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는 말' 윤석열이 빠진 함정, 정치 외면하는 건 정치인이 아니다

[최창렬 칼럼] 국민이 알고 싶은 것에 대답해야 소통

국민들은 지난 정권들에서 살아있는 권력을 의식하지 않았던 윤석열 대통령의 강단과 기개에 매력을 느꼈다. 진보정권의 내로남불과 독선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무한 정치경험, 여의도와의 인연의 부재가 정치의 지평을 바꿀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컸다.

유독 통합과 협치를 강조하는 대통령의 언어에서 확신을 가졌고, 품이 넓은 대통령이 고질적이고 판에 박힌 여의도 정치의 문법을 바꿔나갈 수 있다고 보았음직도 하다. 그러나 정치문법을 바꾼다는 것이 정치를 배제하고 관료의 전문성을 과도하게 앞세우는 전문가주의를 앞세우라는 의미는 아니다.

권력은 정치를 움직이는 힘이다. 이를 바탕으로 민생도 챙기고 이전의 잘못된 정책도 바꿀 수 있다. 힘은 선거 때 국민의 선택에서 나오고, 선거 국면이 아닐 때는 지지율에서 나온다. 20%대의 지지율로는 정권이 지향하는 바를 실천해 나갈 동력을 공급받을 수 없다. 야당의 공세는 당연히 거세질 테고, 더구나 지금은 야당이 압도적 다수다. 정치가 작동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정치가 소모적이고 불필요하며 비효율적이란 인식은 관료주의의 폐해다. 정치가 불신받고 외면받는 것은 정치실종과 정치부재에 기인한다.

지금은 정치적 득실을 따져야 할 때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인적쇄신도 해야 하고 국면전환과 지지율 반등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 한다. 민주주의 정치는 여론이 형성한 흐름에 반응하고 이를 지향함으로써 대의와 명분을 마련하고 이를 토대로 정책과 실천을 모색해 나가는 작업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갈등을 소통과 타협으로 해소해 나가고 접점을 공유해 나가는 과정이 정치임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정치를 애써 외면했다. 윤 대통령은 기자회견 첫머리 20분간 경제 사회 외교에 대해 설명했다. '성과'가 알려지지 않고 부정적 면이 지나치게 부각된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애써 강조한 성과들보다 국민과 언론이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해 대통령은 답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을 지지했던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이탈한 이유에 대한 질문에 나름의 진단과 이유를 밝히지 않았고, 인사문제 개선방안에 대해서도 “정치적 국면 전환이라든지 지지율 반등이라는 그런 정치적 목적으로 해선 안 된다"고 했다.

이준석 전 대표의 윤 대통령에 대한 공격에 대해서도 "다른 정치인들의 정치적 발언을 챙길 기회가 없고…"로 답했다. 지지율 하락의 중요한 원인들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내지 않은 것이다.

정치를 외면하는 것은 솔직하지도 정치적이지도 않다. 정치인은 '정치적'이어야 한다. 통합도 협치도 정치의 영역이다. 여의도 정치를 혐오하는 것은 정치적 명분을 위장하여 자신들의 속물적 이익을 챙기는 것 때문일 뿐이다.

윤 대통령은 "분골쇄신하겠다", "대통령실부터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짚어보고 있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이고 국정전반을 되돌아보겠다는 각오도 보였다. "국민의 숨소리 하나 놓치지 않고 한치도 국민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국민의 뜻을 잘 받들겠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민심 이반의 원인 진단과 반성, 구체적 현안에 대해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추상적이고 원론적 회견이라는 평가를 면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변화라는 것은 결국 민생을 챙기고 국민안전을 꼼꼼히 챙기기 위한 것이어야지, 어떤 정치적 득실을 따져 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확히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에는 중대한 함정이 있다. 정치적 지지율이 받쳐주지 않으면 민생을 챙길 권력도, 국민안전을 챙기기 위한 추진력도 무력해 진다는 결정적 함정이다.

소통 없이는 협치와 통합은 불가능하다. 국민이 알고 싶은 것에 대해 성실히 대답하고 잘못된 판단과 처방이었다면 개선해 나가는 것이 소통의 요체다. 정치에 왕도(王道)는 없지만 왕도정치는 있다. 이의 기본은 국민과 여론에 솔직하고 진정성 있게 답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만기(萬機)를 친람(親覽)할 수 없다. 그래서 대통령은 '정치'를 해야 한다. 대통령이 발화하는 언어에서 통합이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고언(苦言)과 여론에 탄력적이고 유연할 때 정치가 살아날 수 있다.

정권 출범 100일의 위기는 극복 가능하지만 더 지체했다간 실기(失機)할 수 있다. 야당은 탄핵을 꺼내기 시작했다. 곧 구성될 더불어민주당의 지도부는 역대 어느 야당에 비해서도 강성이다. 이에 가장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는 무기는 국민의 눈높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치'다. 그러나 그 정치는 즉자적(卽自的)이어서는 안 되고 대자적(對自的)이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 '대통령에게 듣는다'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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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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