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걱정 하기

[시민건강논평] 새로운 '시민 정치'가 필요한 때

추석 명절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은 아마도 나라 걱정을 했을 것이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대한민국'을 둘러싼 주변 여건부터 좋지 않다. 팬데믹은 잦아드는가 싶지만, 국제 정세는 불안하고 경제 여건은 더 나빠질 것 같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 러시아의 침략 전쟁, 그리고 북한 문제, 지정학적 위험도 점점 커지는 중이다. 기후위기를 넘어 기후 혼란(climate chaos)의 시기에, 국민국가 사이의 경쟁이 결국 '제로섬'의 파국을 초래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물론, 여건과 환경보다는 대응 태세와 그 실력에 대한 한탄이 더 많았을 줄로 짐작한다. 넉 달을 겨우 넘긴 신정부와 여당이 지금 어떤 말들을 듣는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터, 그렇다고 야당들에 의지할 형편도 아닌 것 같다. 한때 '시민사회'와 사회운동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의 마음과 관심, 에너지를 모을 다른 구심점이 있으면 좀 나을까. 이 또한 당분간은 가능하지 않은 시나리오가 아닌가 싶다.

이런 '비전의 부재(不在)' 상태는 현실의 고통과도 무관하지 않다. 아무도 (정치) 공동체의 미래 비전을 말하지 못하고 또한 말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 이렇게 되면 개인과 집단은 그저 현실이라는 횡단면, 그리고 각자의 터널 속에서 각자도생의 분투를 견딜 도리밖에 없다. 공동체로서는 그 어느 때보다 큰 위기를 맞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개인에 미친다.

물론, 이런 시대적 징후는 어제오늘 시작된 것이 아니다. 어떤 이름의 시기로부터 다른 어떤 이름의 시기로,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든, 어떤 시기는 지나갔으나 아마도 다른 어떤 시기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그 전환이 쉬울 리 만무하니, 그것은 모호하거나 혼란스럽거나 위태로운 것이 당연하다. 아마도 우리가 추석 명절에 나눈 이야기는 그 징후의 일부임이 틀림없다.

진정한 위기란 전환 그 자체보다 전환의 준비를 미뤘거나 그럴 능력을 축적하지 못한 데서 출발한다. 우리는 그 책임이 전적으로 우리 자신을 포함한 '시민 정치'의 무력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라 만들기'로부터 '더 나은 사회 만들기'와 '더 나은 공동체 만들기'로 전환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 책임을 국가와 정부, 그리고 경제로 돌릴 수 없다는 것은 당연지사. 그리하여 '사회적인 것'과 사회권력(시민사회)이 오늘 이 사태를 책임지는 것이 마땅하다(어쩌면 거창한, 그것의 역사적인 힘의 관계에 대해서는 여기서 길게 말하기보다 같이 한번 생각해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새로운 전환 또한 책임을 다른 데 미룰 수 없다. 2022년 추석을 막 지난 시점에 우리는 다시, 본격적으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자고 제안한다. 여기서 '우리'는 누구를 말하는가. 특정 집단이나 조직은 물론 아니다. 국가권력이나 정부, 정당 또는 경제 권력 등 '기득권의 힘'이 아니라, 비판을 토대로 새로운 힘을 만들어가야 할 '대안 세력'을 가리킨다. 그러니 제안이면서 동시에 다짐이기도 하다.

어디로 가자는 것인가. 그것이 어떤 시대가 될지 명시할 수는 없되, 우리는 상당 부분 이미 안다. 새로운 시대 또한 갑자기 시작하기보다는 내재한 모순과 거기서 비롯된 새로운 힘을 축적하는 법이다. 예를 들어, 불평등, 기후위기와 생태, 젠더, 새로운 노동, 탈성장 또는 탈자본주의, 평화 등의 '키워드'가 중심에 있다.

생각보다, 결코 멀리 있지 않다. 비록 국민투표에서 부결되긴 했으나 칠레 제헌의회가 제안한 헌법은 눈앞에 온 현실의 가장 최근 예이다. 새로운 제안은 인권, 생태와 발전, 성 평등, 건강과 웰빙, 신식민주의, 국제질서 등에 대해 중요한 통찰을 담고 있다.(☞ 바로 가기 : <NLR(New Left Reader)> 블로그 <SIDECAR> 9월 'Chile’s Rejection') 그곳에서 시작한 신자유주의가 지금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듯, 그들의 새로운 꿈이 또한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자극이 될 것으로 믿는다.

무엇을 지향하는지가 거의 전적으로 '형성'의 문제라면, 정해진 미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체'와 '과정'이 아닌가 한다. 새로운 주체로 국가권력, 정부, 정당, 경제권력을 다시 끌어올 수는 없다. 과정도 마찬가지, 우리에게 익숙한 정책, 제도, 행정, 사회활동, 조직을 그대로 연장하는 선택지는 없다. 필요한 것은 바로 새로운 상상력과 실험, 담대한 시도이다.

지금 당장의 과제? 이것부터 새로운 틀과 접근 방법을 만들어 내고 '자유롭게' 실천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새로운 정당과 정권에 다시 헛된 희망을 거는, 익숙한 잘못을 고치지 못할 것이다. 최근 들어 그럴싸한 대안 정책을 본 적이 있는가? 대통령 선거에서 공약이 아무런 역할을 못 하는 시대, '나라 만들기'의 시대 정신을 넘는 실천이 아니면 가망이 없다.

그러니 '현실적' 대안에 조바심을 내기보다는 공동체의 꿈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 더 긴요하다.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에 대한 실험도 더 많아져야 한다. 모든 새로운 시도는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다른 무엇보다, 무기력과 냉소를 넘어 '불가피한 열정'을 회복해야 한다. 오늘도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싸움과 저항이 영감의 원천이다.

ⓒ시민건강연구소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시민건강연구소

(사)시민건강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비영리독립연구기관입니다. <프레시안>은 시민건강연구소가 발표하는 '시민건강논평'과 '서리풀 연구通'을 동시 게재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