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트럼프-김정은 부딪히던 2017년보다 위험하다

[정욱식 칼럼] 강대강 충돌 막을 안전판 없어

[정욱식 칼럼] '강 대 강'의 한반도, 2017년보다 위험할 수 있는 까닭은?

한반도가 '강 대 강'의 대결로 치닫고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무력시위 공방전은 9월말부터 시작됐다. 한미가 핵추진 항공모함 전단까지 동원해 동해에서 해상 훈련을 실시하자 북한은 '접근 거부' 능력을 과시하듯 단거리 미사일을 집중적으로 시험발사했다.

또 한미일이 핵잠수함을 동원해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를 가상한 훈련에 나서자 북한 역시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로 응수했다. 그러자 한미는 전투기를 동원해 정밀 타격 훈련을 실시했다. 곧바로 북한은 화성-12형으로 추정되는 중거리 미사일을 시험발사했는데, 이 미사일은 일본 상공 1000km 정도 높이로 지나 태평양의 공해상으로 떨어졌다.

한미도 미사일 시험발사로 응수했다. 강릉 공군기지에서 모두 4발의 미사일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는데, 이 가운데 한발이 아군 공군기지로 떨어지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또 미국은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던 핵항모의 뱃머리를 동해로 돌렸다.

그러자 북한은 이를 강력히 비난하면서 두발의 단거리 미사일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이에 대응해 한미일은 핵항모가 참가하는 가운데 또 다시 연합훈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이 모든 것들이 9월 26일부터 10월 6일까지 불과 11일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다.

혹자들은 북미간의 극단적인 말폭탄과 무력과시로 위기가 고조되었던 2017년 상황과 흡사하다고 진단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흡사하지만, 질적으로 큰 차이들도 있다.

2017년 북미간의 벼랑끝 대결 이면에는 최대의 압박을 통해 상대방을 협상장으로 불러내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또 당시 문재인 정부는 대북 억제 태세 강화뿐만 아니라 위기관리 및 남북대화 재개와 북미대화 중대에도 힘썼다. 중국과 러시아도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에 동의하면서도 북미에게 자제와 대화 재개를 촉구했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크게 다르다. 미국의 대북정책 우선순위는 크게 떨어진 상황이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도 대미 협상용이라기보다는 전력화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윤석열 정부도 위기관리보다는 '강 대 강' 대결을 주도하고 있다. 미국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도 원인 제공자는 미국이라며 북한을 감싸고 있다. 한반도의 군사적 위기가 반전으로 귀결되었던 2017년과는 달리 오늘날 위기가 장기화·고착화될 우려가 크다고 보는 까닭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장 필요한 것이 '냉각기'이다. 미국이 전략폭격기 등 전략 자산을 추가로 전개하고 이를 빌미로 삼아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악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냉각기를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공통분모도 존재한다. 전쟁을 막겠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까지는 한미일과 북한이 힘의 과시를 통해 전쟁을 억제하겠다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이제는 무력시위를 통한 과도한 억제 추구가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켜 억제 본연의 취지, 즉 전쟁 방지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해할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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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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