해로 재진입해 또다시 연합훈련에 나선 것도, 극심한 유류난에 시달려온 북한이 100대가 넘는 군용기를 동원해 공군훈련을 실시한 것도 처음이었다. 11월 초에 북한이 북방한계선(NLL) 이남 동해상의 공해로 미사일을 쏜 것도, 이에 대응해 남한 전투기들이 NLL 이북의 공해상으로 미사일을 쏜 것도 처음이었다.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북한이 크게 달라졌다는 점에 있다. 한-미, 혹은 한-미-일 연합훈련에 대한 북한의 반발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올 가을 이전까지는 중단 요구와 외교적 비난에 초점을 맞췄었다.

북한이 '을지 자유의 방패(UFS·을지프리덤실드)' 기간에 군사적 대응에 나선 것도 8월 17일에 평안남도 온천비행장 일대에서 서해상으로 순항미사일 2발을 발사한 게 유일했다.

특히 UFS의 본 연습이 진행된 8월 22일부터 9월 1일까지는 군사적 대응을 자제했었다. 하지만 9월 하순부터는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북한이 한-미의 군사 행동에 일일이 군사적 맞대응에 나선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달라진 북한의 행보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북한이 9월 8일 최고인민회의 법령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정책에 대하여'를 채택한 것이 '터닝 포인트'였다.

이와 관련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미제가 일방적으로 핵위협을 가해오던 시대를 끝장냈다"며, 한-미의 군사 행동에 대해 맞대응 의지를 강력히 피력했다. 이는 "핵무력" 건설과 법령화를 통해 '힘의 균형'을 이뤄냈다는 자신감의 발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1월 1일 박정천 조선노동당 비서가 북한의 군사적 맞대응 의지를 "단지 위협성 경고로 받아들인다면 그것부터가 큰 실수로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한반도 전쟁과 민생 위기는 '뉴 노멀'?

문제는 2022년 가을 위기가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는 데에 있다. 한-미 동맹과 북한의 입장을 살펴보면 이러한 우려가 결코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정은은 10월 초순에 "적들과 대화할 내용도 없고 또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면서 "핵전투무력을 백방으로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 북한 외무성은 11월 4일에 "지속적인 도발에는 지속적인 대응이 뒤따르기 마련"이라며, 한-미의 군사 행동에 대해 "끝까지 초강력 대응으로 대답할 것임을 다시 한번 명백히 천명"했다.

한-미 역시 '강 대 강'의 의지를 재차 피력했다. 11월 3일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안보협의회(SCM)를 개최하고 공동성명을 채택했는데, 여기에는 추가적인 상황 악화를 초래할 수 있는 우려스러운 내용들이 여러 가지 담겨 있다.

우선 "오스틴 장관은 미국이나 동맹국 및 우방국들에 대한 비전략핵(전술핵)을 포함한 어떠한 핵공격도 용납할 수 없으며, 이는 김정은 정권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미국의 전략자산을 적시적이고 조율된 방식으로 한반도에 전개"하기로 했다.

안 그래도 북한은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에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여왔다. 그런데 미국이 핵태세검토(NPR) 보고서 이어 SCM 공동성명에서도 북한의 핵사용시 "정권 종말"을 거론함으로써 북한의 반발 수위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한-미가 "북한의 핵사용 시나리오를 상정한 확장억제수단운용연습(DSC TTX, Table Top Exercise)을 연례적으로 개최하기로" 한 것 역시 이러한 우려를 부채질한다. 확장억제의 핵심은 미국의 핵우산인데, 이 연습이 연례적으로 실시되면 북한은 "핵전쟁 훈련"이라고 더더욱 반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미는 또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여 한미억제전략위원회(DSC) 산하에 한-미 미사일대응 정책협의체(CMWG, Counter-Missile Working Group)를 신설하고, 한-미 미사일방어 공동연구 협의체(PAWG, Program Analysis Working Group for the ROK-U.S. Missile Defense)를 재가동"하기로 했다.

이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징후 시 선제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킬 체인'과 MD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특히 한미는 "2023년에는 연합연습과 연계하여 대규모 연합야외기동훈련을 재개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이 대목에서 한-미 동맹과 북한의 입장이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이 최근 군사 행동을 통해 한-미 동맹에 보낸 메시지는 '무력충돌 위험을 수반하는 군사적 긴장고조를 감수하든지, 연합훈련을 중단하든지 양자택일하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한-미의 대응은 더 강력한 군사 활동 계획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미가 군사 계획을 하나둘씩 행동으로 나선다면 북한도 행동으로 맞대응할 것이다. 한반도 위기가 일상화되고 이 과정에서 무력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는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특히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이 예정된 내년 3월에 한반도 위기가 최고조에 달할 우려가 크다.

설상가상으로 대결을 말리고 대화를 주선하는 '갈등 중재자'마저도 부재한 현실이다.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던 1994년 전쟁 위기 때에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중재자로 나선 바 있다.

김정일 정권과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날카롭게 대립했던 2000년대 초반에는 한국의 김대중·노무현 정부 및 중국 정부가 위기관리 및 북-미 대화 중재에 힘썼다.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촉발된 남북한의 전쟁 위기 국면에선 미국이 한국을, 중국이 북한을 자제시키는 역할을 했었다.

2017년 하반기부터 2018년 초까지 있었던 김정은과 트럼프의 벼랑 끝 대결 국면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갈등 중재자로 나섰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한미일과 북중러가 서로 삿대질하기에 바쁘다.

하여 남-북-미 정부에 거듭 묻지 않을 수 없다.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군사력을 과시하는 것으로 과연 평화를 지킬 수 있는가? 혹시 전쟁을 막으려는 언행이 전쟁 위험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상대방의 공격 징후가 포착되면 선제공격에 나설 수 있다고 하는데, 인간의 오판이나 기계의 오작동 가능성은 생각해봤는가? 북한은 한-미의 비핵 공격 시에도 전술핵을 쓸 수 있다고 하는데, 이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는 알고 있는가?

한-미는 북한이 전술핵을 써도 김정은 정권을 끝장낼 수 있는 "압도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 겪게 될 한반도 주민들의 피해에 대해서는 생각해봤는가? 전쟁 발발 시 무고한 사람들이 입게 될 가공할 피해는 누가, 어떻게 책임지고 보상해줄 수 있는가? 어떤 전쟁이나 가치의 승리도 한 사람의 생명보다 더 소중하거나 정당화될 수 없다.

▲북한군은 7일 한미 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스톰'에 대응해 지난 2일부터 5일까지 나흘간 대남 군사 작전을 진행했다면서 앞으로도 압도적인 실천적 군사 조치들로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과연 모든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가?

남-북-미 정부는 너나할 것 없이 비현실적인 가정과 극단적인 피해망상을 얼버무려 군사 행동을 합리화하려고 한다. 한-미는 북한의 핵공격에 대비해, 북한은 한-미 동맹의 북침에 대비해 '모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남-북-미가 동원하는 '모든 대책'은 막말 공방과 군사 행동에만 머물러 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면서 하는 언행이 만일의 사태를 초래할 위험성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만들어진 모든 총과 진수된 모든 전함, 그리고 발사된 모든 로켓은 궁극적으로 굶주려도 먹지 못하고 헐벗어도 입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빼앗은 것"이라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말을 되새길 때이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벌이는 각종 군사 행동이 막대한 탄소를 배출해 지구 안보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는 현실을 자각할 때이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모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북핵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한 1990년대 초에 한-미 정부는 '모든 대책'에 한-미 연합훈련 중단도 포함시켰다. 노태우 대통령과 조지 H.W 부시 대통령이 '팀 스피릿' 훈련을 중단키로 하고, 이를 북한에 통보한 것이다. 그러자 북한도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합의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협정에 가입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하지만 1993년에 팀 스피릿이 재개되면서 이러한 성과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과 2019년에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게 오늘날 한반도 위기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말았다.

또 '연합훈련 타령이냐'고 반문할 수는 있다. 동시에 '연합훈련을 일시적으로 유예하면서 북한에 대화를 제의하는 것 이외에 어떤 대안이 있느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왜 모든 대책에 연합훈련 중단은 제외되어야 하는가'라는 항의도 가능하다.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호소한다. 압도적인 우위에 있는 한-미가 내년 3월로 예정된 대규모 연합훈련 유예를 조속히 선언하면서 정세의 반전을 도모해야 한다고 말이다.

기실 윤석열 정부와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에는 '유망한 요소'가 있다. 한반도 비핵화를 추진하는 데에 있어서 단계적 접근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북한의 요구와 공통분모를 품고 있기에 대화와 협상이 재개되면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초가 될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한-미 연합훈련 유예를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충분히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

북한 역시 막말과 군사적 위협 행동을 중단하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 한-미의 대북정책에는 단계적 해법이 담겨 있는 만큼 대화와 협상 재개는 북한의 요구 사항을 하나둘씩 풀어가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최근에 딸을 공개한 김정은 위원장은 과연 자녀 세대에게 물려줄 것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진지하게 자문해봐야 한다.

내년은 여러 모로 주목받는 해가 될 것이다. 우선 3월이면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를 선언해 북핵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지 30년째가 된다. 7월이면 정전협정 체결 70년이 되고 10월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70주년이다. 이렇듯 '꺾어지는 해'를 맞이해 한반도 위기도 꺾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과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이 같이 중단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한 협상이 비핵화 협상과 함께, 혹은 먼저 시작되는 첫해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70살이 된 한-미 동맹이 이를 주도할 수 있는 노련미를 발휘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윤석열(왼쪽)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 이 글은 필자가 동아시아재단에서 발간하는 <동아시아 정책논쟁>에 기고한 것을 재단 측의 동의를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원문과 영어 번역문은 동아시아재단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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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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