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 위한 '좋은' 일자리가 인권이다

[복지국가SOCIETY] 정신장애인의 노동시장 배제, 더는 안 된다

국회 예산결산특위는 지난 17일부터 예산안조정소위원회를 열어 639조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 세부 심의에 들어갔다. 예결위 예산소위는 국회 예산심사의 마지막 관문으로, 세부 심의를 통해 사업별 예산의 감액·증액을 결정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과 주요 정책을 두고 상임위 예비심사 단계부터 여야가 충돌했다. 핵심 쟁점을 두고 여야 대립이 심해지고 있다. 정부가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지 않도록,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예산이 어느 정도 배정되어 있는지 꼼꼼히 살필 때이다.

최근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우리나라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2차, 3차 국가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로 79개의 권고사항을 제시했다. 유엔은 한국에서 정신장애인이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고 있음을 깊이 우려했다. 이에 유엔은 정신장애인을 차별하는 모든 법률을 폐지하고 정신장애인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조치를 도입할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하였다.

일할 작은 기회 하나가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지역사회에서 한 사람의 존중받는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최고의 약이 될 수 있음을 당사자나 지원하는 전문가는 경험한다. 아울러 정신장애인이 자립하여 살 수 있는 일자리는 그냥 일자리가 아닌 '좋은' 일자리이며, '좋은' 일자리는 인권이라고 당사자들은 주장한다. 일자리는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생계수단이 되며 삶의 질과 사회적 관계 확대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고용실태는 어떠한가?

보건복지부 2021년 정신건강실태조사에 의하면 지난 1년간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 사람은 약 355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중 약 2.9% 수준인 10만4000명 정도가 정신장애인으로 등록한 장애인복지법 대상자이다. 15개 장애유형 264만 명(전체 인구 중 5.1%) 중 6번째로 큰 비중이다.

​장애인 고용률은 2021년 기준 전체 인구 61.2%의 절반수준인 34.6%에 불과하다. 그 중에서도 정신장애인의 고용률은 장애유형 중 가장 낮은 10.9%에 그친다. 반면 전체 등록장애인 중 21.7%가 수급자인데, 장애유형 중 정신장애인이 69.9%로 가장 높다. 2020년 기준 장애인실태조사에 의하면 정신장애인의 근로소득은 5.9만 원에 그쳐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2021년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에 의하면 장애유형별 취업자의 직업은 정신장애인의 경우 단순노무종사자가 52%, 기능·기계조작 종사자 18.5%, 서비스·판매종사자 14.7% 순으로 나타난다. 당사자의 업무선호도를 고려한 다양한 직무개발의 한계를 보여주는 지표다.

고용지원의 어려움은 무엇인가?

제도적, 정책적 측면으로 살펴보면 정신장애인의 고용 지원 전달 체계는 정신건강복지법 상 정신질환자 대상의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와 장애인복지법내 장애인 자립기반과로 이원화되어 있다. 정신질환 당사자를 위한 직업재활서비스 인프라는 장애인직업재활서비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정신장애인의 장애인직업재활시설 이용률은 2019년 4.9%에서 2020년 4.7%로 감소했다.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 복지서비스를 받을 수 없도록 한 예외규정인 장애인복지법 15조가 폐지돼 정신장애인의 장애인직업재활시설 이용 확대 기대감이 있었으나, 장애 미등록으로 인한 서비스 이용의 한계가 여전했다. 정신질환 당사자들은 취업할 경우 근로소득으로 인해 수급권, 특히 의료급여 대상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염려로 취업활동 참여를 기피하기도 한다. 지속적인 약물치료 등 의료서비스가 필요한 상황에서 의료비부담이 큰 장애로 다가온다. 수급권자의 노동 유인책이 부족한 실정이다.

실천적 측면에서 정신장애인의 취업 가능성을 살펴보면, 고용기회에 대한 정보 부족뿐만 아니라 사회적 편견과 차별로 인해 정신장애인은 고용기회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 처했다. 직업훈련의 기회가 적고 정신질환 당사자의 특성을 고려한 다양한 일자리 제공도 미흡하다. 취업 이후에도 취업적응 상 어려움, 개인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직업배치, 고용 후 사후서비스 연계, 사업체에서의 동료·상사와의 문제 등으로 인해 정신장애인이 장기 근속하는 데 한계가 있다.

고용지원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의 정신질환자 대상 고용지원서비스는 정신장애인의 자율적 의사결정을 바탕으로 당사자 중심적인 고용 계획을 세우고 관련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역사회의 이해를 바탕으로 지원고용전문가가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조율하는 통합적인 서비스로 정신장애인의 치료와 사회통합을 이루어나가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장애인 고용 의무제도와 장애인 취업·생활센터 등을 통해 지역의 관계기관 네트워크를 형성해 정신장애인의 취업과 생활면에서 일체적인 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외국의 사례를 본받아 세 가지 측면에서 정신장애인 고용 지원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고용지원 인프라 확대가 필요하다. 1995년 정신보건법 제정이후 설립된 정신재활시설은 지역사회 내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이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해 오고 있다. 정신질환 당사자의 직업준비와 지원, 취업 후 고용유지 지원에 이르기까지 직업재활서비스 제공에 노력해 왔다. 그 결과 많은 정신장애인이 다양한 영역에서 지역사회 내 구성원으로서 당당히 자립을 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정신재활시설이 없는 지자체가 100곳이 넘고 총체적인 인프라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정신재활시설의 확대가 당장 어렵다면 당사자에게 고용지원을 하고 있는 기존의 시설들에 취업지원센터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최소한 별도의 직업재활 예산과 인력을 지원하여 고용기회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장애인기업활동촉진법 등에 근거하여 장애인 창업과 기업육성을 지원해 왔으나 대부분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경증장애인 위주로 지원이 이뤄졌다. 반면 정신장애인의 경제적 활동촉진을 위한 지원은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좀 더 다양한 분야에서 창업지원이 가능하도록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정신장애인 대상 특화사업 또한 다양하게 구축해 나갈 필요가 있다.

국내의 성공 사례가 몇 있다. 경기도 수원 마음샘정신재활센터의 사회적기업 마음샘 건강카페, 서울 태화해뜨는샘의 모아 사회적협동조합의 카페, 경남 고성의 예쁜마을 사회적협동조합의 카페 등 정신재활시설은 카페, 목공, 원예 등 분야의 창업지원을 통해 당사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장애인기업종합지원센터는 2020년부터 8개 지방 자치단체와 협업하여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구성원의 안정된 일자리 마련과 성공적인 창업, 경제적 자립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발달장애인 가족 특화사업을 구축하였다. 센터는 정신적 장애인의 자립생활 지원을 위하여 당사자 중심의 특화사업모델을 발굴하고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정책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둘째, 정신질환 당사자의 특성을 반영하여 고용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장애등록을 하지 않거나, 장애등록을 원하지만 장애판정을 받지 못한 당사자는 고용기회를 가지는데 한계에 부딪힌다. 정신재활시설을 확충하면 정신장애인 당사자에게 다양한 취업기회를 제공하고 동료지원가를 양성하며, 미등록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업도 추진할 수 있다.

2021년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으로 당사자 사회참여 확대사업을 진행한 결과 동료지원활동가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울러 동료지원활동가가 실제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역할을 수립하고 활동가에게 전문적인 슈퍼비전이 정기적으로 제공되어야 함도 알 수 있었다. 미등록 정신장애인에게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비스가 막힌 상황에서 해당 사업 경험은 미등록 정신장애인에게 새로운 취업기회를 제공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됐다.

정신질환 당사자들에게는 취업기회가 제한되어 있다 보니, 그동안 고용의 양적인 측면만 강조됐고 질적인 측면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당사자의 관심, 가치, 일에 대한 의미, 꿈, 능력, 자격증, 과거 경험 등과 조화를 이루는 다양한 영역의 일자리 개발과 고용지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고용의 소득(income), 생산(producion), 인정(recognition)의 3가지 측면을 고려하여 지원할 필요성이 있다. 정신질환 당사자가 지역사회 내에서 자립생활에 필요한 최저생계비 이상의 소득을 얻고, 노동을 통해 자신의 유·무형의 생산성을 확인하고, 이로 인한 일의 보람과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셋째, 정신장애인의 고용이후 유지를 위한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당사자들이 직장에 눈치가 보인다거나 연차 사용에 부담을 느끼는 등의 이유로 인해 병원 진료를 가기 어려워한다. 재발은 곧 퇴사를 의미하는 만큼 이들이 진료 날짜를 지킬 수 있게 짧게는 2주, 길게는 두 달 정도 병가를 통해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 필요하다. 취업 면접 시에도 취업지원기관 직원의 동석을 인정하게 하고, 채용 후에는 업무지도나 상담을 전담할 담당자를 둬야 한다. 당사자에게 업무의 우선순위나 목표를 명확하게 지정하고, 지시는 하나씩 내리고 작업순서를 알기 쉽게 적은 매뉴얼을 작성하는 등의 대응도 중요하다. 출퇴근 시각과 휴가, 휴식, 통원 등을 배려하고 정신장애인이 가능한 조용한 장소에서 휴식할 수 있게끔 하고, 부담 가능한 정도에 맞춰 업무량을 조정해야 한다. 본인의 프라이버시 배려하여 다른 노동자에게 당사자의 장애 내용과 필요한 배려를 설명하는 등의 배려도 필요하다.

정신재활시설은 정신질환 당사자의 고용유지를 위해 취업장 방문을 통한 직무지도를 실시하고, 주1회 상담, 업무 조정, 위기개입, 정기적 고용주간담회, 일상생활지원 등의 지원을 하고 있다. 시설은 당사자의 개인별 노동환경에 맞는 개별지원을 통해 정신장애인의 고용유지를 지원하고 있지만, 정신장애인이 모든 사업장에서 배려를 받기란 어렵다. 장애인차별해소법 제8조, 제13조, 장애인고용촉진법제36조 제2항~4항 등에 정신장애인 고용의 법적인 근거가 마련되어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한계가 있다. 개인적, 기관적 차원을 넘어 제도적으로 고용 보장 조치가 작동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시민으로 당당히 자립하여 살아가는 삶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장애인 고용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공공과 민간의 장애인 의무 고용률이 3%을 넘고 있고 노동시장이 점차 확대되고 있지만, 정신장애인의 낮은 임금과 근속기간, 국민기초생활수급권과 취업의 양자택일, 미등록정신장애인 서비스 사각지대 등 노동권 확보를 위한 관련 현안들이 여전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장애인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해 그들의 소득보장과 사회참여를 촉진한다면 정신질환을 가진 당사자들이 지역사회에서 보다 자립적으로 사회적·경제적 자기결정권을 실현해 그들이 원하는 삶을 누려갈 수 있다. 정신장애인의 차별없는 노동권 확보를 위해 많은 이들이 연대하여 옹호자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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