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SPC 사망사고 이후 위험기계 '뒷북' 단속?…현장 반응은 '시큰둥'

SPL 평택공장 동료 노동자 "물량 쌓여 사람 죽는데 안전장치만 달면 뭐하나"

고용노동부가 식품 혼합기 위험 기계·기구 사용업체에 대해 장비 안전 조치 이행 여부를 집중 단속한다고 23일 밝혔다. SPC 계열사 SPL 평택공장에서 20대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하며 노동자 안전 문제에 관심이 높아지자 뒤늦게 안전 단속 실시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사망한 노동자와 같은 공장에서 근무했던 다른 동료 노동자가 "배합물량이 쌓여서 사람을 죽인다"며 "안전장치만 달면 뭐하나. 배합 물량을 맞추기 위해 (안전장치를) 제거하고 일을 하게 된다"고 지적하는 등 1차원적 단속 이전에 구조적인 접근이 있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노동부는 24일부터 오는 12월 2일까지 식품 혼합기 등 유사 위험 기계·장비의 안전조치 이행 여부를 집중단속한다. 대상은 식품제조업 등 전국 13만 5000여 개 사업장이다. 노동부는 식품제조업 3만 5000여 개소에 식품 혼합기 등의 안전 조치 점검을 당부하는 공문을 발송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 SPL 평택 공장에서 노동자가 끼어 사망한 '식품 혼합기'와 유사한 위험 기계·장비이면서 제조업에서 사망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12대 기인물', 주기적으로 안전 검사 대상인 프레스·크레인 등이 포함됐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5년(2017~2021년) 동안 식품 제조 기계와 관련된 사고로 305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6명이 사망했고, 299명이 부상을 입었다. 부상자 중 190명은 90일 이상 일을 하지 못했다. 이중 80.5%(153명)가 50인 미만 중소규모 근로자, 96.3%(183명)는 '식품가공용 기계'에 끼여 다쳤다.

노동부는 기본적인 안전조치 미흡으로 산재 사망사고 발생시 '고의성'에 대한 대표자의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이다. 사망사고가 상대적으로 잦은 50인 미만 중소규모 사업장에는 매월 2차례 진행하는 '현장점검의 날'과 '긴급 순회점검(패트롤)' 등을 통해 현장의 위험성에 대한 점검·지도 및 안전조치 비용 등을 지원할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이번 집중단속은 성격에 따라 1, 2차로 구분해 추진된다. 1차(11월 13일까지)는 자율점검과 개선, 계도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2차(12월 2일까지)는 4000여 개소를 뽑아 ‘사용중지 명령’ 등의 강제력을 수반한 불시감독 형태로 실시한다.

▲20일 오후 서울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열린 평택 SPC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 사망 사고 희생자 서울 추모행사에서 참가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합 물량이 쌓여 사람 죽는데안전장치 달기만 하면 뭐하나"

하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안전장치보다 노동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물량을 주문한 본사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SPL 평택 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강규형 화섬식품노조 SPL 지회장은 지난 20일 추모행사에서 "다들 안전장치를 하라고 말하지만, 안전장치는 속도를 줄이기 위한 장치"라며 "사고났다고 안전장치를 달기만 하면 뭐하나. 똑같이 배합 물량을 소화해내야 하기 때문에 불편하니 (안전장치를) 제거하고 일하는 것이고, 이번 사고도 그렇게 일어난 사고"라고 강조했다.

강 지회장은 "배합 물량을 줄일 수 있는데도 줄이지 못하는 이유는 뭔가. 안전장치가 있으면 뭐하나"라며 "그게(배합 물량을 줄이지 않는 게) SPC의 본모습"이라고 일갈했다. 강 지회장은 이어 "배합물량이 쌓여서 사람을 죽인다"며 "배합 물량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안전장치보다 중요한 것은 여유있게 작업할 수 있는 업무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강 지회장은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부의 이번 안전 단속이 '뒷북'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수진(비례대표) 의원과 양대 노총은 지난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에서 다시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이 11개가 넘는다"며 "가장 최소한의 기초적인 노동행정과 감독에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노동부를 직격했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10월 말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발표를 앞두고 있다"며 "위험작업에 대한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보장, 노동자, 노동조합의 산재예방 활동시간과 권한 보장 등이 빠진 대책은 또다시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15일 SPC그룹 계열의 SPL 빵 반죽 공장에서는 20대 여성 노동자 A씨가 소스 배합기 기계에 끼여 숨졌고, 이후 8일 만인 이날에는 SPC의 또 다른 계열사 공장에서 40대 노동자의 손가락이 기계에 끼어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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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

프레시안 박정연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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