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 진출에 실패했다. 이사국 선정 투표에 참가하여 떨어진 것은 2006년 이후 처음이다.
11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진행된 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에서 한국은 123표를 얻어 8개 아시아 국가 중 5위를 기록하며, 상위 4개국 안에 들지 못해 이사국으로 선출되지 못했다.
한국보다 많은 표를 받은 아시아 국가로, 우선 방글라데시가 160표를 받아 최다 득표를 기록했다. 이어 몰디브가 154표, 베트남이 145표, 키르기스스탄이 126표를 받아 이사국으로 진출했다. 이에 위 4개국이 2023~2025년 임기의 이사국으로 활동한다.
한국은 지난 2006~2008년, 2008~2011년에 이사국으로 선출됐고 3연임이 금지되기 때문에 2011~2013년에는 아예 출마를 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2013~2015년, 2016~2018년에 이사국을 맡았고 3연임이 금지되는 2018~2020년 임기에는 출마하지 않았으며 이후 2020~2022년에 다시 이사국으로 선출됐다.
이같은 전례를 고려해보면 이번에 한국이 이사국에 진출하지 못한 것은 이례적인 상황으로 해석된다. 이를 두고 유엔의 투표 방식 문제, 국제 정세 등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우선 유엔의 투표 방식과 관련, 회원국인 193개 국가가 동등하게 1표씩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투표를 위한 외교적 교섭은 보통 표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즉 유엔에는 회원국 간 번갈아가면서 표를 주는 문화가 있는데, 한국이 인권이사회 투표 전에 이미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 등 올해 다양한 분야에 출마했기 때문에 이같은 표 교환 카드를 활용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실제 2018년의 경우 재외공관이 중점적으로 교섭해야 하는 선거가 3건, 주요선거가 2건, 일반선거가 4건이었고 2019년에는 중점선거가 3건, 주요 선거가 2건 일반 선거가 6건이었던 데 비해 올해의 경우 중점선거가 4건, 주요선거가 6건, 일반선거가 6건이어서 교섭력에 다소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선거 분류는 매년 12월 선거관리위원회 조정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이에 지난해 12월 문재인 정부가 선거 계획을 잘못 세웠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 아니냐는 지적에 이날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저희가 원인을 분석한 바로는 결과에 비춰 작년 말 결정이 과다했던 것 아니냐(라고 본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 당국자가 "모든 부처는 자기 부처가 나가는 선거를 매우 중시하고 가급적이면 전 재외공관망으로 교섭하기를 희망하는 것이 일반적 추세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중점적으로 해서 선택 집중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밝힌 것처럼 실제 어떤 선거에 강조점을 두고 움직일 것인지는 윤석열 정부가 판단해서 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계획 이행 과정에서 현 정부의 책임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또 이 당국자는 "기대했던 것보다 이탈표가 좀 있었다는 말씀을 드릴 수는 있다"고 말해 실제 교섭 과정에서 일정 부분 실패한 측면도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여기에 국제기구 관련 투표에 많이 참여하지 않은 바레인과 몽골이 이번 선거에서 한국보다 낮은 득표를 했기 때문에, 너무 많은 선거를 계획해서 이같은 결과가 나왔다는 설명은 일부 설명 가능한 부분이긴 하나 주요 원인으로 거론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국의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루는 방식과 관련 이번 투표를 연관 짓는 해석도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전직 외교 장관들이 대북전단살포를 금지하는 2020년 남북관계발전법 개정과 관련해 표현의 자유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국제사회에 설명하면서 인권과 관련한 한국의 이미지가 악화됐다는 평가다.
하지만 이 역시 주요한 요인으로 거론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번에 한국보다 많은 표를 얻은 방글라데시의 경우 언론 자유가 하위권에 속하는 국가고 몰디브는 종교의 자유가 제한된 곳이며 키르기스스탄의 경우 납치와 조혼(早婚) 등이 사회적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 인권과 관련해 소극적인 입장 표명을 했기 때문에 이같은 결과가 나온 것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이 당국자는 "선거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 요소들이 여러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원인을 딱 잘라서 (말하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이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엔이 사실상 서방과 비(非) 서방의 대결로 갈등이 깊어지면서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지난 6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는 중국의 신장위구르 자치구 인권 상황에 대한 특별토론을 갖자는 미국과 영국 등의 제안에 대해 이사국 47개국 가운데 한국을 포함한 17개국이 찬성했지만 중국과 인도네시아, 네팔 등 19개국이 반대하면서 성사되지 못했다.
이에 윤석열 정부가 중시하고 있는 이른바 '가치 외교'가 서방 주요 국가가 아닌 개발도상국이나 비(非) 서방 국가들에게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회원국이 1표씩 가지고 있는 유엔의 특성에 비춰봤을 때 '가치 외교'만이 아닌 보다 정교한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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