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땅에 전술핵이 들어오면, 북한이 비핵화를 할까?

[정욱식 칼럼] 핵에는 핵으로? 공포의 균형은 지속될 수 없다

북한이 전술핵 위협 수준을 높이면서 국내에서 또 다시 미국의 전술핵을 재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일단 그 심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북핵이 남한에 떨어지면 가공할 피해를 입는 만큼, 미국의 핵무기를 재배치해 '공포의 균형'이라도 이뤄내야 한다는 주장은 일종의 자기보호 본능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미국 전술핵의 재배치는 칼자루가 아니라 칼날을 손에 쥐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핵전쟁을 억제하고자 취하는 조치가 오히려 핵전쟁의 위험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가령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만약 미국의 신형 비전략핵무기(미국 정부는 전술핵이라고 부르지 않고 이렇게 부른다)인 B61-12가 한국에 배치된 상태에서 한미 전투기가 출격하면 북한은 어떻게 반응할까?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북한이 비핵화를 선택하게 될까?

아마도 북한은 초대형 방사포와 같은 투발수단의 발사 훈련을 강화해 한미의 공군기지에 대한 타격 능력을 과시하려고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북한은 비핵화는 고사하고 핵과 미사일 능력을 더더욱 배가하고 핵미사일을 '경보 즉시 발사(launch on warning)' 태세로 격상해 즉각적인 발사 준비를 갖추는 것으로 응수할 것이다.

경보 즉시 발사는 핵탄두를 미사일에 장착한 상태로 유지해 적의 핵공격 징후가 포착되면 곧바로 발사할 수 있는 태세를 의미한다. 이는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의 핵태세였고, 오늘날에도 미국과 러시아는 이러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오판이나 오인, 그리고 기계의 오작동으로 우발적인 핵전쟁을 야기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요인으로 뽑힌다.

그나마 미소와 미러는 우발적 핵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핫라인을 비롯한 소통 구조라도 유지해왔다. 이마저도 제대로 없고 나날이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한반도에 핵 대 핵의 경보 즉시 발사 태세를 초래하는 것이 과연 안보를 위한 것일까?

생각을 달리할 지점들은 또 있다. 냉전 시대에 미국이 최대 1000개에 가까운 핵무기를 한국에 배치한 데에는 두 가지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하나는 공산권에 비해 재래식 군사력이 크게 밀렸다는 판단이다. 또 하나는 냉전 시대 초기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원거리 타격 능력이 부족했다는 판단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우선 한국의 비핵 군사력이 북한을 압도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력평가기관인 <글로벌파이어파워>에 따르면, 2022년 세계 군사력 순위에서 한국은 6위를 차지한 반면에 북한은 30위를 기록했을 정도이다. 여기에 주한미군 및 미국의 증원전략을 고려하면, 한미동맹은 굳이 전술핵을 한국에 배치하지 않더라도 북한을 충분히 억제할 수 있다.

미국의 핵 투발수단도 질적으로 달라졌다. 냉전 시대처럼 핵무기를 한국에 전진 배치하지 않더라도 원거리 공격이나 신속한 전개가 얼마든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가령 괌 앤더슨 공군 기지에서 출격하는 전략 폭격기와 F-22와 F-35와 같은 최신예 전투기의 한반도 도달 시간은 2시간 안팎에 불과하고, 태평양에 있는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핵미사일이 북한까지 도달하는 데에도 30분이면 족하다.

정리하자면 미국의 전술핵이 한국 땅에 들어오면 핵전쟁의 위험은 높아지고, 한국 땅에 없더라도 대북 핵억제는 충분히 작동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미국이 전술핵 배치를 타진해도 마다해야 하는데, 오히려 여당 중진들이 이를 미국에 간청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부디 정부와 여당은 노태우 정부한테라도 배웠으면 한다. 노태우 정부는 핵무기를 철수하기로 한 조지 H.W 부시 행정부의 결정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또 미국과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당시 세계 최대 규모였던 '팀 스피릿'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키로 했다. 여당 일각에서 파기를 거론하는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은 이러한 배경 하에 나왔었다.

이 선언이 휴지조각이 되지 않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맞다. 그런데 이렇게 된 데에는 길게는 30년 전에, 짧게는 3-4년 전에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겠다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 주효했다. 또 오늘날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데에는 정부 여당이 "정상화"라는 이름하에 한미연합훈련과 한미일 연합훈련을 크게 강화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정부 여당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호소한다. 되지도 않을 미국 전술핵 재배치를 검토할 것이 아니라 미국에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고 북한에 대화를 제의하자고 제안해보면 어떨까? 색깔론으로부터 자유로운 '보수'이기에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북한 방사포 발사는 9·19 남북 군사합의 위반"이라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